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선장은 매뉴얼 어기지 않는다
  • 일본 도쿄=임수택 편집위원 ()
  • 승인 2014.04.3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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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지키고 기본에 충실…사고 나면 1년 넘게 원인 분석

#1. 2009년 11월13일 새벽 5시25분, 페리 아리아케호로부터 해상보안청운용사령탑센터에 연락이 왔다. 승객 7명과 승무원 21명을 태우고 와카야마 현 신구 시 앞바다 약 30㎞ 구마노나다를 항해하던 중 선체가 오른쪽으로 45도 기울어 긴급 구조를 요청했다. 해상보안청은 즉시 현장에 선박과 항공기를 발진시키고 특수구난대 및 간사이 공항 해상보안항공기지 기동구난사를 출동시켜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승객을 무사히 구조했다.

#2. 2010년 2월26일. 와카야마 현 시오노미사키 앞바다에서 화물선 ‘롱트레이더’호가 실은 짐이 기울어 균형을 잃으면서 침몰하는 해난 사고가 발생했다. 제5관구 해상보안본부는 순시선 항공기로 구조 활동을 펼쳐 승무원 12명 전원을 구조했다.

2011년 3월22일 일본 동북부 대지진 때 경찰이 쓰나미 피해 지역인 오카와 초등학교 주변을 수색하고 있다. ⓒ EPA 연합
경찰·소방서·자위대가 유기적으로 움직여

일본의 각종 해난 사고가 이렇게 인명 사고 없이 구조된 것만은 아니었다. 2008년 2월19일 전장 165m 7750톤의 해상자위대 호위함 ‘아다고’호가 가나가와 현 요코스카 항으로 향하던 중 지바 현 보우소한토 근처 해역에서 ‘세이토쿠마루’의 참치잡이 어선과 충돌해 배에 타고 있던 2명이 실종됐다. 사건 발생 후 3개월이 지나서야 결국 인정 사망으로 처리돼 유가족과 많은 국민의 분노를 샀다. 또 2010년 1월12일 나가사키 현 후쿠에지마 앞바다에서 어선 ‘제2야마다마루’호가 소식이 끊긴 채 배에 타고 있던 10명이 행방불명됐으나 5개월이 지난 6월16일이 되어서야 시체를 찾음으로써 사건 대처 능력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기도 했다.

일본은 연안 해역에서 하루 평균 4000척의 선박(선박자동식별장치 탑재 선박에 한함)이 운항하고 있다. 모터보트나 어선 등 소형 선박을 포함하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으며, 그만큼 선박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상존한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지진·쓰나미·태풍 같은 재난 자체를 안고 살고 있기 때문에 해난 사고를 비롯해 각종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해상 사고로 매년 약 1400~1600명의 사상자 및 행방불명자가 발생하고 선박 사고 수는 2400건에 이르고 있다. 일본 해상보안청은 체계적인 노력으로 매년 사고를 줄여가고 있다. 일본에는 미국의 미합중국 연방재난관리청(FEMA)과 같은 정보와 권한을 갖고 있는 조직은 없으나, 대형 사고가 발생할 경우 경찰·소방서·자위대가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피해 규모가 작은 경우 국토교통성의 방재센터, 총리부의 비상재해대책본부가 대응하거나 전국의 각 도도부현(都道府縣)이 개별적으로 본부를 설치해 대응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재난 구조 체계는 크게 소방·경찰·해상보안청·항공자위대·해상자위대·의료기관·민간기관으로 구성돼 있다. 소방 조직은 특별구조대·특별고도구조대·고도구조대·소방구조기동부대로 세분화돼 있고 경찰은 구조기동대·특수구조대, 해상보안청은 특수구난대 등 특별 조직을 두고 있다. 또 의료기관으로 재해파견의료팀이 있다.

조직 못지않게 사후 관리가 철저하다. 선박·항공기·열차 사고의 경우 사고조사위원회가 구성돼 현지에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있다.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관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원인을 찾고 있다. 정부나 공공기관의 체계적인 조직 및 대책 못지않게 재해를 줄여가고 있는 방법은 바로 안전에 대한 국민 의식이다. 각 가정에서는 비상식량이나 물을 비축해두고 있다. 언제든 재난이 자기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대비 교육과 의식을 강화하고 있다. 초등학교·중학교에서는 1년에 수차례 피난 훈련을 반드시 실시한다. 9월1일은 방재의 날로 학교·기업 등에서 소방 훈련과 피난 훈련을 실시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훈련과 안전의식을 통해 재해를 줄이고 있다.

일본 사회를 흔히 매뉴얼 사회라고도 한다. 원칙을 지키고 기본에 충실한 것이다. 혹자는 일본 사람들이 답답할 정도로 매뉴얼에 충실하다 보니 융통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런 정신이 각종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특히 안전 문제와 관련해서는 매뉴얼을 어기는 일을 절대 하지 않으려 한다. 일본이 제조업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부분도 바로 매뉴얼 문화와 관련성이 있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했던 때의 일이다. 한국에 나와 있던 일본의 한 기관 책임자는 본부로부터 비상식량 준비를 점검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탈출 요령을 직원들에게 교육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서울의 거리는 평온했다. 우리 시각으로 보면 일본인들이 지나치게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를 보면서 새삼 우리들이 위기에 대해 너무 무감각했음을 깨닫게 된다.

2009년 11월13일 일본 미에 현 구마노 시 인근 해역에서 아리아케호가 침몰 했으나 28명의 탑승자 모두 구조됐다(위 사진). 아래 사진은 세월호. ⓒ 연합뉴스
침몰 시 매뉴얼대로 승객들 갑판 위로 올려

2009년 아리아케호 침몰 사고 때 어떻게 단 한 사람의 희생자도 안 나왔을까. 세월호 사고와 비교해보면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초동 조치에서 아리아케호 선장은 객실 문이 열리지 않을 것에 대비해 승객들을 객실에서 피신시켰다. 또 소방용 호스를 로프 대신 활용해 승객들을 갑판 위로 끌어올렸다. 이후 갑판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승객들을 헬리콥터가 구조했으며, 최후까지 남아 있던 선장과 승무원들은 마지막으로 구명보트를 내려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것 모두 재난 대책 매뉴얼을 중시하고 실천한 훈련의 결과였다.

감독 기관인 국토교통성도 비록 한 사람의 희생자도 내지 않았지만 1년 이상 사고 원인을 분석해 강력한 고정 장치 설치, 관리 매뉴얼 강화 등을 모든 해운업계에 지시했다. 해당 선박에는 상선에 비해 무게중심이 높아 전복됐을 때 탈출이 어렵기 때문에 화물의 적정 적재량, 고정 장치 설치 등을 특별 지시했다. 또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활용한 차세대형 항공 지원 시스템 정비 및 운용, 해난 방지 인식 확산, 민간단체의 해난 방지 운동 전개, 기상·해상 정보 제공과 같은 안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최근 모터보트나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책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의 해난 사고 원인도 대부분 인재다. 부주의 23%, 운항 부적절 15%, 기상 및 해상 부주의 7% 등 운항 잘못으로 인한 사고가 전체의 67%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기관 정비 불량 등을 포함하면 79%가 인재다.

지금 대한민국은 지나친 융통성과 불가피한 필요성에 너무 익숙해 있다. 나는 아닐 것이라는 ‘설마’ 의식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안전사고를 줄이는 노력은 의외로 쉽고 간단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매뉴얼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비록 과거사 왜곡으로 전 세계의 질타를 받고 있는 일본이지만, 그들로부터 재난 관리 시스템과 사후 조치 등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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