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찍느냐고요? 나도 아직 몰러유”
  • 김현일│대기자 ()
  • 승인 2014.04.2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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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연합 한범덕 현 시장 대 새누리당 후보 판세 안갯속

“입은 믿지 마라. 손으로 확인해야 한다.”

선거를 여러 차례 치른 정치인들이 달고 사는 얘기다. “도와주겠다”는 유권자의 말만 믿었다간 뒤통수 얻어맞기 딱 알맞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악수를 할 때 손끝으로 전해오는 상대의 ‘마음의 소리’를 제대로 들어야만 후회를 하지 않게 된다는 경험칙이다. 유권자 성향이 분명한 영호남에서야 별로 참고할 바가 못 되지만 각축이 벌어지는 그 밖의 지역에서는 깊이 새겨들을 금언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충북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악수를 하면서 상대의 눈을 읽어라. 그래야 내 편인지, 적인지 알 수 있다.” 이는 여간해선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충북도민들의 특징에서 비롯하는 예화다. 좁은 바닥에서 혈연·학연·지연으로 얽히고설켜 있는 마당에 아무개를 찍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누구’와 원수지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어쨌거나 올해 지방선거는 더 헷갈릴 소지가 다분하다. 특히 우열을 점치기 힘든 도지사 선거와 통합 청주시장 양대 선거가 그렇다.

도지사를 놓고 같은 청주고 동기동창생인 새정치민주연합(새정치연합)의 이시종 현 지사와 새누리당의 윤진식 의원(충주)이 으르렁대는 가운데, 청주시장 선거 역시 ‘고교 대항전’ 성격을 띨 가능성이 농후해진 탓이다.

3월27일 충청북도노인종합복지관 주최로 청주 무심천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제1회 도민걷기대회’에서 한범덕 청주시장이 건강체조를 따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청주고 동문들끼리 난타전

새정치연합의 한범덕 현 시장과 새누리당의 남상우 전 시장은 고교 7년 선후배 사이다. 특히 한 시장은 고교 5년 선배이자 라이벌인 윤진식 의원과도 부딪쳐야 하고, 고교 동기동창인 보수 성향의 강상무 도교육감 후보와도 치고받아야 한다. 새정치연합 소속 오제세(청주 흥덕 갑)·노영민(청주 흥덕 을)·변재일(청원) 의원 등은 지역구 사수를 위해 청주고 선배인 윤진식 후보 등과 한 치의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오는 7월1일 청원군과 합친 통합 청주시가 출범한다. 인구 160만명의 충북에서 90만 가까이를 포용하는 대도시인 청주의 시장은 도지사 못지않게 정치적으로 중요한 자리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공천을 계속 미뤄야 했다. 도내 12개 기초단체 가운데 11명의 단체장 공천을 지난 4월14일 마친 새누리당이 청주시장 후보를 매듭짓지 못하고 질질 끌어온 이유는 여러 가지다. 새정치연합 후보로 확실시되는 한범덕 시장과 겨룰 ‘입에 맞는’ 대항마가 마땅치 않은 점과 정치적 배경이 다른 각 예비후보들 간에 양보할 기색이 추호도 없기 때문이었다. 여기엔 일부 후보 간의 구원(舊怨)도 작용했다.   

새누리당 청주시장 예비후보는 남상우·한대수 전 청주시장과 김동수 전 정통부 차관, 이승훈 전 충북 부지사 등 4명이었다. 이 중 김 전 차관은 윤진식 후보의, 이 전 부지사는 친박근혜계 정우택 의원(청주 상당)의 지원을 각각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후보는 비(非)청주고 표를 의식한 전략적 고려 등을 이유로 세광고 출신인 김 전 차관이 선택되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반면 윤 후보의 고교 2년 선배인 남 전 시장은 다소 껄끄러운 입장이었다. 한 전 시장은 서울 중앙고, 이 전 부지사는 서울고 출신이다.

지역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야권보다 더 높다는 점, 그리고 역대 청주시장치고 재선된 사람이 없다는 징크스 등은 여당에 유리한 국면이지만 이런 미묘한 양상들이 새누리당의 6·4 지방선거 전망을 흐리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실제 도지사 자리를 두고 6년 만에 리턴매치를 벌이는 이시종 지사와 윤진식 후보의 격차가 계속 좁혀지고 있다.

새누리당 예비후보인 김동수 전 정통부 차관·남상우 전 청주시장·이승훈 전 충북 부지사·한대수 전 청주시장(왼쪽부터). ⓒ 연합뉴스
“통합 청주시장은 전과 달라…징크스 없다”

1995년 민선 1기가 시작된 이래 5기에 이르기까지 역대 청주시장의 얼굴은 매번 바뀌었다. 김현수(자민련)-나기정(국민회의)-한대수(한나라당)-남상우(한나라당)-한범덕(민주당)으로 이어져왔다. 3기 한대수 전 시장과 4기 남상우 전 시장은 여당 경선에서 리턴매치를 벌이는 셈이다. 68세인 지금도 샌드백을 두들기는 남 후보와, 자존심이 남다른 70세 한 후보 간의 지지율 경쟁이 치열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4월14일 남 후보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한 후보가 불법으로 당원 명부를 받아 선거운동을 했다며 후보를 사퇴하라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때문에 도당 선관위는 여론조사 기관을 전면 교체하는 등 법석을 떨기도 했는데, 이렇게 쌓인 앙금들이 이번 선거에서 악재로 작용하리라는 전망도 있다. 남 후보는 특히 김동수 후보와 공동 기자회견을 가짐으로써 ‘차기’를 전제로 한 공조 체제라는 관측을 낳기도 했는데, 어쨌거나 이번 경선에서도 한 후보를 이긴 후 지난 선거에서 자신을 꺾은 야당의 한범덕 시장에게 설욕하려는 그의 집념은 남달랐다. 남 후보는 2010년 지방선거 당시 63.2%의 득표율을 기록한 한 시장에게 무참하게 패배한 바 있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 때 충주에서 1581표 차이로 승리했던 이시종 지사가 50년 지기 윤진식 후보와 6년 만에 도지사 자리를 놓고 또 한 차례 격돌하고, 통합 청주시장을 두고는 또 다른 형태의 ‘겹 리턴매치’가 벌어지는 충북의 선거판은 모두를 어지럽게 만든다. 동문 맞수들 간의 구원에 ‘신원(新怨)’이 겹치면서 정치 무상이 회자되기도 한다.

행자부 차관 등을 역임한 한범덕 현 시장이 ‘청주시장은 재선이 안 된다’라는 징크스를 깰지 여부도 지역에서는 큰 관심거리다. 한 시장 측은 “그런 징크스는 예전 청주시 때의 얘기일 뿐, 통합 청주시는 다르다”며 애써 무시하고 있다. 이에 여당 측은 “기본은 다르지 않다”며 반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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