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억년 전 태초의 역사 밝혀지다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3.2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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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빅뱅 증거 ‘중력파’ 발견 지금 이 시간에도 팽창 중

우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 번쯤 가져봤을 궁금증이다. 3월17일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가 우주 탄생의 궁금증을 풀 결정적 단서를 찾았다고 발표해 세계 과학계가 흥분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론으로만 설명해온 우주 팽창(인플레이션 이론)을 입증할 중력파의 패턴을 발견한 것이다.

중력파는 중력 변화에 따라 시공간에 발생하는 파동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생기듯, 중력에 큰 변화가 발생하면 시공간에 일정한 패턴의 파동이 생겨 퍼져나간다. 만일 초기 우주가 급격히 팽창했다면 중력의 변화로 중력파가 퍼져나가면서 시공간에 뒤틀림을 일으켜 특별한 패턴이 생겼을 것이라는 게 지금까지 천문학자들 주장이었다. 하지만 중력파는 세기가 너무 작아 물질과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는 탓에 발견 자체가 힘들었다.

부피가 제로에 가깝고 질량이 무한에 가까운 점 하나가 ‘펑’ 폭발해 우주가 생기는 모습. ⓒ 한국천문연구원 제공
연구팀은 남극에 설치된 대형 전파망원경(바이셉2)으로 38만년 전의 우주를 3년 동안 관측해 시공간에서 변하는 일정한 패턴을 탐지했다. 38만년 전의 우주는 현재 망원경으로 관찰이 가능한 가장 오래된 시점이다. 중력파의 패턴 발견은 빅뱅(대폭발) 직후 찰나의 시간에 우주가 급속히 팽창하며 지금의 은하와 행성들을 만들어냈다는 가설을 처음 증명한 셈이다. 그렇다면 천문학자들이 말하는 거대 우주 탄생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우주 생성 모델은 ‘빅뱅’

현재의 표준적인 우주 생성 모델은 ‘빅뱅’이다. 우주는 138억년 전에 무한히 작은 한 점에 모든 물질이 모여 있다가 대폭발을 거쳐 지금의 우주처럼 팽창했다는 것이 바로 빅뱅 우주론이다. 무한히 작은 점에서 폭발적으로 우주가 탄생했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우주론자들은 빅뱅이 시작된 시점을 태초라고 부른다. 빅뱅 우주론에서 태초는 어마어마한 밀도와 온도를 가진 특이점(singularity)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서는 현재의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학의 법칙이 전혀 맞지 않는다. 그래서 특이점이라 불린다.

현재 우주 공간은 팽창하고 있다. 팽창하는 우주를 시간적으로 거꾸로 돌리면 어떻게 될까. 이는 과거로 돌아갈수록 수축된다는 의미다. 지구·태양·은하 등 우주의 모든 물질을 과거로 되돌리면 결국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높은 온도와 에너지 밀도를 가진 매우 작은 한 점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 작은 점이 대폭발해 우주가 생성됐다는 것이다. 빅뱅 이후 우주의 급격한 팽창은 중력파를 만들어냈고, 이것이 시공간에 흔적을 남겼다.

우주가 빅뱅에서 시작됐다는 아이디어는 미국 천문학자 허블의 관측 결과에서 나왔다. 1929년 허블은 당시 세계 최대 망원경으로 여러 은하의 후퇴 속도(적색 이동)를 관측해 은하들이 거리가 멀수록 더 빠르게 멀어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즉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처음 확인한 셈이다.

이후 1970년대에 스티븐 호킹이 로저 펜로즈와 함께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1916년)을 바탕으로 우주 탄생 순간에 크기가 0인 한계 상태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주가 무한히 작은 점인 특이점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그 시점이 바로 우주가 빅뱅으로 탄생한 지 10-43초가 되는 순간이다. 이 짧은 시간을 ‘플랑크 시간’이라고 한다. 플랑크 시간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짧은 시간이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 이론을 통해 중력파 존재를 처음 제시했다.

중력파의 흔적을 찾아 우주 팽창의 증거를 발견한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연구진과 중력파의 흔적(작은 사진). ⓒ AP연합
엄청난 팽창 덕분에 우주와 지구 생겨

우주 초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찰나가 있었다. 바로 급팽창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이 일어난 시기다. 빅뱅 후 플랑크 시간이 지난 바로 뒤에 우주가 가속적으로 부풀어 그 크기가 찰나보다 짧은 순간에 1030배 이상 커졌다고 한다. 인플레이션 이론에 따르면, 빅뱅 후 10-35~10-32초 사이에 우주의 크기가 10-33㎝ 정도에서 10-3㎝ 이상으로 커졌다고 한다. 우주 초기에는 에너지 분포가 방향에 따라 달랐다. 그런데 엄청난 팽창을 겪으면서 이런 차이가 사라지고, 우주는 등방성(공간은 모든 방면에서 성질이 같음)을 갖게 된다. 또 초기의 우주는 평탄한 우주였다고 한다. 풍선을 엄청 크게 불면, 불기 전에 둥글게 보이던 풍선 표면이 풍선을 놓으면 평탄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빅뱅의 해결사 ‘급팽창’의 또 하나의 매력은 오늘날 여러 천체를 탄생시킨 씨앗을 자연스럽게 뿌려줬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 이론에 따르면, 대폭발 직후 찰나의 짧은 시간 동안 공간이 1030배 이상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물질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급팽창을 일으키던 기운이 위치마다 다른, 즉 급팽창 때 생긴 미세한 밀도의 차이가 중력으로 인해 점차 커지면서 별과 은하계 등 거대 우주 구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만일 우주 초기에 인플레이션이란 엄청난 팽창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우주뿐 아니라 지구도 인간도 탄생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우주가 탄생하고 찰나도 되지 않는 순간에 우주에서 너무도 큰 사건이 벌어진 셈이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은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 증거인 중력파를 오늘날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빅뱅이 일어난 것은 확실한데 이를 증명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었다.

빅뱅 이론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증거는 1964년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아노 펜지아스와 로버트 윌슨이 발견했다. 바로 초기 우주의 흔적인 우주배경복사(우주 전체를 가득 채우며 퍼져 있는 초단파 영역의 전자기파)다. 이는 허블의 우주 팽창 발견 이후 최고의 관측으로 일컬어진다. 우주 초기에는 물질과 빛이 뒤엉켜 있어 빛이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다. 하지만 빅뱅 후 30만년이 지나면 비로소 빛이 물질과의 상호작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다. 이때 출발한 빛이 현재 우주배경복사로 관측되고 있다. 1993년에는 미국의 물리학자 조셉 테일러와 러셀 헐스가 중력파를 간접적으로 찾아내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도 했다.

이번에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 연구진은 우주배경복사에 남겨진 중력파의 패턴을 발견했다. 신뢰 수준은 99.999999636%이다. 이 발견이 확실하다면 이들 또한 노벨 물리학상은 떼놓은 당상이다.

세계의 천문학자들은 이번 연구가 단순한 성과가 아니라 금세기 최고의 업적이라고 말한다. 중력파의 증거를 찾는 것은 천문학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이번 발견으로 빅뱅이 어디서 발생했고, 또 우주 팽창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등 그동안 가설에 그쳤던 우주의 역사가 자세히 밝혀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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