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삼성·현대차·SK·LG 의존 너무 심하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05.1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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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대규모 기업집단 분석…4대 그룹 자산, GDP 절반 넘어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국내 재벌가도 지난 10년간 적지 않은 부침을 겪었다. 문어발식 M&A(인수·합병)를 통해 신흥 재벌로 부상했던 STX그룹과 웅진그룹은 사실상 해체됐거나, 그 수순을 밟고 있다.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려 아쉬움이 더했다. 한진그룹·동부그룹·금호아시아나그룹·현대그룹도 현재 채권단 주도하에 고강도 ‘부채 다이어트’를 진행 중이다.

반면 삼성·현대자동차·SK·LG 등 4대 그룹은 위기 상황에서도 매년 자산을 불려가고 있다. 이들 그룹이 2013년 보유한 자산총액은 716조원대에 이른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넘어섰다. 이들 그룹을 포함한 10대 그룹의 자산은 GDP의 75%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12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이 전경련 신축 회관 준공식에서 구본무 LG그룹 회장(오른쪽 두 번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오른쪽 첫 번째) 등과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규모 기업집단 공개 시스템(오프니)’에 따르면 2013년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된 그룹은 모두 51곳(공기업 제외)이다. 자산총액은 2004년 499조5070억원에서 10년 만에 1558조2490억원으로  1058조7420억원(212%)이나 불어났다. 계열사 수도 842개에서 1680개로 두 배가량 늘어났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GDP가 876조원에서 1428조3000억원으로 552조3000억원(63.1%)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2004년까지만 해도 조사 대상 그룹의 자산은 GDP의 57% 수준이었다. 2012년 재계의 자산이 GDP를 추월했고, 2013년에는 GDP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

10대 그룹 자산, GDP 75% 육박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졌다. 한국 경제에도 불똥이 튀었다.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중견기업과 재벌 계열사까지 줄줄이 부도나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2년간 평균 GDP 성장률은 5.1%였다. 환율 효과 때문이었다. 달러로 환산하면 우리나라의 GDP는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GDP는 2007년 1조1227억 달러에서 2008년 1조17억 달러로 10.8% 감소했다. 2009년에는 9023억 달러로 또다시 9.98%가 빠졌다.

하지만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의 자산은 같은 기간 738조9430억원에서 988조9420억원으로 33.8%나 증가했다. ‘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표방한 이명박 정권이 잇따라 규제를 풀었다. 재벌의 문어발 확장을 억제해온 것으로 평가받았던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 역시 이때 폐지됐다. 이를 계기로 주요 그룹의 자산과 계열사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김우찬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 효과와 규제 완화로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화됐다. 정부가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재벌 기업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가속화됐다. 지난 10년간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의 자산 성장률은 212%에 이른다. 이들 중 평균을 웃도는 성장률을 보인 곳은 15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36개 그룹은 모두 평균 이하였다. 기업 간 불균형이 그만큼 심해졌다는 얘기다. 2004년까지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에 포함되지 않은 16곳을 빼더라도 20개 기업이 평균을 밑돌았다. 그러다 보니 선두권 그룹의 순위는 후발 주자가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고착화되고 있다. 하위권 그룹은 계속해서 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대기업의 양극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실제로 상위 10대 그룹의 2013년 자산은 1070조50억원으로 전체의 68.7%를 차지했다. 나머지 41개 그룹이 31% 정도의 자산을 나눠서 보유하고 있다. 삼성·현대자동차·SK·LG 등 상위 4대 그룹으로 범위를 좁히면 양극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진다. 4대 그룹의 자산 비율은 2004년 34.1%에서 10년 만에 45.9%로 12%나 상승했다. 공정위 경쟁정책국 기업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수출 활로를 뚫은 상위 그룹은 2011년 이후 지속된 경기 부진에도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중하위 그룹은 사정이 다르다”며 “건설·해운·선박·철강 업종을 중심으로 타격이 컸다”고 설명했다.

부영·OCI·CJ·신세계, 300%대 자산 증가

예외도 있다. 중견 건설업체인 부영그룹은 최근 10년간 477%까지 자산을 불렸다. 조사 대상 그룹 중에서도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2004년까지 부영그룹의 자산은 2조4490억원에 불과했다. 재계 36위 수준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히려 부영그룹을 성장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건설 및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서 상위 100대 건설사 중 26곳이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틈새인 임대아파트 시장을 집중 공략해 그룹의 덩치를 키웠다. 2013년 부영그룹의 재계 순위는 22위로 무려 14계단이나 치고 올라섰다. 

OCI·CJ·신세계그룹·대우조선해양의 10년간 자산 상승률도 30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태양광 대장주’인 OCI는 2008년부터 녹색 성장 테마에 편승하면서 자산이 크게 늘어났다. 2011년에는 ‘자문사 4대 천황’으로 거론되며 주가가 60만원을 넘나들기도 했다. CJ그룹은 식품기업에서 미디어·유통·생명공학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재계 순위를 14위까지 끌어올렸다. 2004년 41개였던 계열사는 2013년 82개까지 늘어났다. 신세계그룹은 ‘유통에 특화된 경영 전략’이 시장에서 먹히면서 자산이 338.3%나 증가했다.

KT·한진·한솔·금호그룹, 평균 밑돌아 

KT·한진·한솔·금호아시아나그룹은 최근 10년간 자산 상승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4개 그룹의 10년간 자산 상승률은 평균(21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2004년까지만 해도 KT는 SK그룹에 이어 재계 순위 5위였다. 이후 롯데·포스코·GS·현대중공업·한진그룹 등에 잇따라 자리를 내주며 11위까지 추락했다. 한진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계열 분리나 계열사 매각 등의 이유로 자산이 크게 감소한 경우다. 두 그룹은 최근 유동성 위기가 부각되면서 채권단 주도 아래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특히 한솔그룹은 조사 대상 그룹 중에서 재계 순위가 가장 많이 떨어졌다. 지난 1991년 삼성에서 분리될 때만 해도 한솔그룹은 재계 11위였다. 이후 IT·금융·레저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유동성 위기가 불거졌다. 지난 2000년 9조원대에 이르던 자산은 2004년 3조원대로 급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은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재계 순위는 2004년 28위에서 2013년 50위로 22계단이나 내려앉았다. KCC그룹과 세아그룹은 2004년에 비해 계열사가 감소하면서 재계 순위도 각각 8계단과 10계단 떨어졌다.

재벌의 양극화를 막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의 생태계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언론에서 “전자·자동차 등 일부 효자 산업에 대한 한국 경제의 의존도가 심해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다양한 업종과 그룹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 재계 스스로도 더 이상 ‘대마불사’는 없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삼성·현대가 자산 증가, LG가는 감소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범(汎)삼성가와 현대가, LG가의 관계다. 이들 패밀리 그룹의 자산 역시 10년 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2004년 254조9670억원에서 2013년 809조710억원으로 3배 이상 자산이 늘어났다.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 전체와 비교한 자산은 2004년 51.1%에서 2013년 51.9%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GDP 대비 자산 비율은 2004년 29.1%에서 2013년 56.5%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세 곳의 패밀리 그룹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룹별로 보면 미묘한 차이가 나타난다. 삼성을 비롯해 CJ·신세계·한솔그룹이 포진한 범삼성가의 자산은 GDP에 대비해 2004년 21.1%에서 2013년 23%로 증가했다. 삼성그룹 한 곳이 전체 기업집단의 19.6%를 차지했다. CJ와 신세계그룹도 지난 10년간 4배 이상 덩치를 키우면서 범삼성가의 약진을 도왔다. 현대차와 현대·현대중공업·현대산업개발·현대백화점그룹 등이 있는 범현대가도 같은 기간 16.6%에서 17.5%로 자산을 늘렸다. 대규모 기업집단에서 제외된 현대해상화재나 현대기업금융, 성우그룹 등을 합하면 자산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LG·GS·LS그룹 등이 속한 범LG가의 자산은 크게 줄어들었다. 2003년 13.4%에서 2011년 11.4%로 2% 이상 자산이 감소했다. 2004년 구씨 일가인 LG그룹과 허씨 일가인 GS그룹이 분가할 때만 해도 재계는 긍정적인 시각을 보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당시만 해도 현금 회전력이 뛰어난 건설·정유·홈쇼핑 사업을 허씨 가문에 넘기고, 구씨 가문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전자나 디스플레이 사업을 맡았다”며 “LG와 GS그룹의 분가는 재계의 모범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하지만 LG그룹은 GS그룹과 계열 분리 후 이렇다 할 수익 모델을 찾지 못했다. 주력 회사인 LG전자의 경우 스마트폰 도입 시기를 놓치면서 장기간 불황에 빠졌다. 재계 관계자는 “LG전자·LG디스플레이·LG이노텍 등 전자 계열사 3총사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룹 전체의 이익이 줄었다”며 “올 상반기에 발표되는 그룹 실적이 명가의 부활 여부를 엿볼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30대 그룹 소송 규모만 9조원대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연방법원 배심원들은 지난 4월5일(현지시각) 삼성전자와 애플의 2차 특허 소송에서 쌍방 승소 결정을 내렸다. 삼성전자는 애플에 1억1960만 달러(약 1200억원)를, 애플은 삼성전자에 15만8000달러(약 1억6000만원)를 배상하게 했다. 언뜻 보면 삼성전자의 배상액이 많기 때문에 삼성이 패소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재계에선 2차 소송의 승자는 사실상 삼성전자라고 보고 있다. 당초 애플이 요구했던 21억9000만 달러(약 2조2500억원)의 20분의 1만 삼성전자가 배상하면 되기 때문이다. 애플과의 1차 소송에서 9억2900만 달러(약 9900억원)의 배상 판결을 받으며 완패했던 삼성전자는 한 고비를 넘기게 됐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특허 소송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현재 대규모 소송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그룹은 삼성뿐만이 아니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 189개 상장 계열사들의 피소 건수는 5393건, 피소 금액은 9조5803억원에 달한다. 건당 소송가액이 18억원이다. 총  피소 금액은 이들 그룹 전체 계열사가 지난해 벌어들인 순이익 50조5000억원의 20%에 육박하고 있다.

포스코는 2012년 신일본제철로부터 1조원대 기술 유출 소송을 당했다. 코오롱그룹 계열인 코오롱인더스트리도 현재 미국 화학업체인 듀폰과 1조원대 소송을 진행 중이다. 1심 법원은 코오롱에 9억2000만 달러(약 1조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최근 열린 항소심에서 코오롱이 승소하면서 원심 파기 후 재심 판결을 받았다. 피소액 또한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으로 코오롱이 패소하면 배상 금액을 떠나, 차세대 성장동력을 잃을 수도 있어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1000억원 이상 대규모 송사에 시달리는 곳만 30대 그룹의 절반인 15곳에 달한다”며 “집단소송 등 기업이 피소 건수를 명확히 밝히지 않기 때문에 실제 피소 건수는 이보다 많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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