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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피아니스트는 작곡자의 메신저일 뿐”

두 번째 앨범 <피아노 음악> 낸 임현정

김진령 기자 ㅣ jy@sisapress.com | 승인 2014.05.14(Wed) 16: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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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유튜브에 ‘HJ LIM’이라는 여성 피아니스트가 <왕벌의 비행>을 연주하는 1분28초짜리 짧은 동영상이 올라왔다. 피아니스트의 손은 엄청난 속도로 건반을 두들기고 있었다. 벌의 날갯짓처럼 손가락이 보이지 않았다. 피아니스트의 이름은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임현정(27). 이 동영상은 큰 인기를 끌었고 세계적인 음반사인 EMI에서 임현정에게 음반 녹음 제의를 했다. 임현정은 2012년 5월 8장으로 구성된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전곡집을 데뷔 앨범으로 냈다.

데뷔 앨범이 전곡집이라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이 앨범은 빌보드 클래식 차트 1위, 아이튠즈 클래식 차트 1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 모든 게 한국과는 전혀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임현정은 중학교 1학년 때 프랑스 유학을 고집해 혼자 유학을 떠난 후 프랑스 고등음악원을 졸업하고 유럽에서 전문 연주가로 투어 생활을 시작했다. 그저 피아노만 열심히 쳤을 뿐인데 세상은 그를 알아보고 음반을 내고 전문 연주가가 되었으며, 지난 4월에는 라벨과 스크랴빈의 곡을 담은 두 번째 앨범 <피아노 음악>이 전 세계에 발매됐다. 활동 본거지인 스위스에 머무르고 있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내게 일어난 일은 모두 다 기적이었다. 지금 시사저널 기자가 전화를 해준 것도 기적이다. 예상치 않았던 일이 일어난다. 베토벤에 미쳐 공부를 안 하면 잠이 안 오고 그래서 연주하고 그렇게 연주한 것을 EMI에서 관심을 가져줘서 출반하고, 좋아서 하다 보니 나에게 기회가 온다. 이런 게 기적 같고 신기하다”고 말했다.

   
ⓒ 워너 뮤직
‘유튜브 관객’이 열광한 클래식 스타

전문 연주자로 세상의 선택을 받는 것도 어렵지만, 선택을 받았다고 해도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임현정은 지난해 10~11월 2주 만에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일정을 소화했다. 미국 연주를 마친 후 스위스로 돌아와 이틀을 쉰 다음 독일로 날아가 함부르크 심포니오케스트라와 연습하고 이튿날 아르헨티나로 연주 투어를 떠난 것. 투어를 마치고 스위스로 돌아온 임현정은 이틀 뒤 한국으로 들어와서 그 다음 날 협연 무대에 섰다. 임현정은 “그때 스케줄 표가 가장 힘들었다. 협주곡도 다 다르고, 오케스트라도 다 다르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그 한 달 동안에 협주곡 5개를 연주했다는 게 큰 경험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지난 2월엔 바르셀로나 심포니오케스트라가 주최한 라흐마니노프 축제에서 사흘 동안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4곡을 연주했다. 대개는 3~4명의 피아니스트에게 협연을 부탁하는데 주최 측이 모두 임현정에게 맡긴 것. “라흐마니노프의 연주곡은 평생 연주할 동반자 같은 작품이다. 사흘 만에 네 곡을 모두 연주한 것도 재미있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데뷔 앨범으로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를 고른 이유에 대해 임현정은 “그때 나에겐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연주였고 공부였다. 베토벤의 인생과 음악을 공부하는 것은 하나의 숙제였다”고 말했다. 임현정은 베토벤 전집 앨범에 실린 곡 해설도 직접 쓸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그의 아버지는 앨범에 들어 있던 곡 해설집을 읽어보고는 “글이 참 좋다. 그런데 왜 네 이름이 여기에 있니?”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임현정은 여전히 유학을 떠나보내던 중1 딸이었는데 베토벤 음악을 연주하면서 생각을 글로 표현해내기까지 한 딸이 신기했던 것이다. 그는 이 글을 프랑스어로 썼다. 프랑스어가 더 편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한 인간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어릴 때, 청소년기라고 생각한다. 난 그때 한국에 있었고 거기서 내가 형성됐고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표현했다.

“한국인의 음악적 감수성은 세계의 선물”

그의 오랜 유학 생활을 지켜준 것은 가족의 힘이었다. 그는 “엄마는 나를 믿어줬다. 항상 ‘어디서 무엇을 하든 넌 잘될 거야, 우리 딸 믿어’라고 말해주신다. 조바심이 있을 법도 한데 바보 같은 믿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지난해 가을 국내 투어 연주차 한 달 넘게 머무른 기간은 그가 유학을 떠난 이래 최장 기록이었다. 그때 임현정은 가족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했고 아버지를 ‘재발견’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하모니카와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을 그때야 알게 된 것. “아버지가 일제 치하를 경험하신 분인데 노래를 부르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어도 노래 안에 한이 단단히 박혀 있는 게 느껴졌다”고 말한 임현정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예로 들었다. “라흐마니노프의 러시아 음악에는 한이 들어 있다. 그 한이라는 게 깊은 노스탤지어다. 그 한이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이 러시아 음악에 대해 이해를 잘한다. 아버지도 한이 많아서인지 노래를 하든 하모니카를 불든 전달이 잘된다.” 그는 “한국인처럼 음악에 깊은 영혼이 담긴 민족을 보지 못했다. 한국인의 음악적 감수성은 세계의 선물”이라고 덧붙였다.

마에스트로 라비노비치는 임현정이 지난해 11월 한국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한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한국까지 날아와 듣고 갔다. 지난 2월 라흐마니노프 축제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전곡을 연주한 그는 오는 7월에도 프랑스 비알리츠에서 페이바스크 심포니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2번을 연주한다.

최근 투어에서 라흐마니노프를 제일 많이 연주하면서도 음반은 스크랴빈과 라벨을 녹음한 이유에 대해 임현정은 이렇게 말했다. “나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1, 2, 3번 연주 실황은 이미 유튜브에 올라가 있다. 나는 모든 사람이 음악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음반 판매는 내 몫이 아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천국 같은 음악은 인류에게 줄 수 있는 약이다. 이런 음악을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나의 목적이다. 음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내 몫이다. 스타는 작곡가이고 음악은 메시지가 중심이다. 피아니스트는 작곡자의 메신저일 뿐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새 앨범도 작곡가인 스크랴빈과 라벨에 맞춰 설명했다. “새 앨범은 영적인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스크랴빈은 인간의 세계를 떠나 신비주의적인 세계를 탐구하고 라벨은 요정의 나라, 전설의 세계를 많이 탐구한다. 라벨은 환상의 나라를 그려내고 스크랴빈에게는 음악이 하나의 지도가 된다. 스크랴빈은 음악의 힘으로 사람 안에 있는 창조적인 힘을 이끌어낸다. 영감을 많이 준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음악이 도구가 돼서 영적인 세계로 승화한다.” 

임현정은 올가을 한국을 다시 찾는다. 이번엔 마에스트로 로저 노링턴 경의 선택을 받아 취리히 체임버오케스트라와 아시아 투어에 동행하는 협연자 자격으로 온다. 한국·일본·중국·싱가포르에서 무대에 선다. 로저 노링턴은 영국 출신의 명지휘자로 음악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왕실로부터 작위(sir)를 받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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