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가 형제 싸움 누구도 못 말려
  • 김진령·이석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4.03.18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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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시아나·태광·효성 경영권 다툼…재산 싸움에 기업 멍든다는 지적도

금호아시아나·태광·효성. 이 재벌그룹의 공통점은 총수가 불법 행위로 인해 사정 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거나, 법정 구속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아 경영에 비상이 걸렸다는 것이다. 이른바 오너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는 경우다. 또 형제간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잠복해 있기도 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형제의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화해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태광에선 창업주의 3남인 이호진 회장 구속 이후 이 회장의 큰형인 고 이식진 부회장의 아들인 이원준씨 등 이호진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2세 간의 재산 분할이 어떻게 될지 주목된다. 회계 부정과 탈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효성그룹 조석래 회장과 조현준 사장 부자도 사건의 단초는 세 아들 간의 경영권 분쟁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된 그룹에서 왜 재산이나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지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왼쪽)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오른쪽). ⓒ 시사저널 임준선·뉴시스

■ 금호아시아나그룹

금호아시아나는 현재 형제간 전투가 가장 치열하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형제가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고 박인천 창업주가 1984년 장남인 고 박성용 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준 이래 65세가 되면 동생에게 경영권을 양보하는 전통이 있다. 박성용 회장은 65세가 되던 1996년 동생인 고 박정구 회장(차남)에게 경영권을 물려줬고, 박정구 회장도 2002년 폐암으로 타계하면서 삼남인 박삼구 회장에게 바통을 넘겼다. 

하지만 2009년 들어 형제 경영의 ‘룰’이 깨졌다. 관행대로라면 박삼구 회장이 사남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어야 했다. 하지만 형제간 갈등으로 그룹이 사실상 두 개로 쪼개졌다. 박삼구 회장이 2006년과 2008년 인수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이 화근이었다. 무리한 M&A(인수·합병)로 그룹 전체가 자금난에 빠졌다. 평소 형의 경영에 불만이 많았던 박찬구 회장은 보유 중이던 금호산업 지분을 팔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매집했다. 박삼구 회장도 추격 매수에 나서면서 두 형제의 경영권 분쟁이 표면화됐다.

박삼구 회장은 2009년 중순 이사회를 열어 박찬구 회장을 해임시켰다. 본인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듬해 채권단의 중재로 두 사람이 경영에 복귀했지만 불신은 여전했다. 박찬구 회장은 2011년 금호산업과 금호아시아나항공을 그룹에서 제외시켜달라는 취지의 신청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했다. 그러자 박삼구 회장은 동생을 상대로 상표권 이전등록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012년에는 그룹 상표권 사용료를 거두겠다고 밝혔다가 동생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검찰·경찰 등을 통한 대리전도 여러 차례 있었다. 서울남부지검은 2011년 12월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2009년 6월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직전에 박 회장과 아들 준경씨가 주식을 매각해 100억원 이상의 손실을 피한 혐의였다. 박 회장은 자회사와의 거래를 통해 10년간 300억원가량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받았다. 당시 박찬구 회장 측은 검찰 수사의 배후로 형인 박삼구 회장을 지목했다.

지난 1월16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1심 선고가 나왔다. 법원은 박찬구 회장의 업무상 횡령 및 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박 회장은 판결 직후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과의 악연과 검찰의 무리한 기소로 3년간 맘고생을 많이 했다”며 “재판부가 공정성을 잃지 않고 실체적 진실을 밝혀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 밝혔다. 독립 경영 의지도 여전했다. 그는 “2010년 3월 대표이사 복귀 후 회사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금호석유화학그룹의 독립 경영을 위한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법원 선고가 나오고 보름 정도 흘렀다. 이번에는 박찬구 회장의 측근이자 운전기사인 김 아무개씨가 금호그룹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서울 광화문 금호아시아나 본사 27층에 근무하는 보안요원 오 아무개씨를 시켜 내부 기밀문서를 몰래 빼돌린 혐의였다. 27층에는 박삼구 회장의 집무실이 있다. 금호그룹이 공개한 CCTV에는 오씨가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박 회장의 개인 일정 등이 담긴 문서를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금호그룹 측은 박찬구 회장을 배후로 의심하고 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보안요원이 (박삼구 회장의)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내부 문건을 빼낼 이유가 없다”며 “운전기사 김씨의 배후에 대해서도 경찰에 수사를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는 박 회장의 스케줄을 노릴 이유도, 가치도 없다”고 강조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왼쪽)과 조현준 효성 사장은 탈세 등의 혐의로 지난해 12월과 11월 법원과 검찰에 출두했다. ⓒ 시사저널 구윤성·연합뉴스
특히 오는 3월27일로 예정된 금호아시아나항공의 주주총회 결과가 주목된다. 아시아나항공은 3월11일 공시에서 박삼구 회장과 김수천 사장의 신규 사내이사 선임을 예고했다.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는 금호산업(30.08%)이다. 2대 주주인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은 12.61%에 불과하다. 아시아나항공이 지난해 금호산업의 기업어음 790억원어치(13.08%)를 주식으로 전환하면서 변수가 생겼다. 현행법상 상호출자 지분율이 10%를 초과하면 양사는 의결권이 제한된다. 의결권이 제한된 금호산업 대신 금호석유화학이 목소리를 낼 수도 있게 됐다.

이와 관련해 박삼구 회장 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금호그룹의 한 관계자는 “주총일 이전까지 초과된 물량을 해결하면 정상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내부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지분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찬구 회장 측은 이 문제에 대해 “지켜보고 있다”고 짧게 답했다. ‘스파이 사건’으로까지 비화한 두 사람의 관계가 금호아시아나의 분할을 더욱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 태광그룹 

2003년 큰형 이식진 부회장 별세 이후 그룹 경영권을 손에 쥔 이호진 전 회장이 이끄는 태광그룹도 형제간 경영권 분쟁 소지를 안고 있다. 이호진 전 회장은 14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돼 2012년 12월 항소심에서 징역 4년6개월에 벌금 10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2012년 6월 병보석으로 풀려난 이후 현재까지 보석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사건이 터지면서 이 전 회장의 모친 이선애씨와 이식진 전 부회장 아들인 이원준씨 등이 재산 상속분을 놓고 ‘갈등’이 있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 전 회장이 경영권을 확보하기 직전인 2003년 태광그룹의 기둥인 태광산업에서 이식진 전 부회장의 지분은 15.57%, 이호진 전 회장 지분은 15.14%였다. 하지만 최근 이호진 전 회장의 지분은 15.14%로 변함없지만, 이식진 전 부회장의 아들이자 태광가의 장손인 이원준씨의 지분은 7.49%로 쪼그라들었다. 대신 티시스라는 회사가 11.22%를 가진 2대 주주로 떠올랐다. 티시스는 이호진 전 회장과 그의 아들인 이현준씨가 대주주인 이 전 회장 부자의 개인 회사다. 큰형이 사망한 지 10년 만에 태광그룹 전체가 셋째 동생인 이호진 전 회장에게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모자간 재산 불화의 씨앗이 됐다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태광 측에서는 ‘모자간 불화설’에 대해 낭설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이 전 회장 측의 한 인사는 “태광그룹 상속이 이미 이호진 전 회장 측으로 정리된 만큼 경영권이 바뀌는 사태는 없을 것이고 그룹에서 분리해나갈 만한 사업군도 없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구속 이후 처외삼촌인 심재혁 부회장을 전문경영인으로 앉혔지만 재산 상속 이슈가 언제 어떤 식으로 다시 터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 효성그룹 

3세 상속을 앞두고 있는 효성그룹도 형제간 재산분할 문제로 탈이 났다. 조석래 회장이 지난해 12월 1500억원대 조세 포탈과 900억대 횡령을 주도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장남인 조현준 사장도 범행을 공모한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재계에선 오너 일가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효성의 은밀한 거래 내역을 사정 당국에 알린 사람을 효성 내부 관계자로 보고 있다. 지난해 형제간 재산 문제로 지분을 팔고 효성을 떠난 조석래 회장의 둘째 아들 조현문 전 전무가 이번 사태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조현문 전 전무가 효성 지분을 팔아 확보한 자금으로 효성에 남아 있는 두 형제에게 반격을 가할 M&A를 시도할 것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부사장이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계속 효성 지분을 매집하고 있는 점도 이를 단순한 ‘설’로 보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조 사장과 조 부사장의 효성 지분은 2012년 말까지만 해도 각각 7.26%, 7.90%였지만 최근 9.95%, 9.18%로 늘어났다. 이를 두고 조현준-조현상 형제간에 대권을 놓고 지분 경쟁이 벌어졌다는 설이 돌고 있다. 한편에서는 둘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공동전선을 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3월22일 하성민 SK텔레콤 대표이사가 SK텔레콤 보라매사옥에서 열린 ‘제29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3월 말에 집중된 이번 정기주주총회의 관전 포인트는 일단 오너 경영인의 진퇴 문제다. 최근 정부에서는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책임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오너가 도장을 찍고 책임을 지는 등기이사를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범법 행위를 한 경영자는 오너라고 해도 등기이사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받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 강정민 연구원은 “SK텔레콤처럼 회사 정관에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자의 이사 자격을 자동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법원 판결을 받은 최태원 SK 회장 형제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계열사 이사직에서 물러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조석래 효성 회장과 조현준 효성 사장의 경우 계열사 등기이사직을 고수하고 있거나 신임 이사 후보에 올라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하지만 세계 최대 주총안건 분석회사인 ISS가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이사 재선임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 관심을 끌고 있다. 효성에 투자한 외국인 투자자 지분은 30% 선이다. 한국 기업 상황에 둔감할 수밖에 없는 외국인 투자자는 ISS의 의견서를 참조할 가능성이 크다.

투자만 할 뿐 민감한 경영 문제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던 국내 연기금도 오너십 리스크와 관련된 기업 현안이나 배당 문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있다. 낮은 지분으로 강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국내 재벌그룹의 특성상 외국인 주주나 각종 연기금 주주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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