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왜 현장에서 쫓겨나는가
  • 김창룡 |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 승인 2014.04.3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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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참사 때마다 반복되는 오보…재난 보도 땐 속보 경쟁 지양해야

2014년 4월은 너무도 잔인한 달이다. 한국 역사상 최악의 해난 사고로 대한민국 국민은 깊은 슬픔과 좌절에 빠졌다. 어느 한 곳 멀쩡한 부분이 없었다. 정부의 컨트롤타워는 우왕좌왕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만 쏟아냈다. 구조를 최일선에서 진두지휘해야 할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과 선원들의 ‘나 몰라라’ 탈출이 비극을 키웠다. 배 안에 아직 살아 있는 사람,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바로 눈앞에서 배와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보며 대한민국 국민은 함께 수장되는 듯한 비통한 심정과 절망감을 느꼈다.

엉터리 보도에 ‘솜방망이 처벌’

비극적 상황에서 국민을 더욱 고통과 좌절, 분노로 몰아간 것은 한국의 언론이다. 단순히 대책본부의 일방적 발표, 잘못된 수치를 보도한 게 아니었다. 언론사의 대형 오보는 사건 초기 ‘전원 구조’부터 시작돼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하게 지속됐다.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 수색 작업이 진행 중인데 일부 언론은 보험료 계산을 하며 1인당 얼마나 받게 되는지를 따졌다. 특히 MBC는 뉴스특보를 통해 더욱 상세하게 보도했다. 사망을 전제로 계산된 보험료 액수를,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 입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세월호 침몰 이틀째인 2014년 4월17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언론사 취재차량들이 도로를 메우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수사가 시작도 되기 전에 ‘데일리저널’이란 인터넷 언론은 북한 소행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성 보도를 내보냈다. 공영방송사 KBS는 구조대가 선실에 접근하기도 전에 벌써 ‘시신이 뒤엉킨 채 발견됐다’는 오보를 냈다. 국가 지정 재난 구조 방송이라는 KBS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조대는 아직 배에 접근하지도 못했지만 속보 경쟁에 빠진 YTN 등 언론사는 ‘선실에 진입했다’ ‘식당칸에 들어갔다’ ‘산소를 주입하고 있다’는 등 실제로 구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속보 경쟁에 몰린 언론사의 오보에 불과했다. 급기야 실종자 가족들이 “기자들은 모두 나가라”고 울부짖는 지경에 이르렀다.

재난 상황에서 속보보다 정확성이 중요하다는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유가족이나 실종자 가족을 자극할 수 있는 보도는 피하라는 준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언론사 스스로 만든 보도 준칙, 언론윤리강령은 휴지조각이 됐다. 1970년 321명의 목숨을 앗아간 여천 앞바다 남영호 침몰 사고, 1993년 292명이 숨진 부안군 위도 앞바다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1995년 502명의 생명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03년 191명의 무고한 시민이 사망한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등 대형 참사를 겪을 때마다 보여주었던 대한민국 언론의 한심한 취재 보도 시스템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마치 재난 보도의 오보 매뉴얼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문제는 과거보다 2014년 현재의 상황이 더 나빠졌다는 점이다. 우선 늘어난 미디어 수와 그에 따른 기자 수 증가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4개의 종합편성채널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터넷 신문 및 방송사 등 최소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기자가 현장을 누비며 취재 경쟁을 벌인다. 여기다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트위터·페이스북 등 촘촘하게 연결된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는 오보와 정보를 가리지 않고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시킨다. 무엇이든 쓸 수 있고 무엇이든 보도할 수 있는 ‘오보 자유의 시대’가 활짝 열린 셈이다. 피해자·유가족을 두 번 울리는 오보, 추측성 보도, 무책임한 보도, 불법 보도가 한국에서 유독 심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 재난 보도 준칙이나 언론윤리강령을 지키지 않아도 회사는 아무 책임도 묻지 않는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뉴스장사’가 되는 색다른 보도가 윤리강령을 지켜 보도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한국기자협회가 2014년 서둘러 ‘재난 보도 준칙’을 발표했지만 이것은 선언적 의미에 불과하다. 기자협회의 노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각 언론사에서 이를 지키지 않을 때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별 효용성이 없다는 얘기다.

외국 유력 언론은 기자 윤리강령에 철저

둘째, 행정 규제나 법이 미디어의 오보를 막는 최후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신문이나 방송의 일부 엉터리 보도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나 사법부가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솜방망이 처벌’이어서 언론사에서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국이나 유럽의 유력 언론사들은 어떻게 보도 준칙과 윤리강령을 지키고 있는가. 영국의 더타임스, 미국의 뉴욕타임스 등 이른바 유력 언론은 하나같이 언론윤리강령 준수를 ‘기자 고용의 전제 조건’으로 삼고 있다. 회사가 언론인들에게 윤리강령을 지키라는 분명한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이며, 문제가 될 경우 ‘해고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의 CNN은 2003년, 과거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금지된 사린가스를 사용했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그러나 이는 오보로 판명됐다. CNN은 오보의 책임 프러듀서인 에이프릴 올리버와 잭 스미스를 해고했다. 군사평론가 페리 스미스도 해고당했다. 이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던 피터 아넷도 처음엔 견책을 당했지만 스스로 그만뒀다. 한국에서 오보에 대한 책임을 회사가 이렇게 물었다는 뉴스를 지금껏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사실을 알리려 뛰는 기자들을 정치적 이유로 해고시키는 경우를 이명박 정부에서 자주 봤을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이다. 선진국에는 분명한 원칙이 있다. 법으로 언론 자유를 존중하지만, 그 자유를 방종하거나 고의로 명예를 훼손했을 때는 분명하고 무거운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처럼 사법부가 언론의 오보에 관대하지 않다는 뜻이다. 선진국 사법부는 미디어의 중대한 오보에 대해 이런 원칙을 적용한다. 정정 보도를 하더라도 원상회복은 안 된다. 그러니 거액으로 보상해줘야 한다. 형사 처벌 대신 거액의 민사 처벌로 언론사에 막중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다툼의 소지가 있는 보도에 대해서는 언론의 비판·견제 기능을 존중하고 인정하되, 누가 봐도 오보가 명백한 사안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런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다툼의 소지가 있는 비판·견제 기능을 다한 기자들에게 때로는 법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매서운 칼날을 들이대며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태도를 보인다. 반면 언론의 명백한 실수로 빚어진 오보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이 대부분이다. 법은 최후의 미디어 규제 방법이지만 윤리강령, 보도 준칙을 지키게 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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