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운전사 하다 벼락부자 된 어느 60대의 비참한 죽음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3.1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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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사업가 부동산 관리…문서 위조해 재산 가로챈 의혹

“그럴 줄 알았네.” 지난 3월3일 새벽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에 있는 자신 소유의 건물에서 피살된 송 아무개씨(67)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다. 망자를 대하는 그들의 얼굴에 동정의 표정은 없었다.

생전에 송씨는 두 개의 얼굴을 보였다. 지역 장학회와 복지재단에 기부하면서 한편으론 재산을 불리기 위해 임차인과 하청업체를 괴롭혔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이다. 유명을 달리한 후에도 손가락질을 받는 이유다.

18년 전만 해도 송씨는 화물차 운전기사로 삶을 버겁게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아무개씨가 끼어들면서 송씨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이씨는 17세 되던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교포 사업가다. 일본에서 번 돈으로 1967년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과 종로구 장사동에 약 9917㎡(3000평)의 땅과 건물을 샀다. 재산관리인들을 고용해 그 부동산을 관리했다. 그러나 재산을 빼돌리는 등 관리에 문제가 생기자 이씨는 1996년 송씨 부부를 새로운 재산관리인으로 삼았다. 송씨의 아내 이씨는 그와 8촌지간이다. 이씨는 1997년 ㅇ산업을 설립해 부동산 임대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송씨는 이씨의 수족처럼 일하며 임대업 일을 익혔다.

수천억 원대 재력가 송씨가 소유한 서울시 내발산동 소재 상가. ⓒ 시사저널 구윤성
아흔 살을 넘긴 고령의 이씨는 2002년부터 지병으로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일본에 있는 이씨가 재산 관리에 소홀한 틈을 노린 송씨는 ㅇ산업 법인 도장이 찍힌 매매계약서를 만들었다. 서류상으로 ㅇ산업은 폐업 처리됐고, 송씨는 업체를 ㅅ기업으로 이름만 바꿔 운영했다. 또 서울 종로구와 강서구 일대 9917㎡의 땅과 건물 등(당시 1000억원 규모)을 송씨 부부는 20억원에 매입했다. 

사문서 위조 혐의로 처벌 받기도

2004년 재일교포 사업가 이씨가 사망하자 송씨 부부는 본격적으로 재산 불리기에 나섰다. 2000년 초는 2년 후에 있을 월드컵 등으로 외국인을 맞을 관광호텔이 부족한 때였다. 정부는 관광호텔 건립을 나랏돈으로 지원했다. 송씨는 관광호텔 건설을 명분으로 정부에서 거액을 지원받았다. 총 68억원 공사 규모의 절반에 해당하는 36억원을 관광진흥개발기금으로 충당했다.

나머지 공사 대금은 자신의 건물에 입주해 있던 세입자들로부터 마련했다. 임대보증금을 올리고, 권리금을 빼돌리는 등의 방법을 동원했다. 저항하는 세입자에게는 내쫓거나 폭력을 행사했다. 참다못한 세입자들은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당시 송씨의 건물에서 웨딩홀과 뷔페식당을 운영하던 이 아무개 사장과 서울 종로구 장사동에 있는 송씨의 땅에서 호텔을 운영하던 이 아무개 사장 등 세입자들은 2004년 일본을 방문해 이씨의 딸을 만나 자초지종을 확인했다.

송씨가 피살된 건물의 사무실 문이 굳게 잠겨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세입자들과 잦은 마찰

이씨의 딸은 송씨에게 부동산을 매도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송씨가 사문서 위조 수법으로 이씨의 재산을 가로챘다는 결론에 도달한 이씨의 딸과 세입자들은 2005년 송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듬해 송씨는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송씨는 대형 법무법인에 변호를 의뢰했고 다섯 명의 변호인이 송씨 사건을 맡았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송씨와 친척 관계인데,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를 그만두고 송씨의 변호를 맡았다.

2009년 송씨는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위조 및 사기 혐의가 인정돼 징역 8년형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아내 이씨도 3년형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수법이 대담하고 재판 중에도 서류를 위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2심에서 재판 결과가 뒤집혔다. 서류 위조에 대한 확정적인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판결이 나왔다. 이후 검찰의 상고로 이어진 재판은 지난해 말 송씨가 제출한 매매에 관한 이행각서가 위조된 것으로 본 법원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마무리됐다.

재판을 받는 10여 년 동안에도 송씨의 재산 불리기는 멈추지 않았다. 은행·보험사 등에서 부동산을 담보로 200억원 이상을 대출받았다. 또 자신을 검찰에 고발한 웨딩홀 사장을 내쫓고 그 웨딩홀과 뷔페식당을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줬다. 송씨가 운영한 상가·호텔·웨딩홀·골프연습장 등에서는 저임금으로 직원이 수시로 바뀌었다. 자신의 건물 세입자에게 송씨는 친척과 거래할 것을 종용하기도 했다.

각종 사업을 하면서 세입자·하청업체 등과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둘러싼 법적 분쟁은 한두 건이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지역 유지 행세를 했다. 2011년 강서구 장학회 이사로 활동하면서 이사회비와 기부금을 냈다. 2012년에는 강서구가 만든 복지재단에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역민들은 송씨를 곱게 보지 않고 있다. 한 주민은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하기보다는 유지들과 친분을 쌓으려는 의도였다”고 지적했다.

트럭 운전기사에서 20년 만에 3000억원대 거부가 된 송씨는 외가 친척에게서 빼앗은 의혹을 받고 있는 한 상가 건물 바닥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한 주민은 “송씨는 봉이 김선달 식으로 졸부가 됐고 말로가 좋지 않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송씨 피살 사건은… 


송 아무개씨는 3월3일 오전 3시20분쯤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에 있는 자신 소유의 4층짜리 ㅅ상가 3층 관리사무실에서 흉기에 10여 차례 맞아 숨졌다. 이를 부인이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관리사무실은 폐업한 헬스클럽이었고, 현재 출입문은 잠긴 상태다. 이 빌딩에는 20여 개 업체가 들어 있다.

경찰은 송씨가 이날 오전 0시50분쯤 이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이 CCTV(폐쇄회로 TV)에 찍힌 점으로 보아 0시50분부터 3시20분 사이에 살해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송씨가 수천억 원대의 재력가이고 살해 방식이 잔인한 점 등을 들어 원한이나 채무 관계에 의한 살인으로 보고 있다. 경찰이 확보한 CCTV 영상에는 까만 모자와 하얀 마스크에 장갑을 낀 사람이 당시 송씨를 따라 건물로 들어가 송씨를 제압하는 모습이 잡혔다. 경찰은 이 인물을 용의자로 보고 행방을 뒤쫓고 있다.

한 방송사 보도에 따르면 이 남성은 사건 현장 건물 뒤에 있는 골목을 통해 큰길로 달아났다. 경찰은 당시 주변의 택시 운행 기록을 뒤져 그를 태운 택시기사를 찾아냈다. 용의자가 택시를 타고 향한 곳은 현장에서 8㎞쯤 떨어진 서울 영등포시장이었다. 그가 앉은 택시 좌석에서 혈흔 반응이 나왔고,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감식을 의뢰했다. 송씨의 시신도 국과수에서 부검 중이다. 한편 송씨가 운영하던 ㅅ기업과 그 아들이 운영하는 ㅂ웨딩홀 측 관계자들은 송씨의 죽음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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