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vs 민변 외나무다리 ‘간첩 전쟁’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04.0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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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으로 대충돌…장경욱 변호사 국보법 위반 조사설

‘창’이 있는 곳에 ‘방패’가 있다. 국가정보원발(發) 공안 사건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있다. “지금 대한민국 정국을 주도하는 곳은 다름 아닌 국정원”이란 얘기가 여의도 정치권에서 회자된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최근 여기에 하나 덧붙여, “그런 국정원과 맞서 정국을 주도하는 또 하나의 축은 민변”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국정원이 대공(對共) 수사를 통해 피의자의 검찰 기소를 이끌어낸다. 민변 소속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공동 변호인단이 법정에서 맞선다. 공안 정국에서 바야흐로 국정원과 민변이 외나무다리 위에서 혈투를 끊임없이 벌이고 있다.   

박근혜정부 들어 대형 공안 사건이 자주 터졌다. 국정원이 주도한 ‘공안 드라이브’ 속에서 창과 방패의 공방은 치열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양측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항소심 공판을 통해 제대로 붙었다. 하나의 진실을 두고 양측이 제시한 두 개의 증거가 완전히 엇갈렸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서울 내곡동에 있는 국가정보원 본부. 3월2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와 시민단체 참여자치21이 국정원과 검찰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연합뉴스
노무현 정권 초기 국정원의 위기

현재로서는 국정원이 수세에 몰렸다. 3월28일 검찰이 위조 논란을 불러일으킨 증거 자료를 모두 철회하면서다. 항소심 공판 과정에서 제출된 국정원 측 자료가 사실이 아니라는 쪽으로 검찰의 판단이 기운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 민변을 향한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다. 국정원의 역공이 시작된 것이다. 사건을 둘러싼 국면은 더욱 복잡해졌다.

‘사생결단’에 가까워 보이는 양측의 대립은 유서가 깊다. 1988년 5월 창립된 민변의 제1활동은 국가보안법(국보법) 위반 사건의 변호였다. 1990년대 초 변론을 맡았던 사건 중 50% 내외가 국보법 사건임을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98년 발간된 <민변백서>는 ‘민변 창립 초기의 엄혹한 시대적 상황은 이른바 시국 사건을 양산하였고 민변은 역사적 소명감을 가지고 이러한 시국 사건의 변론에 매진했다’고 기록했다.

국정원이 지닌 대공 수사권의 법적 근거는 국보법이다. 국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들을 변호하는 민변으로서는 그 태생부터 국정원과 상극이다. 양자는 개별 ‘시국 사건’마다 사사건건 창과 방패로 맞서 충돌했다. 이뿐이 아니다. 민변은 국보법 폐지 및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이관을 꾸준히 요구했다. 인권침해 소지가 다분한 국보법을 없애고 형법으로 대체 입법하는 한편, 국정원은 정보수집 기능만 수행하고 수사는 경찰 및 검찰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사기관’ 국정원의 존립 기반 자체를 위협해온 셈이다.

그런 시도가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할 뻔했던 시기가 노무현 정권 초반이다. 당시 민변은 노 정권의 핵심 ‘인력 풀’로 불릴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문재인 민정수석, 강금실 법무부장관 등을 배출하는 한편 18명의 민변 회원이 17대 국회에 입성했다. 집권여당이자 다수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국보법 폐지를 당론으로 정해 추진했다. 민변도 이에 호응해 전면적인 국보법 폐지 활동에 돌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대표를 맡고 있던 제1야당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도 ‘부분 개정’을 당론으로 내걸 정도로 ‘국보법 개폐’의 흐름은 거셌다. 그러나 여야의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더니 끝내 무산됐다.

국정원과 민변의 ‘악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무현 정권 당시 첫 국정원장은 다름 아닌 민변 초대 회장 출신인 고영구 원장이었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인사였다.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게 아니라 아예 자기 소굴에서 ‘수장’으로 모시게 된 격이었다. 당시 고영구 원장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국정원 개혁이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실제로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의원을 중심으로 수사권 이관 및 국내 정보 수집권 포기, 국회에 의한 감독 강화 등의 개혁안이 논의됐다. 이 또한 청와대가 개혁 의지를 꺾으면서 흐지부지됐다.

역대 정권을 통틀어 국보법 폐지, 국정원 개혁 바람이 가장 거셌던 시기가 그렇게 지나갔다. 2006년 불거진 ‘일심회 사건’은 국정원의 건재를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이명박 정권 초기인 2008년 5월 당시 김성호 국정원장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간첩·보안사범 수사를 강화해 안보 수사기관 본연의 정체성을 강화해나가겠다”고 천명했다. 국정원의 대공 수사가 다시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국 사건에서 탈북자 간첩 공방으로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2005년을 기점으로 60건 안팎으로 줄어들었던 공안 사건 접수는 2010년부터 100여 건으로 늘어났다. 2012년 112건, 2013년 129건 등이다. 국정원은 경찰이 수사를 시작한 2008년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 당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여 ‘공안몰이’ 논란을 낳았다. ‘여간첩 원정화 사건’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공안 사건들을 주도했다.

최근 국정원과 민변이 대립하고 있는 공안 사건들을 살펴보면 과거와는 다른 양상이 감지된다. 내국인의 ‘시국 사건’ 중심이었던 예전과 달리, 이제 국정원과 민변 사이의 대립은 북한 이탈 주민의 간첩 혐의 쪽으로 무게추가 옮겨간 모양새다.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 사건이 대표적이다. 2008년 ‘원정화 사건’, 2012년 ‘이경애 사건’, 최근 증거 조작 의혹이 제기된 ‘보위사령부 홍 아무개씨 사건’ 등도 이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민변 측은 “최근으로 접어들수록 탈북자들이 국정원의 ‘타깃’이 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이 있다. 간첩으로 지목된 사람 혹은 핵심 증인의 진술이 국정원 수사 이후 번복됐다는 점이다. 국정원은 피의자 당사자나 탈북자 증인의 진술을 핵심 증거로 삼는다. 그런데 그 진술 내용이 쉽게 뒤집히다 보니 진실 공방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서울시 공무원 사건의 경우 피의자 유우성씨의 혐의를 진술한 여동생 가려씨가 진술을 번복했다. 1심 재판부는 국정원이 확보한 가려씨 진술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시민사회 및 법조계 일각에서는 탈북자들에 대한 중앙합동신문센터의 조사 환경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북한 이탈 주민이 국내에 처음 들어와서 조사받는 과정을 국정원이 총괄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조작된 진술을 확보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국내 최대 변호사 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는 최근 발간한 <2013 인권보고서>에서 ‘합동신문 과정에서의 인권 문제’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다. 보고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 결과 등을 근거로 ‘(국정원 직원인) 조사관들이 보호신청자를 조사실에 수용한 상태에서 보호신청자에게 반복적으로 자술서를 작성하도록 지시하는 등 강도 높은 신문을 하는 행위는 불법 감금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간첩 혐의에 대한 불법적인 강제 수사’라고 규정했다. 현재 합동신문센터 수용자들은 변호인 접견이 불가능하며,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독방에 수용돼 조사를 받는다. 사실상 행정 조사가 아닌 강제 수사임에도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영장주의나 적법 절차 보장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국정원과 민변 사이에서 ‘탈북자 간첩’ 공방이 빈번해진 배경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사정 당국이 민변 소속 장경욱 변호사의 국보법 위반 혐의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는 아예 민변 심장부에 칼날을 겨눈 것으로 양측의 공방이 더욱 격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어서 주목된다. 장 변호사는 과거 일심회 사건부터 최근의 이석기 사건 등 굵직한 공안 사건의 공동 변호인단으로 활발히 활동해왔다. 서울경찰청은 장 변호사가 지난해 11월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한반도 관련 세미나에서 북한 통일선전부 관련 인사들과 접촉해 북한 동조 발언을 한 혐의를 수사 중이다. 이에 대해 장 변호사는 4월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누군가 그런 (취지로 사정 당국에) 고발을 했다고만 안다. 아직까지 소환조사를 받은 적은 없다. 당시 행사에는 세계 곳곳의 인사들이 참석했는데 국보법을 위반한 어떠한 일도 없었다”고 밝혔다.

“종북 단체인 민변이 사건 왜곡한다”

탈북자 증인의 비공개 법정 증언을 북한 측에 유출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사건 증인으로 나선 탈북자 김 아무개씨가 자신의 비공개 법정 증언이 북한 보위부에 알려져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위협을 받았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법정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사정 당국에서는 민변 변호인들이 ‘통로’가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민변 측은 변호인단 브리핑을 통해 “탄원서 내용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기재된 내용마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검찰 수사에 반발해 자살을 시도했던 국정원 권 아무개 팀장은 “민변이라는 종북 단체에 의해 간첩 사건이 왜곡되고 있다”며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국정원이 민변에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증거 조작 의혹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국정원이 민변을 향한 ‘색깔 공세’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국보법으로 맺어진 ‘상극’, 국정원과 민변의 대립이 격해지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현 정부 들어 실제 공안 사건이 있나.

(과거 정권에서) 한동안 줄었다 최근 다시 늘어났다. 서울시 공무원 사건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무리한 기소가 늘어났음을 체감하고 있다. 국정원은 말할 것도 없고, 검찰도 제대로 된 증거 없이 아마추어 식으로 기소를 하고 있다.

국정원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가 안보를 위해 정보기관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과연 올바른 역할을 하는지다. 과거부터 국가 안보가 아닌, 정치권력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오히려 국민을 탄압하고 인권을 억압하지 않았나. 그런 모습이 한동안 줄었다가 다시 늘어나는 인상이다. 형사 사건 증거를 조작하는 등 있을 수 없는 일까지 자행하고 있다. 국정원 개혁이 시급하다.

민변이 주장하는 국정원 개혁 방안은 무엇인가.

정보기관은 수사권을 행사하면 안 된다. 정보기관은 정보 수집의 전문성 확보에 집중하고, 수사는 전문 수사기관인 경찰과 검찰이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니 ‘국민의 국정원’이 아닌 ‘정권의 국정원’이 된다.

장경욱 변호사에 대한 국보법 위반 수사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수사 중이라는) 말만 나오고 있을 뿐이다. 정식 소환 통보는 없었다. 장 변호사가 이미 입장 표명을 했다. 아직 ‘정식 액션’이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민변 차원에서의 입장 표명은 검토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의 국보법 사건 변론, 혹은 증거 조작 규명 등에 대한 보복의 일환으로 수사를 진행한다는 사실이 앞으로 드러나게 된다면 엄중히 대처할 것이다.

유씨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선 탈북자 김씨의 탄원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지나치게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의혹이 있다면 명명백백하게 규명하면 된다. 만약 지금 풍문이 나오는 것이 피고인의 정당한 변론권, 헌법에 보장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제약하려는 의도에 의한 거라면 매우 잘못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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