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김황식, 일격 필살의 급소 때려라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04.0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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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 ‘진흙탕’… 친박 대 비박 공방 거세질 듯

기대했던 잔칫집 분위기는 사라지고, 유혈이 낭자한 집안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경선이 본격화되고 있는 요즘 새누리당의 분위기는 험악하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새누리당 ○○○ 후보 캠프에서 한때 논란이 됐던 ××× 후보의 여자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 있다” “△△△ 후보는 유력 주자인 □□□ 후보의 과거 정신과 진료 전력 등 은밀한 개인 신상까지 공개하려 적절한 타이밍만 노리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돌고 있다. 경쟁자의 민감한 과거사까지 들추며 치명상을 안길 급소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격한 분위기가 새누리당 각 예비후보 캠프에서 감지되고 있다.

“판을 키워도 너무 키웠다”

‘친박(親박근혜)’과 ‘비박(非박근혜)’ 진영의 대결 구도가 선명한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 양상은 아슬아슬하다. 정몽준-김황식-이혜훈 후보 3인이 맞붙은 서울시장 경선 과정에서 들려오는 잡음이 크기 때문이다. 후보 간 무차별적 네거티브 공격과 반격으로,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적과 싸워보기도 전에 우리끼리 치고받다 죽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중진 차출론’을 앞세워 거물급 정치인이 선의의 경쟁을 펼칠 것이라는 당 지도부의 노림수는 과녁을 빗나가는 형국이다. 오죽하면 7선 중진이자 친박 좌장 격인 서청원 의원이 새누리당 공개회의 석상에서 “당원으로서만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낯 뜨거운 네거티브 공세다. 당 지도부가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왼쪽) 새누리당 의원과 김황식 전 총리가 3월25일 서울 용산구의 한 웨딩홀에서 열린 재경광주전남향우회 여성회 경로위안잔치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당내에서는 여권의 차기 ‘잠룡’으로 분류되는 정몽준 후보와 김황식 후보가 대립하는 구도를 만든 것 자체가 근원적인 문제였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판을 키워도 너무 키웠다”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싸움’에 임해야 하는 양상이다. 후보 간 한 차례 난타전이 펼쳐진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은 다소 진정 국면에 들어간 형국이다. 하지만 네거티브 선거전의 강도는 더욱 세질 것으로 보인다. 대세론의 정 후보나 확장론의 김 후보 모두 복잡한 속내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김황식 후보는 3월14일 귀국한 후 본격적으로 서울시장 경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보름도 채 안 된 3월27일 ‘당 공천위의 미숙한 경선 관리’와 ‘경쟁 후보들의 무차별적인 비난’ 등을 이유로 경선 참여 보이콧을 선언했다. 그는 사흘 만인 30일 활동 재개에 나서며 경선 복귀를 선언했다. 하지만 김 후보의 보이콧 선언은 ‘정치인 김황식’의 이미지에 흠집을 냈다. 보이콧 선언 직후 기자와 만난 비박 진영의 한 중진 의원은 김 후보에 대해 “(정치가로서는) 미숙아”라고 대놓고 비난했다. 김 후보가 오랜 기간 서울시장 출마를 주저하다가 후발 주자로 뒤늦게 뛰어들어놓고도, 또 보이콧을 선언하며 풍파를 일으키는 데 대해 당내 비주류 측의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을 대변한 것이다. 이러한 당내 분위기를 모를 리 없는 김 후보 측이 경선에 찬물을 끼얹는 보이콧 선언을 한 데는 말 못할 속사정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친박 진영의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김황식 후보가 선거전에 뛰어들기만 하면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지지율이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갈수록 분위기가 정체되거나 하향세를 보이고 있고, 오히려 3위인 이혜훈 후보의 추격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 후보 캠프 쪽에서는 상대 후보에게 ‘박심(朴心)이 배후에 있다’는 공격만 받을 뿐 친박 진영으로부터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보이콧 선언은 이러한 김 후보 측의 고충을 친박 쪽이 좀 알아달라는 SOS인 셈”이라고 말했다.

네거티브 카드 만지작거리는 김황식

그런데 김황식 후보 측이 경선 복귀를 즈음해 내건 또 다른 카드가 있다. 바로 선거 막판까지 궁지에 몰릴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쓸 ‘네거티브 카드’다. 주변의 시각은 “생각보다 너무 일찍 (네거티브 카드를) 내밀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김 후보 측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 후보 측은 보이콧 선언 철회와 동시에 정몽준 후보 측의 금권 선거 의혹(현대중공업이 정 후보에 대해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거액의 광고비를 썼다는 의혹)과 빅딜설(서울시장 경선에서 이혜훈 후보가 정 후보를 돕고 대신 정 후보의 동작 을 지역구를 승계받는다는 소문) 등 네거티브 공세에 집중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김 후보는 “본인은 의혹 제기와는 상관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런 해명이 상대 후보의 반발을 더욱 부추기면서 후보 간에 난타전이 이어졌다. 정몽준 후보는 4월1일 CBS 인터뷰에서 “타이슨의 권투 경기를 봤는데 상대편의 귀를 물어뜯어 권투계에서 아주 쫓겨났다”며 “정치판에도 이런 반칙을 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역공도 펼쳤다. 정 후보 측은  “(김황식 후보는) 수억 원이 소요되는 대규모 경선 사무실과 고급 인테리어,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콘텐츠 등을 어떤 자금으로 준비했는지 출처를 밝혀야 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혜훈 후보도 4월1일 언론 인터뷰에서 “김 후보는 캠프의 네거티브 공세에 대해 본인은 아는 바 없다고 한다. 수십 명 조직도 관리 못하는 사람이 1만명이 넘는 서울시 공무원을 어떻게 관리하겠느냐”며 가세했다. 

보이콧 철회와 함께 김황식 후보 측이 공개적으로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펼친 것을 두고 역전을 위한 ‘한 방’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선거 전략 전문가로 통하는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당내 경선은 짧은 기간에 승부를 봐야 하는 싸움이다. 근소한 차이의 간격이 아니라면 승부를 뒤집기는 힘들다. 내가 만약 선거 캠프에 있다면 분위기를 역전시킬 수 있는 상대 후보의 막말 동영상이나 네거티브 소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황식 후보가 전세 역전을 노리면서 네거티브 전략이라는 카드를 빼들었다면, 정몽준 후보 측은 ‘박심 공들이기’에 나서고 있다. ‘대세론’으로 경쟁 후보를 견제하고 있지만, 경선 막판 박심 변수에 대한 우려를 떨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 후보는 4월2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살던 서울 중구 신당동 가옥을 방문했다. 그는 “서울시장이 되면 중구청과 협의해서 편리하게 방문할 수 있도록 주변을 정리할 계획”이라며 “우리나라에서는 박(근혜) 대통령님을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데 저도 우리 박 대통령 팬클럽 회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4월2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서청원 의원이 서울시장 경선에서 빚어지는 네거티브 양상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4월1일 이혜훈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서울 여의도동 선거사무실에서 열린 ‘구의회 의장단 조직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뉴시스
박심 비난했던 정몽준, 박심 좇다 망신

하지만 ‘박심 공들이기’가 지나쳤는지 이미지를 구긴 일도 벌어졌다. 정 후보는 박 대통령의 원로 자문 그룹 ‘7인회’ 멤버인 최병렬 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표를 캠프에 참여시키려다 무산되기도 했다. 4월2일 정 후보 측은 최 전 대표를 ‘선대위원장’으로 위촉했다며 프로필까지 첨부해 공개했다. 하지만 최 전 대표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자, 이어 고문직으로 급히 수정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 전 대표가 아니라고 하자 선대위원장과 고문직 모두 ‘없던 일’이 돼버렸다. 최 전 대표 측은 “(정 후보가)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따졌다. 정 후보는 논란이 일자 “(최 전 대표가) 선대위원장이나 고문을 맡는 것에 대해 의욕이 분명히 있었다”며 “자세한 말씀을 드리기는 좀 그렇다”고 난처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 후보가 김 후보를 겨냥해 ‘박심 팔기’를 비판하면서, 정작 뒤에서는 박심 공들이기에 나선 것은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다. 경선이 가열되면서 김 후보 캠프를 중심으로 친박 진영 인사들이 속속 합류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형두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1급)이 최근 사표를 내고 김 후보 캠프로 자리를 옮긴 것이 대표적이다. 최 비서관은 박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 바로 밑에 있던 측근 인사다. 

서울시장 경선 과정에서 정몽준 후보와 김황식 후보 측이 험악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근저에는 이번 경선이 ‘친박’ 대 ‘비박’의 대리전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더욱이 정 후보와 김 후보는 양 진영에서 차기 대권 후보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상황이다. 양 후보 캠프가 마치 대선 캠프를 연상시키듯 매머드급으로 꾸려지고 있는 게 이러한 분위기를 시사한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정몽준 후보가 여야 대선 후보군에서 더욱 두각을 나타내게 됐고, 김황식 후보가 친박의 대표 인물로 인식됐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두 명 다 승자라고 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경선에서 패배하는 사람은 큰 정치적 상처를 입어 차기 대권에서 멀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두 후보와 친박·비박 진영 모두에게 이번 서울시장 경선은 져서는 안 되는 게임인 셈이다.

이에 따라 경선이 가열될수록 ‘박심’ 시비, 후보 자질 검증 등 후보 간 네거티브 전쟁이 다시 불붙을 소지가 다분하다. 김황식 캠프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성헌 전 의원은 최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본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떤 후보가 더 문제점이 없는지, 어떤 후보가 강점이 있는지 치열하게 공방전을 전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네거티브 2차전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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