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한반도 재건축은 내 인생 최대 프로젝트”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5.2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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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그리는 건축가> 낸 김석철 교수

세계적인 건축가·도시설계가로 명성을 떨친 김석철 교수(71·명지대 석좌교수·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장)가 50여 년간 선보인 건축물과 도시 계획들을 정리해 회고록 형식의 대담집 <도시를 그리는 건축가>를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의 건축 수업, 중년의 해외 도시 설계 경험, 암 투병에도 여전히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현재의 모습까지를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열정적으로 회고한다.

김 교수는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국건위) 3기 위원장도 맡고 있다. 그런 사람이 12년 전 위암 수술을 받고 투병해오다가 지난해 여름 또 다른 암이 발견돼 넉 달밖에 못 산다는 선고까지 받았다니 이런저런 직함 모두 이제는 명예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레 뵙기를 청했다. 만남 장소를 정부청사가 아닌 자신이 설립한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아키반)으로 정하니 거동이 불편할 거란 지레짐작까지 들었다. 하지만 만나자마자 자신의 과거가 아닌 지금 벌이는 사업에 대해 열정적으로 브리핑하듯 설명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시사저널 임준선
한국 사회 읽는 새로운 프레임 ‘도시와 건축’

“지식인이 뭐냐? 부자는 돈을 많이 가진 자를 말하듯 지식인은 지식을 많이 가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 지식인이 뭘 더 많이 가지려 드나?”

김 교수는 대뜸 이런 화두를 던졌다. 인터뷰를 청한 것인데, 좋은 제자를 만나 가르치는 일에 행복을 느꼈다는 그답게 강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가 공자 말씀까지 예로 들며 이런 화두를 던지니 질문을 준비해간 사람의 말문이 막혀 쩔쩔맬 수밖에. 하지만 그가 회고록을 만들 때처럼 풀어놓는 여러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는 모습에 질문을 따로 준비해간 것이 부끄럽기만 할 따름이었다.

지난해 12월27일 박근혜정부의 건축 정책을 수립하고 주도할 제3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신임 위원장에 김석철 교수가 선임됐다. 국건위는 국토환경 디자인 개선 및 건축문화 진흥을 위해 2008년 12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 중병(?)을 앓는 이를 내정한 것이다. 당연히 김 교수는 정부의 제의에 대해 고민했다.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도 일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제의를 받아놓고도 가족에게 남길 유산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날 밤 꾸란(이슬람 경전)을 보았다. ‘네가 죽은 뒤 가족이 너를 잊어도 네가 선행을 베푼 사람은 기억할 것이다. 네가 인간 공동체를 위한 업(業)을 이룬다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내겐 아직 못다 이룬 업이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김 교수에게는 국건위가 마지막 업이라는 말이다. 국건위가 아니라도 그는 두 번째 암 수술을 마치고 회복되자마자 아무도 발주하지 않은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띄웠다. 그가 설계해낸 한반도 관련 인프라는, 도시설계가로서 한국 사회의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자신의 오랜 꿈을 실현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미 김 교수가 제안한 동서 관통 운하, 백두대간 에너지 도시, 새만금 아쿠아폴리스 등 ‘한반도 희망 프로젝트’는 한국 사회가 지난 10여 년간 목격해온 여러 국가적 토목 사업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청사진이기도 했다. 또한 ‘두만강 하구 다국적 도시’라는 남북한·중국·러시아 등 4개국 이상이 관여하는 세계적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이는 남북한 통일이라는 현실의 과제 앞에 늘 놓여 있는 ‘실질적인 경제 통합을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신선한 화두를 던져준다.

함께 출장길에 올랐다가 공항 활주로에서 진도 홍주를 마셔 화제가 된 고은 시인은 김 교수를 일컬어 “김석철은 하나의 나라, 하나의 대지를 가슴에 품어야 하는 들짐승이다. (그는) 과연 한반도의 문화특산물이다. 좀 더 두고 본다면 아마 그는 저 창공 속에도 인류 문명의 구름 도성을 쌓으리라”고 치켜세웠다.

“건축이야말로 후대가 알아볼 거대한 상형문자”

그에게 건축이나 도시란 무엇인지 물었다. “건축이나 도시야말로 역사에 크게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후대가 알아볼 거대한 상형문자가 아닌가. 우리 시대를 기록할 수 있는 일로 문학만큼 위대한 일 아니겠나.” 김 교수는 <도시를 그리는 건축가>를 통해 자신이 직접 그린 설계도면뿐 아니라 그에 걸맞은 세계의 지리·역사·사회·문화 등에 관한 생생한 해설을 들려준다. 그의 열강(?)을 경청하다 보면 한국 사회를 건축과 도시라는 프레임으로 들여다보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잘 꾸민 카페 같은 아키반에서 사진 촬영에 임하는 김 교수에게 피부가 곱다는 느낌을 전하자 독한 약을 밥 먹듯 먹으니 그런가 보다며 웃는 여유까지 보였다. 사진기자에게 자신의 누이가 대한민국 여성 사진기자 1호였노라고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동생인 김석동씨는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위원장을 지냈다.

김 교수는 자신의 남은 ‘업’에 대해 말을 이었다. 그가 평생 해온 업의 결과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궁금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 예술의전당, 제주 영화박물관, 한샘 시화공장, 씨네시티와 비원연구소, 베니스 비엔날레 100주년 기념 마지막 국가관으로 결정된 한국관, 김 교수에게 명예 미술학 박사 학위를 안겨준 성신여대 운정 그린캠퍼스가 있다. 주요 도시 설계 작품으로는 한강 마스터플랜과 여의도 개발 계획, 쿠웨이트 자하라 신도시, 베이징 대학 도시 구역의 창조적 도시 중심인 iCBD, 충칭 특별시의 최종 심의를 통과한 난후 문화관광 도시, 베니스 비엔날레 최우수작품상으로 지명된 취푸 신도시, 한국과 아제르바이잔 양국 대통령이 함께 추진한 바쿠 신도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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