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승려·위구르족 방문하면 보고하라”
  • 모종혁│중국통신원 ()
  • 승인 2014.03.1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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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 통제 바짝 조이는 중국

“도난 여권을 가지고 탑승한 이란인 2명은 테러리스트가 아닌 것 같다.” 3월11일(현지시간)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로널드 노블 사무총장은 “사라진 말레이시아항공 MH 370기 사고는 테러가 아니라는 결론으로 기울고 있다”고 밝혔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당사국인 말레이시아와 탑승객이 가장 많이 탄 중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3월8일 자정을 막 넘긴 0시41분. 쿠알라룸푸르를 출발한 MH 370기는 항공관제탑과의 마지막 교신을 끝으로 종적을 감췄다. 14일 현재 10여 국가에서 파견한 항공기 30여 대와 선박 40여 척이 베트남 남부 해역과 말라카 해협을 샅샅이 수색하고 있지만, 그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도난 여권을 소지한 이란인들이 유럽으로 정치적 망명을 모색했다는 증거가 드러나면서 MH 370기 실종 사고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테러 연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존 브레넌 미국 CIA(중앙정보국) 국장의 발언처럼 테러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자국을 겨냥한 테러 징후로 확신하며 불안에 떨던 중국 사회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3월3일 중국 최대의 정치 이벤트 양회가 열리는 베이징에 수많은 공안이 배치돼 삼엄한 경계를 폈다. ⓒ PIC연합
실제 사고 발생 후 중국의 행동은 당사국인 말레이시아보다 훨씬 더 긴박했고 신속했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보고를 받은 직후 긴급 지시를 내려 신속하고 철저한 대응을 주문하며 “구조와 자국민 보호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리 총리는 8일 저녁 나지브 라자크 말레이시아 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인명 구조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요청했다. 9일 낮 현장에 도착한 해경 3411호를 시작으로 중국은 군함 4척, 해경선 6척, 구조선 14척, 항공기 2대 등을 파견했다. 파견 함정과 항공기는 베트남 남부 해역 7717㎢를 이 잡듯이 뒤졌다. 이는 중국 해상구조 사상 최대 규모의 함정 숫자와 수색 범위다. 더욱이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영토분쟁을 벌이는 당사국 중 하나인 베트남의 영해에 자국 군함을 들여보낸 것은 큰 성과였다.

인공위성도 총동원했다. 중국은 독자적으로 구축한 베이더우(北斗)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을 이용했다. 베이더우는 미국의 GPS, 러시아의 글로나스에 이어 중국이 세계 세 번째로 개발한 위성항법시스템으로 오차 범위 1m 이내를 자랑한다. 중국은 시안(西安) 위성통제센터를 통해 하이양(海洋), 펑윈(風雲) 등 10여 대의 위성을 투입했다. 이를 통해 13일 국가국방과학기술공업국은 해상에 떠 있는 여객기 잔해로 의심되는 물체를 발견했다.

위구르인들에 대한 유언비어 난무

중국이 어느 때보다 빠르고 강력한 행동에 나선 것은 중국인들 사이에 확산되는 테러 공포감을 잠재우기 위해서다. 3월1일 윈난(雲南)성 쿤밍(昆明) 시 기차역에서 8명의 괴한이 휘두른 칼에 33명이 죽고 143명이 다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위구르 분리독립 세력으로 추정되는 괴한들 중 5명은 현장에서 사살됐고 나머지 3명은 이틀 뒤 검거됐다. 그러나 인터넷에는 “여러 곳에서 위구르인들이 테러를 일으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는 불확실한 소문이 계속 나돌았다. “위구르인들이 항저우(杭州)에서 테러를 일으켜 10여 명이 숨지고 80여 명이 다쳤다” “충칭(重慶) 교외에서 총을 소지한 위구르인들이 탄 차량을 검거했다” 등 구체적인 정황을 갖춘 일부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는 수상한 위구르인들을 발견하면 공안기관에 연락하라는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경고문이 끊임없이 리트윗됐다.

3월에는 중국 최대의 정치 이벤트인 양회(兩會)가 열린다. 여기에 티베트인의 반(反)중국 항쟁 55주년을 끼고 있어 중국인들의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이런 와중에 터진 MH 370기 실종 사고는 중국인들에게 또 다른 대형 테러 위기를 실감케 했다. 특히 인터넷에서는 위구르인 테러설이 급속히 확산됐다. 웨이보에는 “위구르인들이 쿤밍 사건을 기점으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지하드(성전)를 벌이기 시작했다”는 글들이 유포됐다. 10일에는 미국에 본거지를 둔 중화권 매체인 둬웨이(多維)가 “미얀마의 한 호텔에서 폭발 사건이 발생해 투숙 중인 중국인 10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사건 발생 도시와 호텔 이름, 정확한 사상자 수 등 구체적인 정황을 밝히지 않아 신빙성이 의심됐지만 홍콩 신문들이 인용하면서 중국에까지 전해졌다. 11일 쓰촨(四川)성 난충(南充) 시 도심 거리에서는 갑자기 날아온 총탄에 1시간 동안 행인 7명이 맞아 다치는 사건도 일어났다.

3월8일 항공기가 실종된 이후 수일간, 중국 대륙은 초긴장 분위기에 휩싸였지만 인터폴 발표 이후 테러가 아닐 가능성이 제기되자 중국인들은 조금씩 여유를 되찾았다. 수색 작업에 진전이 없자, 이제는 황당한 추측들이 인터넷에 쏟아졌다. 말레이시아의 야당 국회의원 모하마드 니자르는 자신의 트위터에 “베트남 해상에 버뮤다 삼각지대가 있다. 이곳에 들어가면 어떤 교신도 통하지 않는다”는 글을 남겨 빈축을 샀다. 일부 중국 네티즌은 실종된 탑승객에게 휴대전화를 걸면 신호가 간다거나 중국의 메신저 서비스 ‘QQ’에 접속된 상태로 남아 있다는 일부 승객 가족들의 주장을 근거로 사고기가 납치돼 어딘가에 억류됐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최근 중국에 휘몰아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인기를 보여주듯, 도민준이 천송이를 보러왔다가 웜홀을 통해 자기 별로 돌아가던 중 MH 370기도 같이 데려갔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실종 사고를 계기로 중국 정부는 분리독립 성향을 보이는 소수민족과 사회 불만 세력에 대한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다. ‘반중국 항쟁일’을 하루 앞둔 지난 3월9일 티베트(西藏) 자치구에서는 공안, 무장경찰, 반테러 부대 등이 대거 투입된 군사훈련이 실시됐다. 현지 언론은 “치안 유지와 긴급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합동 훈련이었다”며 민중 시위가 일어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임을 암시했다.

반중국 항쟁일은 1959년 중국의 점령에 반대해 티베트인들이 일으킨 대규모 봉기를 기념한 날이다. 당시 1만여 명의 사망자가 났고, 달라이 라마 14세는 추종자 1000여 명을 이끌고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로 망명해야 했다. 올해도 세계 각지의 티베트인들은 반중 시위를 벌였지만 예전과 같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중국 정부, 반테러법 제정 움직임

위구르인들에 대한 압박은 더욱 심각하다. 쿤밍 사건 이후 윈난성 곳곳에 살던 위구르인들은 고향인 신장(新疆)으로 추방당하고 있다. 특히 테러를 일으킨 괴한들이 묵었던 사뎬(沙甸)에 거주하던 위구르인 900명은 3월6일 버스에 실려 사뎬을 떠나야 했다. 본래 사뎬은 이슬람교도인 회(回)족이 전체 주민 1만3500명의 90%를 차지해 소수민족과 종교에 관용적인 곳이었다. 공안 당국은 관내 주민들에게 위구르족이나 티베트 승려가 방문하거나 여관에 투숙할 경우 즉시 동태를 보고하라는 통지문을 내려보냈다.

일부 지방에서는 회족에 대한 감시도 강화하고 있다. 회족은 이슬람교도지만, 상당 부분 한족에 동화되었고 과거에도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전례에 비춰볼 때 이번 조치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중국 정부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반테러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3일 폐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반테러법은 주요 현안 중 하나로 심도 있게 논의됐다. 짱톄웨이(臧鐵偉) 전인대 법제공작위 형법실 부주임은 “현재 법령은 모든 테러 활동을 엄격히 금지하고 관련 처벌 규정은 강력하다”면서도 “앞으로 반테러법 제정을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인대에서 발표된 올해 공공 안전 예산도 지난해보다 6.1% 증가한 2050억 위안(약 35조6700억원)에 달했다. 예년과 달리 지방정부의 예산은 공개하지 않아 전체 증가율은 훨씬 더 높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난해 중앙과 지방을 합한 예산은 7690억 위안으로 국방비 지출보다 많았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테러 위협에 떨어야만 했던 중국. 그렇지 않아도 ‘경찰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현실에서 반테러를 빌미로 소수민족과 반체제 인사들을 더욱 혹독히 탄압해 나갈지 주목된다.

 

“여기가 아닌가 봐” 오락가락 말레이시아 정부 


‘총체적 부실’. 이번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MH 370기 실종사고의 직접 당사자인 말레이시아 정부를 두고 세계 각국에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안이한 대응, 오락가락하는 발표, 잘못된 정보 제공 등 위기 대처에서 미숙함을 극명히 보여주며 주변국과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사고 발생 후 탑승객 중 일부가 도난 여권을 가지고 탑승했다고 발표해 테러 가능성을 시사했다. 뒤늦게 테러와는 무관한 이란인들로 밝혀졌지만, 당국자마다 계속 말을 바꿔 수사에 혼선을 안겨주었다.

3월11일 로잘리 다우드 말레이시아 공군참모총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고기가 8일 2시40분쯤 말라카 해협 북부 폴라우페락 섬 인근에서 날고 있는 것을 군 레이더가 포착했다”고 말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발언대로라면 조종사가 항공관제탑과 마지막 교신을 한 후 통신 기기와 추적 장치를 끄고 기수를 서쪽으로 틀어 무려 500㎞나 날아간 셈이다. 다우드 총장은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며 번복했다가 다시 인정하는 등 하루 종일 오락가락했다.

12일에는 인도네시아 정부에 사고기가 북부 코타바루에서 20㎞ 떨어진 남중국해에서 회항했다는 자료를 넘겨준 사실이 공개돼 또 다른 논란을 빚었다. 이는 말레이시아가 당초 발표한 베트남 남부 해역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베트남·중국·미국 등은 말레이시아가 전달한 정보를 기초로 베트남 남부에서 수색 작업을 벌였다. 이에 베트남은 자국 영해에서의 수색을 일시 중단했다가 재개하는 등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말레이시아군 당국은 사고기가 페낭 섬 북서쪽 약 320㎞ 지점에서 레이더 화면에 잡혔다고 발표했다. 이는 항공관제탑과 교신이 끊긴 후 회항해 1시간 이상 수백 ㎞를 비행했다는 현지 언론 보도를 뒷받침하는 내용이었다. 마침 사고기의 부기장이 2011년 다른 비행 도중 호주 여성 승객들을 1시간 동안 조종실로 초청해 사진을 찍는 등 부적절한 처사를 저지른 것이 드러난 뒤라 논란은 커져갔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여객기 피랍, 사보타주 외에도 승무원과 승객의 심리적 문제 및 이들의 개인 신상 문제 등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고 있다고 밝힐 뿐 수사 상황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자, 주변국의 불만은 커져갔다. 특히 중국의 불만이 크다.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온갖 정보가 나돌고 있는데 정확한지 아닌지 확인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베트남 정부도 “사고기가 추락한 곳은 우리 영해가 분명 아니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인내심을 갖고 정부의 대응을 지켜보던 말레이시아 국민들과 탑승객 가족들도 당혹감과 분노를 분출하기 시작했다. 사면초가에 빠진 말레이시아 정부가 사태를 제대로 수습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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