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궁극, 파국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
  • 이은선│매거진M 기자 ()
  • 승인 2014.05.2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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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서생> <방자전> 만든 김대우 감독의 <인간중독>

“사랑의 궁극이란 그 사람이 없으면 견딜 수 없고, 숨을 쉴 수 없는 상태가 아닐까. 한 인간에게 온전히 중독돼버리는 것 말이다. 그 생각이 영화의 시발점이었다.” 김대우 감독은 파격 멜로 <인간중독>을 만들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영화는 베트남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69년, 엄격한 위계질서로 지배되는 군 관사에서 벌어진 한 남녀의 은밀한 스캔들을 다룬다. 모두의 신임을 받는 전쟁 영웅 김진평(송승헌)은 군 관사로 이사 온 부하의 아내 종가흔(임지연)에게 홀리듯 빠져든다. 진평과 가흔의 곁에는 각자의 배우자가 있고, 군 관사에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입방아에 올리는 사람 천지다. 하지만 그 사실은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한 순간부터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끝이 파국인 것을 알면서도 결코 멈출 수 없는 것, <인간중독>이 말하는 사랑이다. 

김대우 감독의 손끝에서 비극적이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탄생한 것은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정사>(1998년)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년)의 각본을 썼던 주인공이다. <음란서생>(2006년), <방자전>(2010년)에서는 각본뿐 아니라 연출에도 직접 나서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19금 사극 멜로’를 연달아 선보였다. <음란서생>이나 <방자전>은 권력 다툼에 기반을 두는 선 굵은 남성 드라마가 주를 이뤘던 기존 한국 사극 영화의 흐름을 발칙하게 뒤집은 작품이었다. 사극 멜로가 하나의 장르로 이야기되기 시작한 데는 김대우 감독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NEW 제공
사극의 새로운 흐름 만든 감독

그런 그가 이번에는 1969년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릴 때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부모님과 함께 군 관사에 살았던 감독의 개인적 경험이 모티브가 됐다. 그는 “군 관사는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곳이라 공간 자체만으로도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인간중독>은 한국 영화 최초로 다뤄지는 공간인 군 관사, 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술과 음악과 건축까지 다양한 신식 문화가 꽃피던 1969년이라는 시대적 배경, 남녀의 금지된 사랑이 맞물려 굴러가는 한 편의 고혹적인 멜로로 완성됐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원초적인 감정에 대한 뜨거운 드라마이기도 하다. 

김대우 감독은 연출작마다 뜻밖의 캐스팅으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반듯한 이미지가 강한 남자 배우를 기용해 파격적 멜로의 주인공으로 탈바꿈시켰던 것이다. <음란서생>의 한석규, <방자전>의 김주혁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되는 공식이다. 멜로 영화의 베드신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김대우 감독의 멜로에서는 특히 고혹적이고도 노출 수위가 강한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하곤 했다. 한석규와 김주혁 역시 김대우 감독의 영화에서 연기 인생을 통틀어 가장 파격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노출과 베드신을 거쳤다. 그리고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인간중독>에서 새롭게 김대우 감독의 부름을 받은 배우는 송승헌이다. 김대우 감독은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 “(송승헌이) 연기에 무척 목말라 있는 상태로 보였다”고 말했다. “첫 만남에서 얘기를 나눠보니 내면에 단단한 남성성이 존재하는 배우였다. 군복을 입혀놓으니 근사하기도 해서 더 바랄 게 없었다.”

‘반듯한’ 송승헌의 터닝포인트 될 듯

<무적자>(2010년)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송승헌은 최근 몇 년간 그가 보여줬던 것 중 가장 좋은 연기를 선보인다. 사실 그간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한 <그 놈은 멋있었다>(2004년) 정도를 제외하고는 연기와 흥행 면에서 이렇다 하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그다. <인간중독>에서는 사뭇 다르다. 맹목적인 사랑에 빠진 남자의 절망과 환희를 절절하게 표현해낸다. 마침 이 영화에서는 할리우드 고전 멜로 영화에도 근사하게 어울릴 법한 송승헌 특유의 고전적인 외모마저 대령이라는 극 중 역할에 맞춤옷처럼 맞아떨어지는 인상을 준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이안 감독의 <색, 계>(2007년)와 비교되기도 했다. 그만큼 파격적인 베드신이 여럿이라는 얘기다. 송승헌은 “남녀가 사랑하는 데 가장 아름다운 때, 사랑의 궁극적인 감정을 그대로 담은 베드신을 찍을 것”이라는 감독의 말을 듣고 부담을 덜었다고 말한다.

송승헌은 “늘 나를 배우라고 소개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갈증이 있었다”고 했다. “반듯한 이미지를 깨고 싶었다. 적당히만 있어도 진급이 보장되는 남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무모한 사랑에 빠진다. 극 중에서 이렇게까지 처절한 사랑을 해본 것은 처음이다. 관객이 송승헌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고 말해준다면 좋겠다.” <인간중독>은 그 바람이 충분히 이뤄질 만한 작품이다. 더불어 김대우 감독의 차기작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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