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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숙청 피바람 멎자 주석궁에 백두혈통 딸 입성하다

김정은 여동생 권력 실세로 급부상 “여정 동지 통하지 않으면 원수님 모실 수 없다”

이영종│중앙일보 외교안보팀장 ㅣ 승인 2014.03.18(Tue) 10: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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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최고인민회의 13기 대의원은 김정은 권력을 이끌어갈 파워엘리트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리스트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포함한 687명 대의원의 면면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집권 3년 차에 첫 선거(대의원 임기는 5년)를 통해 자신의 측근들을 대거 진출시키고 몰락한 권력과 원로들 상당수를 퇴진시켰다. 약 55%의 멤버를 물갈이한 데서 이를 엿볼 수 있다.

3월9일 치러진 이번 대의원 선거에서는 또 한 명의 인물이 주목받았다. 바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다. 한국과 서방 언론의 관심은 온통 그의 행보에 쏠렸다. 김여정은 이날 오빠 김정은의 투표 현장에 수행원으로 나왔다. 그런데 북한 관영매체들의 보도가 이전과 달랐다. 김여정이란 이름을 처음 공개했고,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이란 점을 밝혔다. 최고 실세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과 노동당의 김경옥 제1부부장, 황병서 부부장에 이어 김여정이 호명됐다는 점에서 적어도 차관급에 해당하는 직위에 임명됐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검은색 정장 차림의 김여정이 투표하는 장면을 북한 TV와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클로즈업해 내보냈다는 건 그의 권력 내 위상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2012년 11월19일 북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왼쪽)이 고모 김경희와 말을 타고 달리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김여정, 예의 바르고 명랑한 성격

무엇보다 북한이 고모 김경희의 칩거로 공백이 생긴 때를 김여정의 데뷔 시점으로 잡은 점이 눈길을 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인 막내아들 김정은의 가장 믿음직한 후견인으로 지목해준 김경희의 역할을 이제 김여정이 대체할 것이란 분석은 그래서 나온다. 김경희는 장성택 처형 직후인 지난해 12월17일 열린 김정일 2주기 행사에도 불참하는 등 공개 활동을 접었다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의 전언이다.

김여정의 등장은 김경희가 오빠 김정일의 후계자 시절이던 1976년 10월 당 국제부 부부장을 맡은 것과 비견된다. 공직 부여를 통해 오빠의 노동당 사업을 보좌하는 경로를 김여정도 밟아가리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김경희가 부부장을 맡으면서도 철저하게 외부 노출을 꺼리고 ‘주석의 딸’로 일했다면, 김여정은 관영 매체의 주목을 받으며 공개적인 행보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김여정이 올해 25세 나이에 최고 지도자인 오빠를 보좌하는 역할을 시작한 데 비해, 김경희는 29세에 오빠 김정일의 후계 수업 과정을 지켜보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도 차이가 난다.

김여정을 목격한 방북 인사들은 그가 예의바르고 명랑한 성격인 듯했다고 전한다. 나이 많은 군부 간부나 노동당 간부들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먼저 웃으며 안부를 건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얘기다. 북한 영상물에 스쳐가듯 지나가는 김여정의 모습을 정밀 분석해보면, 김정은을 수행하면서 뒤편의 간부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된다. 한 재미 사업가는 “김정은이 외투를 벗어 바로 옆에 있던 여성에게 건네 비서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김여정이었다”고 말했다.

한·미 정보 당국은 김정은의 후계자 시절부터 김여정을 주목해왔다.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하던 시절에는 오빠들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지만 김정은 등장 이후 그와 관련한 첩보가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김정은 집권 이후 김여정이 ‘예정’이란 가명을 쓰며 당 선전선동부 과장을 맡아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을 북한으로 초청해 김정은과 만나게 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고 오빠의 대외 개방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도 그의 작품이란 설명이다. 이런 선전술은 김기남 당 비서와 같은 낡은 방식의 선전·선동 스타일에서 벗어난 새로운 움직임이란 게 우리 당국자들의 분석이다. 해외 유학 시절은 물론 평양에서도 서방 문물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던 김여정이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 관계자는 “김정은이 주요 회의 때 세련된 스타일의 고급 금테 안경을 쓰고 나오는 것도 김여정이 기획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지적이고 회의에 집중하는 인텔리 지도자의 모습을 연출한 것이란 얘기다. 할아버지 김일성을 닮은 헤어스타일이나 양복, 키높이구두 등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집권 초기 김여정은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주목받았다. 평양 능라인민유원지 개관 행사가 열린 2012년 7월에는 그런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났다. 김여정은 행사장에 도착하는 김정은·리설주 부부를 박수로 환영하는 고위 간부들과 달리 화단 위에 홀로 서서 물끄러미 지켜봤다. 고모 김경희도 줄을 맞춰 선 뒤 부동자세를 취했지만 김여정은 달랐다. 김정은이 간부들과 악수할 때 화단을 넘어 뜀박질하듯 아스팔트 광장을 가로지르기도 했다. 김정은이 꽃다발을 받고 거수경례를 하자 재미있다는 듯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손뼉을 쳤다. 경호 의전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누구도 그를 막지 못했다는 게 대북 정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북한 당국은 김여정이 부각되지 않게 영상을 편집한 듯했지만, 워낙 부산하게 움직이는 그의 동선 노출을 다 막진 못했다.

   
김여정이 3월9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투표를 위해 김일성정치대학을 방문한 김정은을 수행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김여정 결혼 문제, 호사가 입에 오르기도

이런 모습은 김정일 추도대회 때 예고됐다. 혹한에 김정은과 당·정·군 간부들이 자리를 지키며 추도사를 듣는 도중에 김여정은 화장실을 다녀오는 듯 자리를 비웠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같은 해 11월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이 기마중대 훈련장을 시찰한 사진을 내보냈다. 주목받은 건 김여정이 고모 김경희와 함께 말을 탄 장면이었다. 백마를 탄 김여정과 회색 말에 올라 있는 뒤편의 김경희는 모두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이를 놓고 이른바 ‘백두혈통’이라고 불리는 김일성 가계에 김여정이 자리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김여정은 일곱 살 때인 1996년부터 5년간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에서 유학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정은은 물론 큰오빠 정철도 베른에서 유학했고, 일부 시기는 김여정과 겹친다. 학교 기록에 따르면 김여정은 ‘정순’이란 이름으로 초등학교에 다녔다. 학교에는 1988년 1월1일 태어난 것으로 신고돼 있지만, 우리 정보 당국은 그의 당시 여권 정보를 통해 1989년 9월26일생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볼살이 통통하던 이 동양 소녀는 이제 북한 권력의 핵심 실세로 자리했다. 오빠 김정은의 든든한 후광을 바탕으로 거침없는 행보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평양 권력에서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피비린내 나는 숙청의 잔혹사가 스쳐간 김정은 권력 내부에서 그를 빼고는 쓴소리나 직언을 할 당·정·군 간부는 없어 보인다. 벌써부터 김여정의 결혼 문제를 놓고 호사가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내는 것도 그가 세간의 관심거리가 됐다는 방증이다.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이 40년간 권력을 누렸지만 조카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걸 두고, 과연 누가 김여정과 결혼하려 할 것인가 하는 말이 나온다.

아직 김여정은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김정은의 보좌 역할을 하는 것으로 비친다. 관영 매체들이 전하는 영상 자료에는 김여정의 모습이 보일락 말락 한다. 하지만 그가 김정은에 이은 최고 실세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벌써 북한 권력 내부에서는 “여정 동지를 통하지 않으면 원수님(김정은)을 모실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한다. 평양 로열패밀리 권력의 또 다른 축을 거머쥔 그의 다음 발걸음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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