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안 보여도 82타 치는 불굴의 사나이
  • 안성찬│골프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5.2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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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골프 국가대표 조인찬

“앞이 캄캄했다. 죽음보다도 무서웠다. 어떻게 죽을까를 고민했다.” 시각장애인 국가대표 골퍼 조인찬(61·개인 사업)은 시력을 잃은 후 3개월간 방구석에 처박혔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 나오는 주인공 그레고르처럼. “벌레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앞이 안 보인다는 것을 상상이나 해보았을까. 그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1988년 그의 나이 35세 때였다. 고압가스 사업을 하던 그는 가스분석기 구입차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그때 차를 타고 가던 중 반대편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굴절돼 눈으로 들어왔다. 피곤해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는데 무지개가 역시 꺾여서 보였다. 서둘러 귀국해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망막 신경이 파괴됐다. 중심부 혈관이 터졌다. 중심성 망막염과 비슷한 증세”라고 진단했다.

ⓒ 안성찬 제공
2000년 1급 시각장애인 판정 받아

다행히 왼쪽 눈은 정상이었다. 왼쪽 눈까지 이상이 온 것은 2000년 2월이었다. 다시 사물이 꺾여 보였다. 칠흑 같은 암흑이 찾아온 것은 그해 11월. 앞은 안 보이고 옆으로만 흐릿한 빛이 들어왔다. 1급 시각장애인 판정이 나왔다. 시력을 잃자 삶도 어두워졌다. 24년간 운영해온 고압가스 제조업체도 정리했다.

거래처 사람이 “잘나가더니 이제 사람을 보고도 인사도 안 한다”며 뒤에서 쑥덕거렸다. 외모는 멀쩡했으니까. 우울증이 왔다. 죽음을 생각했다. 가스 제조업을 했으므로 산소통이 방 안에 있었다. 산소를 필요 이상 마시면 수면 상태에 빠져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그 방법을 시도해봤다. 하지만 목숨은 질겼다.

“나보다도 가족이 힘들어했다. 딸과 사위가 의사여서 이곳저곳 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역경이든 그 역경에 걸맞은 번영의 씨앗이 있다’는 책 구절이 떠올랐다. 종교 생활이 도움이 됐다. 아내는 ‘눈을 기증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아내의 눈 기증은 불가했다.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종교에 의지해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고 결심했다.”

2003년 그는 장애인 복지관을 찾았다. 점자를 배웠다. 한 달이 지나서야 겨우 손을 더듬거려 이름 석 자를 찾을 수 있었다. 공인중개사시험을 2개월 남기고 공부를 시작했다. 합격이었다. 시각장애인 중에서 최초로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때부터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복지관에서 그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공인중개사 강의를 맡았다. 그에게는 이것이 낙(樂)이었다. 자신감도 생겼다. 앞은 캄캄하지만 옆에서 들어오는 빛줄기로 인해 흐릿하게나마 물체를 감지할 수 있는 것만도 고마웠다. 시각장애인과 친해지면서 길 안내를 해주며 봉사하는 즐거움을 알았다. 눈이 보일 때는 몰랐던 또 다른 기쁨이었다. 무엇보다 가정이 평안해졌다. 집에서 다시 웃음소리가 났다.

불편함이 줄어들자 골프가 생각났다. 마침 2007년 KBS에서 시각장애인 골프대회를 방송했다. 골프는 도와주는 사람(서포터)만 있으면 할 수가 있다. 사실 그는 볼을 잘 쳤다. 눈이 좋았던 시절 인천국제C.C.에서 친 2오버파 74타가 베스트 스코어다. 핸디캡 9를 놓고 클럽챔피언대회까지 출전한 경험이 있다. 이것이 도움이 됐을까. 국내에서는 시각장애인 골프 국가대표다. 최고수인 셈이다.

2008년 일본 블라인드 대회 첫 출전

한국골프장경영협회(KGBA)가 2008년 전 세계 14번째로 국제시각장애인골프협회(IBGA) 회원사로 가입하면서 그는 국제 대회로 눈을 돌렸다. 협회 상임이사를 맡으면서 3년간 1000만원씩 기금을 출연했다.

그는 2008년 일본 블라인드 골프대회에 첫 출전했다. 이어 호주 블라인드 골프 챔피언십에서 우승, 2009년 준우승, 2011년 통합 우승을 했다. 2012년 캐나다 블라인드 오픈에서 우승하며 국제 대회 3승을 올렸다. 월드 블라인드 챔피언십에서는 우승이 없다. 6위가 최고 성적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미국 조지아 주 콜럼버스에서 열린 시각장애인 ‘라이더컵’ 골프 대회인 블라인드 월드매치플레이에 아시아 대표 선수로 출전했다. B1(전맹·全盲)과 약시인 B3의 중간 등급인 B2 경기에 세계연합팀으로 출전해 미국팀을 꺾고 우승했다. 그의 공식 대회 최고 기록은 82타다. 물론 연습 경기 때는 70타대 중반도 종종 친다. 그에겐 퍼팅이 강점이다. 웬만해서는 2퍼팅 이상을 잘 하지 않는다. 퍼팅 수는 18홀 36개를 오간다. 드라이브 거리는 평균 200야드 정도다. 그린 적중률은 30% 안팎이다.

블라인드 골프는 누군가 도와주는 사람(서포터)이 있어야 한다. 캐디는 같은 연동교회에 다니는 김신기씨(64)가 4년 전부터 맡고 있고, 볼빅에서 볼을, 벤우코리아(블랙캣)에서 골프웨어를 지원하고 있다.

골프장은 베어크리크C.C., 서울·한양C.C., 삼성그룹의 글렌로스G.C., 가평베네스트G.C.에서 365일 언제든지 문을 열어주고 있다. 연습은 서초구 방배동 화인실내연습장에서 한다. 집에서 전철과 버스를 타고 다닌다. 이곳에는 시각장애인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정포영 프로가 있다.

“불행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인간은 죽는다. 앞당길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는 주말이면 경복궁에서 고궁 해설을 한다. 시각장애인 최초로 문화관광해설사 자격을 취득해 앞을 못 보는 이를 위해 우리의 손 감각과 언어로 우리 문화와 역사를 알려준다.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공을 칠까 


시각장애인 골프는 1925년부터 시작됐다. 세계시각장애인스포츠협회(IBSA) 산하에 국제시각장애인골프협회(IBGA)가 있다. 골프 발상지인 영국에 본부를 두고 있다. 미국·일본·영국·호주·한국 등 14개국이 가입돼 있다. 한국의 시각장애인 골퍼는 50명 남짓. 남자가 42명 안팎이고 여자가 8명이다.   

시각장애인 골퍼에게는 서포터가 반드시 필요하다. 서포터는 안내자 역할은 물론 캐디·조언·레슨까지 할 정도가 되면 금상첨화다. 시각장애인의 손발 역할을 한다. 마음까지 읽어야 한다.

드라이버의 경우 시각장애인이 먼저 티잉 그라운드에서 어드레스를 한 후 3번 정도 연습 스윙을 한다. 그러면 서포터가 헤드가 지나가는 자리에 티를 꽂고 볼을 올려놓으면 그때 스윙을 한다. 아이언이나 어프로치샷은 남은 거리와 오르막·내리막 계산을 해주고 역시 스윙을 해본 자리에 볼을 놓고 클럽을 볼 옆에 대준다. 퍼팅의 경우 홀의 위치와 거리, 경사도, 슬라이스, 훅 라인 등을 알려주고 볼과 홀에 똑바로 맞춰 놓는다. 스트로크만 하면 된다. 대회 규칙은 비장애인 프로골퍼 선수와 같은 국제 룰에 따른다. 벙커에서도 쳐야 한다. 다만 다른 것은 볼을 서포터가 한번 집은 후 스윙하는 자리에 놓는다는 것이다. 또 벙커나 해저드에서 클럽헤드가 지면에 닿아도 된다는 것도 예외 규정이다. 벌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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