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기 있느냐고 물으니 “잘 모르겠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4.04.0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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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잘나가는 뮤직비디오 감독 ‘디지페디’ 오렌지 캬라멜의 <까탈레나> 뮤비 화제

요즘은 음악을 소비하는 주요 통로 중 하나가 뮤직비디오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유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튜브라는 미디어를 통해 그의 뮤직비디오가 전 세계에 퍼졌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는 K팝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자리 잡았다.

최근 등장한 뮤직비디오 중 단연 화제를 모으고 있는 것은 아이돌 그룹 오렌지 캬라멜의 <까탈레나>다. 회전초밥집 컨베이어벨트에 놓인 초밥을 의인화한 기발한 아이디어와 단순하며 중독성 있는 멜로디는 이 노래를 가요 차트 상위권으로 밀어올렸다. KBS는 이 코믹한 뮤직비디오를 방송 불가로 판정해 노이즈 마케팅에 본의 아니게 가세했다.

디지페디의 공동 감독 박상우씨(왼쪽)와 성원모씨. ⓒ 시사저널 임준선
이 뮤직비디오를 감독한 것은 디지페디(박상우+성원모)라는 팀이다. 디지페디는 한 해에 30여 편의 뮤직비디오를 만들 정도로 최근 가장 잘나가는 뮤직비디오 감독이다. 샤이니, B1A4·아이유·김예림 등의 뮤직비디오가 이 팀의 손에서 나왔다. 기발한 유머 코드와 상황 설정, 파스텔톤 같은 밝은 색감, 그래픽 요소의 적절한 활용이 디지페디 뮤직비디오의 특징이다.

팀 버튼 감독 영화의 위트가 좀 더 밝아진다면, 미쉘 공드리 감독의 판타지를 좀 더 정교한 그래픽으로 표현한다면, 웨스 앤더슨 감독이 즐겨 사용하는 색감을 섞어놓는다면 그 언저리쯤에 디지페디 뮤직비디오가 있을 것이다. 앞의 세 감독은 모두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비주얼 요소를 강하게 구사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디지페디의 두 감독도 “팀 버튼과 미쉘 공드리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1년에 30편 넘게 의뢰를 받고 일본·미국·캐나다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도 만드는 두 감독은 자신들의 작품이 왜 인기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만 “기발하다” “재미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두 감독의 공통점은 박상우 감독(시각디자인 전공)이나 성원모 감독(멀티미디어 전공)이 영상과 관련된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둘은 초·중·고교를 함께 다닌 동창생이고 함께 만화를 그려서 발표하는 등 공식 데뷔(?) 전부터 죽이 잘 맞았다.

처음에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뮤직비디오 작업을 알음알음 의뢰받아 부업처럼 했다. 처음 TV를 탄 작품은 다이나믹 듀오의 <복잡해>(2007년). 입소문이 나고 의뢰가 늘어나자 2009년 1월1일 ‘디지페디’라는 회사를 정식으로 만들고 본격적으로 작업에 나섰다. 처음에 300만원에서 시작한 의뢰비도 500만원, 1000만원 식으로 뛰었다. 

영상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시대인 만큼 뮤직비디오에 대한 수요도 크게 늘어났지만 뮤직비디오로 밥 먹고 살기는 대단히 어렵다고 한다. “전에는 카메라 촬영이 중요했지만 요즘은 컴퓨터 하나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누구나 편집할 수 있으니까 뮤직비디오 감독이 양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름을 알리고 살아남는 이는 극히 소수다.”(박상우)

이들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아이돌 그룹의 전유물 중 하나인 ‘칼 같은 군무’가 뮤직비디오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개 기획사에선 뮤직비디오에서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예쁘고, 이렇게 춤을 잘 춘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디지페디에 작업을 의뢰하는 기획사들은 “알아서 해달라. 군무는 굳이 넣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디지페디에 작업을 의뢰할 때는 기발한 착상이나 특이한 점을 얻어내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성원모 감독은 “밝고 유머러스한 콘셉트를 요구하는 쪽에서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고 밝혔다. 이들은 광고 동영상 작업도 겸하고 있다. 스포츠 브랜드 푸마, LG전자의 옵티머스G 시리즈 바이럴 영상이 이들의 작품이다.

이들의 작업은 보통 촬영 1~2주, 편집 2주 정도 걸린다. 회사 식구는 5명. 두 감독 모두 시각 미디어 쪽을 전공했기에 웬만한 미술 작업은 3D 빼고는 직접 한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에 등장한 애니메이션이나 일러스트는 모두 둘이 직접 작업한 것이다. 둘의 협업 체계는 의뢰받은 곡마다 누구의 아이디어나 비전이 더 선명하고 구체적이냐에 따라 한 명이 메인이 되고, 다른 쪽이 서브가 되는 것으로 이뤄진다. 둘의 의견이 다를 때는 좀 더 확실한 의견을 내는 사람의 의견을 따른다.  

이들은 뮤직비디오 작업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영화는 여러 사람과 맞춰서 일해야 하는 게 불편하지만 이 일은 둘이서 할 수도 있고 한 달 정도면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라 작업 시간이 짧아서 좋다. 물론 음악도 좋다”(성원모). “우리가 만든 영상이 사람들에게 그 노래 하면 떠오르게 하는 단 하나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게 좋다”(박상우). 두 사람이 대표작으로 생각하고 있는 영상물은 달랐다. 성 감독은 자우림·아지아틱스·이디어테잎이 협업을 한 <핍쇼>라는 영상물을, 박 감독은 존 박의 <폴링>을 첫손에 꼽았다.

뮤직비디오 장면. ⓒ 디지페디 제공
빠르게 변하는 10대 감성 끌어내는 재주

이들이 걱정하는 것 중 하나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 디지페디는 2000년대 초반까지 뮤직비디오 업계를 휩쓸던 드라마 스타일의 뮤직비디오를 만들던 이전 세대를 누르고 등장했지만 이제 30대 중반이 된 그들도 기성세대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작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동년배 가수와 소주 한잔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전혀 그럴 일이 없을 정도로 나이 차이가 커졌다. “아직은 괜찮은 것 같은데 분명 나이를 먹을수록 다를 것이다. 그래서 조감독이 어리다.(웃음) 연출의 방향성은 나이와 상관없고 디테일한 표현은 젊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는 편이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줄 안다면 디테일은 빌려올 수 있는 것이니까”(성원모).

심의는 이들의 걱정 대상이 아니다. 이들은 “만들 때는 심의를 신경 쓰지 않으며 만들고 나중에 지상파용으로 따로 편집하는 경우는 있다”고 했다. 하지만 ‘웃자고 만든’ <까탈레나>가 심의에 덜컥 걸리고 말았다. KBS는 최근 <까탈레나> 뮤직비디오를 방송 부적격 곡으로 선정했다. ‘생선’(인어공주)으로 분한 가수가 비닐을 쓰고 있는 장면 등이 ‘인명 경시’를 초래한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이들은 심의 결과에 동의하지 않는다.

외국에서는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이 장편영화로 가는 경우가 흔하다. 둘의 생각은 “의뢰가 온다면 하겠다”는 것. 이들의 발랄한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어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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