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R 구축 위해 남북 실무진 극비 접촉했다
  • 홍순도│아시아투데이 베이징 특파원 ()
  • 승인 2014.04.0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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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지난 3월 말 만나…북한 국가경제개발위 고위 간부 참석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통일이 대박’이라는 말이 한창 회자된다고 하지만, 중국 분위기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이는 중국 베이징의 한국 대사관에서 두 번째 근무한다는 한 참사공사관의 술회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시절에 중국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남북 교류와 경협의 현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공관에서 일일이 체크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남북 접촉이 이뤄졌다. 또 많은 사업이 실제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당시 한국 언론사 중국 특파원들은 본연의 임무인 중국의 각 분야에 대한 취재뿐 아니라, 남북한의 다양한 접촉 현장을 쫓아다니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하지만 지금은 변했다. 속된 말로 파리를 날리고 있다.”

3월26일 북한 박봉주 내각총리가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알렉산드르 갈루쉬카 러시아 극동개발부 장관과 일행을 만났다. ⓒ 연합뉴스
분위기가 침체됐다는 사실은 한때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만큼 수많았던 대북 사업 관계자들이 오늘날 거의 씨가 마른 것처럼 보이는 현실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부터 대북 사업을 한다는 것은 바로 쪽박을 찬다는 사실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자연 도태됐거나 스스로 알아서 방향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됐던 것이다. 실제로 지금 베이징을 비롯해 중국 전역에서 대북 사업을 한다고 돌아다니면서 명함을 돌리거나 하면 바로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다. 비록 지금 겉으로는 조용한 것처럼 보이나, 실제 남북 관계에서 베이징이 갖는 비중과 중요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실제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북 교류와 경협을 위한 양측 접촉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점을 포착하게 된다. 지금 한반도에서는 당장 전쟁이 벌어질 것처럼 서해 NLL(북방한계선) 해상에서 포격전이 벌어져도 중국 내 남북 민간 사업자 간의 물밑 접촉은 여기저기서 꿈틀대고 있다.

TKR 후속 작업 극비리에 진행  

가장 먼저 지난 3월 말 이뤄진 한반도종단철도(TKR) 구축을 위한 양측 실무진의 극비 접촉을 꼽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최후의 대북 사업가로 불리는 재중 기업인 김 아무개씨, 북한에서는 경제개발구의 창설과 운영을 전담하는 국가경제개발위원회의 최고위 간부가 실무진 각 5~8명을 대동하고 마주 앉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논의된 내용도 간단하지 않다. 우선 지난해 일부 한국 언론에 보도된 신의주-개성 간 고속철도와 고속도로 건설 프로젝트가 눈에 확 띈다. 이 사업은 얼핏 보면 권한과 능력에 일정한 한계가 있는 민간 대북 사업자가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그동안의 추진 상황을 깊이 살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원래 이 사업은 중국에서 20년 이상 사업을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막강한 인맥을 구축해놓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김씨가 아이디어를 냈다. 당연히 중국 당·정 고위층과 연결되는 현지의 유력 기업과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한국 유력 기업들 역시 별로 어렵지 않게 연결됐다. 북한이 김씨를 사업 파트너로 흔쾌히 인정한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서울에서부터 개성을 통해 신의주로 연결되는 경의선 고속철도 구축 논의는 자연스러운 수순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양측 간에 진짜 합의가 돼서 건설이 되면 TKR은 머지않은 미래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그 밖에도 이 접촉에서는 신의주-개성 고속철도 구간 중간지점인 정주에서 나진·선봉까지 연결되는 고속철도의 구축 역시 논의됐다고 한다. 한눈에 봐도 이 접촉이 TKR을 시베리아횡단철도(STR)와 연결시켜 한반도와 유럽을  잇는 프로젝트 실현을 위한 대좌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3박 4일간 진행된 접촉 분위기도 좋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남북한 간의 정치적 상황과는 별개로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전향적 입장을 양측 모두 견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후속 작업이 극비리에 진행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과 기술은 중국과 한국이, 노동력과 광물 자원 개발권은 북한이 제공하기로 한 만큼 남북한 당국이 통 크게 결심만 하면 추진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다. 통일부를 비롯한 한국 당국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월25일 최연혜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업무 현황을 보고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북, 시장경제에 적극적으로 눈 돌려”

문화 분야에서도 안중근 의사 관련 책의 출판을 위한 양측 간 접촉이 성과를 낳고 있다.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라는 혁명 가극의 대본을 소설로 엮은 책의 남한 출간 프로젝트가 거의 성사 직전에 있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5주년, 일본 파시스트 패망 70주년을 맞는 내년을 출간 목표로 잡고 있다. 학생운동권 출신인 김 아무개씨가 북한 출판 당국으로부터 판권을 사들여 사업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장 반응을 보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일단 올해 중국에서 먼저 출판할 예정이라고 한다.

요식업과 물류 분야에서의 양측 접촉에서는 짧은 시간 내에 바로 성과를 낸 사례도 있다. 성공을 거둔 남측의 주인공은 베이징에서는 꽤 알려진 사업가 ㅅ 사장이다. 최근 한국 맥주보다 맛이 좋다는 소문이 자자했던 북한의 대동강맥주를 중국에서 단독 취급하는 권리를 따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에서의 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한국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ㅅ 사장은 “북한은 지금 시장경제에 적극적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이 손을 내밀면 거부하지 않고 잡게 돼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만약 분위기가 좋아지면 봇물 터지듯 남북 경협이나 교류가 이어질 게 분명하다”며 장기적으로는 남북 경협과 교류를 낙관했다.

그 밖에도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전역에서 알게 모르게 양측 간의 교류 협력을 위한 크고 작은 접촉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NGO(비정부기구)나 종교단체들의 진출에 대해 북한 측 반응이 꽤 좋다고 한다. 한 기독교 교단 전도사인 ㅎ씨는 “과거 북한은 우리 종교인들과의 접촉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적대시하기도 했다. 요즘은 달라졌다. 조금이라도 경제적 도움을 주겠다는 의사를 표현하면 경원시하지 않는다. 먼저 요청하기도 한다. 상당히 고무적이다. 하지만 워낙 분위기가 좋지 않아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남북 관계는 빙하기처럼 보인다. 북한과의 경협 및 교류를 사실상 원천봉쇄한 5·24 조치가 풀리지 않는 한 해빙을 기대하기 어렵다. 통일이 대박이라는 말이 공허한 구호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중국 곳곳에서 이뤄지는 물밑 접촉을 잘 살펴보면 절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멸종한 것 같은 대북 사업가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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