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주는 막장 드라마와 섞이기 싫어해
  • 정덕현│대중문화 평론가 ()
  • 승인 2014.04.09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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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낮아도 완성도 높은 작품 선호…2030 세대 기호 제대로 반영 안 돼

무모한 도전일까. 아니면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일까.

SBS가 월·화·수·목 내내 장르 드라마를 편성했다. 월·화에는 <신의 선물 14일>, 수·목에는 <쓰리데이즈>가 방영되고 있다. 본격적인 장르 드라마의 시청률이 낮다는 것이 한국에서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에서 SBS의 이런 드라마 편성은 이례적이다.

실제로 이 두 드라마의 시청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신의 선물 14일>이 9% 정도의 시청률에 머무르고 <쓰리데이즈>는 11%가량을 기록하고 있다. 예견된 시청률이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멜로 없는 본격 장르물은 시청률을 내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본격 장르물이 갖는 특성과 우리의 드라마 시청 패턴이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신의 선물 14일> 같은 스릴러물은 잠깐 한눈을 파는 것으로 이야기 전개의 맥을 놓치기 쉽다. 그러니 한 회를 놓치게 되면 다음 회를 보기가 쉽지 않다. 드라마가 집중력을 요하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하며 설렁설렁 시청해온 시청자에게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은 것이다.

와 출연자들. ⓒ SBS 제공
그래서 한국식 장르물은 멜로를 섞는 것으로 일종의 타협을 시도해왔다. SBS가 전 방위적으로 시도했던 이른바 ‘복합 장르’는 그런 시도를 통해 탄생한 퓨전물이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같은 작품은 법정물에 스릴러, 게다가 초능력이 나오는 슈퍼히어로물까지 뒤섞여 있다.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멜로에 근접해 있다. 타인의 속내를 읽어내는 능력을 가진 박수하(이종석)가 위기에 처한 장혜성 변호사(이보영)를 돕다가 사랑에 빠지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최근 종영된 <별에서 온 그대> 역시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는 슈퍼히어로물에 액션·스릴러 등 여러 장르가 묶여 있지만 그 핵심은 로맨틱 코미디다.

하지만 <신의 선물 14일>이나 <쓰리데이즈>는 다르다. 멜로의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실제 멜로는 좀체 보이지 않는다. <신의 선물 14일>은 유괴돼 시신으로 돌아온 딸에 절망한 엄마가 14일 전으로 되돌려진 시간 속에서 딸의 죽음을 막기 위해 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성애가 섞여 더 강렬한 스릴러를 만들어내는 이 작품은 멜로의 편안함은커녕 끊임없이 생겨나는 용의자로 인해 시청자를 계속 함정에 빠뜨린다.

<쓰리데이즈> 역시 어느 날 벌어진 대통령 총격 사건을 기화로 서서히 드러나는 과거 대통령에 얽힌 부조리한 사건을 경호실을 중심으로 추적하는 이야기다. 흥미로운 건 두 작품 모두 시간적 제한이라는 장치를 뒀다는 점이다. 미국 드라마(미드) <24>가 시간적 제한을 통해 극도로 압축된 사건을 긴박감 있게 풀어냈던 것처럼 이 두 작품도 비슷한 효과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이 긴박감은 전통적인 TV 시청자에게는 따라가기 힘든 속도를 만들어냄으로써 시청률에는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쓰리데이즈> <신의 선물>, 미드 <24>와 비슷

이들 드라마의 낮은 시청률에 대한 SBS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SBS 드라마국의 김영섭 CP는 낮은 시청률에도 자신감과 확신에 차 있었다. 그는 “멜로와 가족 드라마가 아니면 시청률이 안 나온다는 편견 때문에 언제나 거기에만 머물러 있을 순 없다. 이제 우리 시청자도 미드 같은 장르를 즐길 정도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이다. 우리 시청자가 한순간도 방심하지 못할 만큼 복잡한 추리물인 <셜록>을 즐기고 심지어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프리즌 브레이크>로 미드가 본격적으로 대중의 눈에 들어오던 시절부터 예고됐던 일이다. 

현재의 시청률 추산 방식이 젊은 시청층을 배제하거나 새로운 시청 패턴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은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최근 한 매체에 의해 공개된 ‘방통위 시청 점유율 조사 검증 연구’는 현재의 시청률 추산 방식이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2012년과 2013년 두 해 동안의 시청률 조사 문제점을 분석한 이 연구 자료를 보면 시청률 조사에서 2030 세대의 의견 반영 비율이 50세 이상의 의견 반영 비율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 자료가 분석한 시청률 조사의 연령별 비율을 보면 AGB닐슨은 2030 세대가 21%인 데 반해 50세 이상은 41%였고, TNmS 역시 2030이 20%, 50세 이상이 39%였다. 현재 제시되고 있는 시청률은 젊은 시청자의 기호나 시청 패턴을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100% 유선전화를 통해 이뤄지는 기초 조사 역시 국내 10가구 중 3가구가 유선전화를 갖고 있지 않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전화를 받더라도 낮 시간대에 집에 머무르는 노년층이 주된 응답자가 된다는 점이다. 소득별로도 월 400만원 이상 고소득자가 기준보다 많고 200만원 미만 서민층이 적어 서민 의견 반영 역시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조사에 참여하는 패널 중 무효 패널 비율도 조사 회사가 발표한 5%의 두 배 이상인 것으로 보고됐다. 무효 패널 비율은 닐슨이 10.4%였고, TNms는 무려 30.5%에 달했다. 이 정도면 신빙성 있는 시청률 조사라고 보기 어렵다.

2030 기호 반영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이러한 시청률 추산 방식에 대한 불신은 광고회사도 주지하고 있다. 지난해 이 연구의 검증팀이 방송사와 광고대행사 등 78개 기관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54개 기관의 무려 94%가 ‘시청률 결과가 납득이 안 돼 조사 기관에 문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러한 불신은 실제 드라마 광고가 시청률과 무관하게 판매되고 있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쓰리데이즈>가 낮은 시청률에도 8주째 광고 완판을 기록하는 효자 드라마가 된 반면, 드라마 결말이 논란을 불렀던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시청률을 17%까지 끌어올렸지만 광고 영업은 잘되지 않았다고 한다. 30% 정도밖에 광고가 판매되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까지 나온다.

“막장 드라마의 시청률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광고가 완판되는 건 아니다.” 김영섭 CP는 현 드라마 광고 시장의 변화를 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즉 부정적인 이미지로 시청률이 높게 나온 작품에 자사 광고를 붙이는 것을 광고주도 꺼린다는 것이다. 시청률이 조금 적게 나와도 평이 좋고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의 광고 효과가 더 좋다는 얘기다. 이것은 광고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일련의 SBS 드라마가 중국에서 열풍을 만든 것 역시 콘텐츠의 완성도에 투자한 결과다. 중국에서 일고 있는 <상속자들>의 이민호 열풍, 중국 정치권에서까지 거론된 <별에서 온 그대>, 방영되기도 전에 인터넷 방영권 최고가로 판매된 <쓰리데이즈>의 성공에서 늘 지적되는 건 완성도다. 게다가 CJ E&M의 <나인> 등 종편 드라마가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지상파를 압도하기도 한다.  

이런 여러 이유로 최근 SBS 드라마가 시도한 월·화·수·목 연속 장르 드라마 편성은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시청률 추산 방식에 근거해 당장의 시청률을 만들어낼 수 있는 막장 드라마나 새로움 없는 멜로와 가족 드라마의 반복은 결국 드라마계의 제 살 깎아먹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먼저 2030 시청자들의 기호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현실적인 시청률 추산 방식이 도입돼야 한다. 이는 전통적인 시청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지상파에는 헤게모니를 내걸어야 하는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혼자 눈을 가리고 있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 않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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