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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인의 숨겨진 욕망 끄집어내다

드라마 <밀회> 폭발적 관심… 피아노 소재로 베드신보다 ‘아찔’

정덕현│문화평론가 ㅣ | 승인 2014.04.16(Wed) 11:5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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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성들의 욕망은 깨어나는가. 최근 박칼린이 연출한 여성 전용 <미스터쇼> 공연장에서는 50대 중년 여성들의 환호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건장한 남성들이 훌렁훌렁 옷을 벗어던질 때마다 물개 박수가 쏟아지고, 아이돌이라도 본 듯 “꺄악” 비명소리가 터져 나온다는 것. 여성들만 볼 수 있는 쇼라서 남성들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한 일이지만, 여성들은 오히려 여성끼리만 보기 때문에 훨씬 더 쇼를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치 그동안 억눌려 있던 욕망을 마음껏 터뜨리기라도 하듯.

이런 풍경이 갑작스럽고 낯설다고 여겨지겠지만 사실 중년 여성들의 이런 반응은 이미 영화계에서는 하나의 마케팅 포인트로 제시될 정도로 일반화된 상황이다. 이안 감독의 <색계>나 유하 감독의 <쌍화점>의 흥행 성공 이면에는 바로 중년 여성들의 호기심과 열광이 있다. 김대우 감독의 개봉 예정작인 <인간중독> 역시 최근 늘어난 중년층을 겨냥한 19금 영화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평일 오전 시간대에 영화관에 가면 19금 영화를 즐기는 중년 여성을 보는 것이 그리 낯선 일은 아니다.

   
ⓒ JTBC 제공
스무 살 연하 파격 불륜에도 격조 유지

드라마는 그 장르적 특성상 콘텐츠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최근 들어서는 중년의 숨겨진 본능을 끄집어내는 작품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본래 그 수요는 있었지만 지상파에서는 좀체 다루기 어려웠던 이런 욕망들이 최근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케이블과 종편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먼저 19금 드라마를 실험했기 때문이다. 최근 JTBC에서 방영된 드라마 <네 이웃의 아내>는 노골적인 노출이 있지는 않았지만 성인 타깃이 분명한 본격적인 성인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제목에서 보여지듯 두 쌍의 부부가 서로 이웃의 이성과 눈이 맞는 상황을 그려냄으로써 화제가 되기도 했다. 크로스 불륜이라는 파격적인 소재였지만 중년에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와이프성(?) 발기부전’의 이야기나, 직장 여성이 공감할 만한 성희롱이 버젓이 일어나는 접대 문화 등이 리얼하게 그려져 성인들에게 논란보다는 공감을 얻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JTBC는 이 공감대의 가능성을 확인한 듯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작품으로 중년의 멜로를 이어갔고, 최근에는 김희애 주연의 <밀회>라는 작품으로 또 한 번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종편으로서는 꽤 높은 6%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는 <밀회>가 중년 여성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는 건 무려 스무 살 차이가 나는 청춘과의 불륜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드라마가 치정으로 전락하지 않는 어떤 격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회>는 이 불륜의 이야기 속에서 추악한 상류층의 이면을 끄집어내고 그 계급 구조 안에서 이 중년 커리어 우먼이 어떻게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청춘에게 빠져드는가를 보여준다. 거기에는 단순한 육체적 욕망을 넘어서는 ‘청춘에 대한 욕망’이 들어 있고, 한때는 꿈꾸었으나 이제는 현실로 인해 고이 접어버린 꿈에 대한 새로운 열망도 포함돼 있다.

<밀회>는 현재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중년들의 욕망을 좀 더 심층적으로 다룬다. 거기에는 나이 들어가는 육체와 삶을 되돌리고 싶은 좀 더 근원적인 욕망이 들어가 있고, 또한 그런 삶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돈과 관계되어 있는지가 다뤄진다. 이제 돈이 있다면 젊음도 살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흥미로운 건 <밀회>가 남녀 간의 격정적인 감정을 풀어내는 방식이다. 이 작품이 불륜을 다루면서 격조를 넣을 수 있었던 건 피아노라는 소재가 그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함께 피아노를 치는 장면은 그 어느 베드신보다 더 아찔한 느낌을 준다. 여자 주인공의 표정은 오르가슴에 도달한 여성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연주가 끝난 후, 이 젊은 남자가 “한 번 더 해요?”라고 묻는 대사나 거기에 대해 여자 주인공이 “오늘은 여기까지만”이라고 하는 답변도 대단히 성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장면 자체가 어떤 논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 이 두 남녀의 첫 정사 장면은 심지어 시적으로 연출됨으로써 오히려 호평을 얻어낸다. 남자의 남루한 집 구석구석을 훑는 카메라에 남녀의 소리만을 삽입한 것.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들려줌으로써 더 극적인 장면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것은 드라마의 격조를 만들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분히 여성 시청자들을 겨냥한 연출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시각적인 연출은 남성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지만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오히려 청각적인 연출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그러고 보면 피아노라는 소재 역시 그런 효과를 만들어내는 측면이 있다. 이 드라마를 보면 피아노가 그토록 섹시한 악기였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드라마, 결혼이 아닌 사랑이 목적

<밀회>는 물론 불륜과 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는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중년 여성들의 본능을 발견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안정된 커리어우먼으로 살아가는 여성이 어느 날 문득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본모습을 들여다보고는 청춘을 희구하는 건 지금 대중문화에서 전 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복고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중년들이 아이돌의 콘서트장에서 열광하는 모습이나, ‘할배’들이 배낭여행을 가서 청춘들을 만나 그 젊음에 경탄하는 장면,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나이 든 세대의 노래를 부르는 젊은이들을 확인하게 되는 모든 것들 속에, 젊어지고 싶은 이 본능적인 욕망의 이끌림이 들어가 있다.

게다가 지금은 나이 들면 늙기 마련인 육체에도 복고 바람이 부는 시대다. 과거 늙는 몸은 당연한 흐름이고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라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성형을 하든 운동을 하든 관리된 몸은 몸의 나이가 단지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인 것이라고 말해준다. 60대에도 중년의 몸을 과시하는 이가 있는 반면, 30대에도 폭삭 늙어버린 몸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세상이다. 그러니 노력만 한다면 과거로 되돌려지는 몸 복고의 시대에 나이 든 중년들의 욕망은 좀 더 자연스럽게 표출될 수밖에 없다. 여전히 즐기고 싶다면 관리하면 되는 시대인 것이다.

최근 안방극장에서는 결혼을 하나의 지상과제로 다루지 않는 경향이 생겼다. 오히려 이혼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드라마가 많아졌고, 결혼을 한 후 벌어지는 파경을 다루는 드라마도 많아졌다.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도 결혼이 목적이 아니라 사랑이 목적이 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으며, 심지어 나이 들어 혼자 사는 삶에 대해 당당하게 그리는 드라마도 많다.

노처녀라는 말은 사라지고 있다. 결혼 제도가 과거처럼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지상과제가 아니라 하나의 선택이 되는 것은 개인의 행복이 가족을 구성하는 것보다 점점 중요해지는 작금의 세태를 말해준다. 이 변화 속에서 개인의 욕망은 더 당당해진다. 그것은 새로운 가치가 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그들만의 쇼를 즐기거나 실제 벌이기 어려운 청춘과의 아찔한 로맨스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대리 충족하려는 욕구는 그래서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문화적인 변화는 결국 현실 또한 변화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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