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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만 넘치는 나라

김재태 | 편집위원 ㅣ 승인 2014.05.21(Wed) 11: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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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위해 관공서에 전화를 걸다 보면 종종 난감한 상황에 부닥치곤 합니다. 분명히 담당자를 바꿔달라 해서 연결이 됐는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며 전화를 딴 곳으로 돌리거나 다시 걸라며 끊는 일이 빈번합니다. 이처럼 책임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던 공무원이 신바람을 내며 현장을 이끄는 경우는 따로 있습니다. 자신들이 외부 인력을 지휘하거나 아랫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관리·감독할 때입니다. 이른바 ‘완장 효과’입니다.

세월호 침몰 참사에서도 이런 모습이 똑같이 나타났습니다. 사고 보고도 늦었고, 내용도 정확하지 못했습니다. 현장을 이끌어야 할 지휘부는 윗선의 지시만 기다리다 때를 놓쳤습니다. 2009년 1월15일 뉴욕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여객기에서 탑승자 155명 전원이 구조되었던 일과 너무나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당시 사고 현장을 지휘한 사람은 특공대장도, 시장도, 대통령도 아닌 뉴욕 항만청장이었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도 초기 현장 지휘의 전권을 현지 해경에게 신속히 맡겨야 했습니다. 급박한 상황에서는 일단 현장 책임자가 진두지휘하는 ‘선 조치, 후 보고’가 이루어져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우리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사고 대책본부가 열 개 넘게 세워지고, 시대에 뒤떨어진 팩스 보고가 오가면서 현장 지휘는 어지럽게 춤을 추었습니다. 게다가 현장에 간 대통령은 난데없이 ‘특공대 투입’을 지시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말이 현장에 어떤 파장을 미쳤을지는 삼척동자도 다 알 것입니다. 현장에서 절실히 필요한 것은 ‘지휘’가 아니라 ‘지원’인데도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사고 수습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종자를 구조하는 데 꼭 필요한 인력은 잠수사들인데, 그들을 투입하는 과정에서도 옥신각신하다 시간을 놓쳤습니다. 중앙정부의 높으신 분들이 너도나도 현장에 몰려들어 혼잡만 더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서 라면을 먹는 것으로도 모자라 “장관님 오셨습니다”라고 알리기까지 했습니다. 높으신 분이 오셨으니 예의를 갖춰달라는 뜻이었겠지요. 높은 분들의 부적절한 언행은 꼬리를 문 반면, 그들 중 누구도 몸을 낮춘 채로 유가족 곁에서 고난을 같이했다는 얘기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최근에는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통해 119상황실에서 중앙부처 인사들의 현장 방문에 맞춰 생존자들을 한 곳에 모아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까지 했습니다. 바닷속에서 아까운 생명들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투하고 있을 때 바닷가에서는 높은 분들을 위한 ‘의전’이 요란을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세월호 참사를 두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무슨 큰 사건만 나면 우선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엄청난 참사 앞에서 함께 눈물 흘린 국민들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 정부 고위 관료 입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정부 고위층이 국민들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한숨만 쉬어지는 발언입니다. 아무리 좋은 매뉴얼을 만들어내도 이런 자세로는 앞으로 뭐 하나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께 해줄 수 있는 말은 딱 하나입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면피를 위한 꼼수밖에 떠오르는 게 없다면, 진심으로 팔을 걷고 도울 마음이 없다면, 봉사하기보다는 생색내거나 지휘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면, 이제부터는 제발 가만히 있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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