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해체 원하는 자 극우 정당으로 오라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4.04.0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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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정책 연구기관 ‘폴리시 네트워크’ 르노 티예 수석연구원 진단

프랑스의 마린 르펜(46) 국민전선(FN) 총재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항상 놀림을 당했다. 학교에서 친구들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국민전선을 만든 장 마리 르펜(86) 전 총재를 ‘파시스트’라고 놀렸다. 친구들의 시선은 대중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민전선은 그렇게 프랑스 사람들에게 조롱거리였다. 그 누구도 이들을 두고 정치 집단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런 국민전선은 이번 프랑스 지방선거에서 유의미한 득표율을 올리며 주목받았다. 12명의 시장도 배출했다. 일각에서는 ‘탈색 효과’ 때문이라고 했다. 부친의 뒤를 이어 국민전선의 수장이 된 마린 르펜 총재는 당에서 아버지의 색깔을 벗겨내는 데 오랜 시간을 들였다. 아버지를 부정하는 작업은 효과를 봤고 득표율 상승을 불러왔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프랑스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유럽에서는 극우 바람이 거세다. 극우 정당이 대안 정치세력으로 부상하는 흐름이 유럽 전 지역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시사저널은 4월1일 영국 런던에 있는 유럽 정책 연구기관인 ‘폴리시 네트워크(Policy Network)’의 르노 티예 수석연구원과 인터뷰를 가졌다. 파리정치대학(Science-Po)과 런던경제학교(LSE)를 졸업한 뒤 EU(유럽연합)를 거친 티예는 프랑스 지방자치단체에서 정책 자문을 역임한 프랑스인이다. 그에게 이번 프랑스 지방선거는 주목의 대상이었다.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에서도 극우 정당의 바람이 거세다. 2014년 2월1일 그리스의 황금새벽당 지지자들이 나치식 경례를 하고 있다. ⓒ AP 연합
“국민전선 득표율 4.7%, 실제 민심보다 낮다”

4.7%. 그는 인터뷰 시작 때부터 일단 국민전선의 지방선거 득표율을 거론했다. “4.7%라는 수치에는 오해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티예의 말은 4.7%가 너무 높게 나왔다는 뜻일까. 반대였다. 오히려 낮게 나왔다는 얘기다. “큰 정당과는 달리 국민전선은 몇 개의 선거구에만 후보를 냈기 때문에 이 숫자는 국민전선의 지지율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 그랬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 유권자의 20~25% 정도가 오는 5월에 있을 유럽의회 선거에서 국민전선 후보를 뽑겠다고 밝혔다. 유럽의회 선거만 놓고 볼 때 프랑스에서는 둘째, 잘하면 첫째도 가능하다는 게 티예의 전망이다.

극우 정당은 비단 프랑스만의 얘기가 아니다. 요즘 유럽에서 활개를 치는 극우 정당들은 경제 위기의 나락에 빠진 그리스,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에서도 연쇄적으로 떠오른다. 

이들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뭘까. 티예는 극우 정당이 ‘반체제적’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 유럽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공약보다는 대중이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인데 오늘날 유럽은 과거와 달리 불만으로 가득 찬 사회가 됐다. 경제적·문화적으로도 불안정해졌다고 느끼는 유럽인이 많다. 일자리를 둘러싼 논란은 이민자들과의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이슬람계 이주민이 많은 지역에서는 문화적 긴장감이 팽팽하다. 티예는 “집권 정당들은 사람들의 상황을 개선해줄 수 있다고 설득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대안이 국민전선이나 자유당과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국민은 이번 선거에서 국민전선에 “그래. 한번 나가서 해봐”라는 신호를 보냈다. 탈색의 효과다. 국민전선은 더는 인종차별적 발언 등을 하지 않는다. 네덜란드도 비슷하다. 자유당은 오히려 동성애자들을 옹호한다. 대신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문명 대결이다. 네덜란드의 자유당은 동성애자를 옹호하며 이렇게 말한다. “너희를 위협하는 이슬람주의자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집권당은 EU 찬성주의자고 세계화를 찬성하며 너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고.

이런 말들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었다. 유권자들 중 일부는 “EU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EU가 통합을 통한 경쟁과 효율을 내세우는 동안 극우의 날개는 커졌다. EU 찬성론자들은 EU가 취업 기회를 늘리고 이주의 자유를 확대한다고 주장했지만, 이것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극우 쪽에 표를 던졌다. 일자리가 불안정한 사람들, 풍족하지 않은 사람들은 당장 이렇게 말한다. “저 정치인들은 거짓말쟁이다. 내 삶을 보라.”

“유럽의회 반대 세력으로 자리매김”

선거에서 표를 얻은 극우 정당들의 이후는 어떻게 될까. 의회에서 극우 정당이 규모가 더 큰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게 될 수도 있다. 현재는 프랑스 의회에서 두 자릿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다음 선거가 있는 2017년에 의석을 늘린다면 연합정부에 참여할 가능성도 있다. “큰 정당과 협력해야 하는 문제 등을 고민할 수 있는 단계까지 극우 정당이 도달해야 좀 더 의미 있는 정당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티예는 진단했다.

다만 좀 더 친절하게 유권자에게 다가가는 극우 정당은 당장 5월에 열릴 유럽의회 선거에서 표몰이를 할 가능성이 커졌다. 유럽의회에 극우들이 똬리를 트는 것은 유럽 각국에 골칫거리나 다름없다. 그래서 정부 간 협력까지 논의되고 있다. EU의 양대 축인 프랑스와 독일은 지난 1월 극우 정당 대처법을 두고 모임을 가졌다. 극우 정당들의 국수주의적인 캠페인에 대응하기 위한 친EU적인 대응을 공동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티예의 생각은 다르다. 극우 정당의 위험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유럽의회 의석수는 766석이다. 현재 추세라면 50~100개 의석을 극우 정당이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꽤 많은 수인 만큼 이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릴 것이다. 반면 중도 좌파 정당과 중도 우파 정당의 협력 가능성도 커졌다. 극우 정당의 성격도 두고 볼 문제다. 유럽 극우 정당은 ‘국가 이익’에 충실한 존재다. “극우 정당 간에도 의견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데 이들은 국가 이익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럽의회에서는 유럽 차원의 해결책이 논의된다. 그럴 때마다 이들 정당은 늘 반대표를 던지는 반대 그룹이 될 뿐이다.” 극단주의가 득세하더라도 유럽은 괜찮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옴 직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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