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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동성애자? 뭐가 어때서”

디자이너 김재웅 커밍아웃…홍석천 때와 달리 분위기 관대

하재근│대중문화평론가 ㅣ 승인 2014.05.28(Wed) 17: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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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채널 올리브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셰어하우스>에 출연 중인 디자이너 김재웅이 프로그램 속에서 커밍아웃했다. 커밍아웃이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밝히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셰어하우스>는 출연자 10명이 한 집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내용이다. 그 속에서 어느 날 김재웅이 데이트를 한다며 외출하고 돌아왔는데 룰라의 이상민이 누구랑 데이트했느냐는 식으로 물으며 “남자가 좋니, 여자가 좋니?”라고 했다. 이에 당황해하던 김재웅은 이내 “여자를 안 좋아하고 남자를 좋아한다. 근데 그게 참 큰 죄가 됐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듣던 말이 ‘쟤 뭐야?’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난 항상 ‘괴물이 아니야’라고 답해야 했다”며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드러낸 것이다.

얼마 전 <짝>의 출연자가 사망했을 때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출연자를 자극성을 높이기 위한 도구처럼 활용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커밍아웃에서도 그런 논란이 터졌다. <셰어하우스> 제작진이 이슈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김재웅의 커밍아웃을 유도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다. 프로그램 속에서 출연자가 김재웅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품으며 그가 고백하도록 몰아간 것은 사실상의 ‘아우팅’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커밍아웃이 스스로 고백하는 것임에 반해 아우팅은 당사자의 뜻과 상관없이 제3자에 의해 동성애자임이 알려지는 것을 뜻한다. 영어 ‘taking someone out of the closet(누군가를 벽장 밖으로 끄집어내다)’이라는 표현에서 유래했다. 아우팅은 인간에 대한 엄중한 폭력이고 인권유린일 수 있다.

   
5월7일 방송된 케이블채널 올리브TV <셰어하우스>에서 김재웅은 “솔직하게 남자를 좋아한다”라고 고백했다. ⓒ 올리브TV
이런 방송 윤리적 차원에서의 논란과는 별개로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를 보는 시선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음을 말해준다. 과거엔 프로그램 제작진이 출연자의 동성애를 방송 테마로 삼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동료 출연자가 김재웅의 성적 정체성을 밝혀내자며 일종의 ‘작당’을 하는데 이것도 과거엔 꿈도 꿀 수 없었던 풍경이다.

이젠 성적 취향으로 매장되지 않아

아우팅이 인간에 대한 폭력인 이유는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사회인식 때문이다. 동성애자임이 폭로되면 아무런 형법상의 죄를 짓지 않아도 마치 죄인처럼 매장당하는 탓에 그런 폭로 자체가 중대한 폭력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동성애에 대한 차별이 강한 사회일수록 아우팅의 폭력성도 함께 커진다. 그런 사회에선 원한을 품지 않은 이상 동료의 동성애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다. 반대로 동성애를 그저 그런 성적 취향의 하나 정도로 인정하는 사회라면 아우팅도 그저 타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가벼운 사생활 토크 정도로 여겨질 것이다. 이런 사회라면 동료의 동성애를 재미로 언급할 수 있다.

바로 이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은 김재웅의 성적 취향을 방송 재미 정도의 차원에서 언급했고 그에 따라 ‘자의 반 타의 반’ 커밍아웃이 이뤄졌다. 그로 인해 김재웅이 매장당할 것을 걱정했다면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하다 해도 섣불리 그의 성적 취향을 입에 담진 못했을 것이다. 정말 원한이라도 품지 않은 이상엔 말이다. 출연자가 몰지각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들이 동료의 성적 취향에 대해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를 꺼낸 것은 무의식중에 이것이 그렇게 큰일이 아니라고 느꼈다는 뜻이다. 이건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를 보는 시선이 관대해졌다는 걸 방증한다. 만약 우리 사회가 과거처럼 동성애자가 매장되는 사회였다면 <셰어하우스> 제작진은 이번에 인격 살인을 한 셈이 되는데, 제작진에 그럴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김재웅이 매장되지도 않았다.

14년 전에는 지금과 상황이 달랐다. 2000년에 방송인 홍석천이 커밍아웃했을 때 우리 사회는 마치 불에 덴 듯 뜨겁게 반응했다.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나타난 것처럼 홍석천을 대했던 것이다. 순식간에 그는 패륜 무도한 죄인이 돼 방송 퇴출은 물론, 지인에게도 외면당했다. 그는 당시 “신마저도 나를 버렸다는 느낌에 너무나 고통스러웠다”며 커밍아웃을 후회했다고 한다.

홍석천의 커밍아웃이 언론 연예면을 넘어 엄청난 사회 이슈가 됐던 것에 반해, 현재 김재웅의 커밍아웃은 그저 연예면 화제 정도로나 한두 번 오르내린 수준이다. 우리 사회가 과거처럼 동성애에 민감하지 않은 것이다. 과거 동성애 토크를 아예 편집해버렸던 제작진과는 달리 이번 <셰어하우스>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알리기 위한 ‘떡밥’ 정도로 활용한 느낌이다. 가히 상전벽해다.

동성애가 방송 ‘떡밥’이 되는 시대

한국 대중문화에서 동성애 코드를 본격적으로 내세워 파문을 일으킨 건 1996년 작 영화 <내일로 흐르는 강>이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성적 소수자의 인권이 지식인 사회의 주요 이슈가 됐다. 처음엔 현대철학을 공부한 젊은 지식인이나 예술계 종사자를 중심으로 동성애 금기가 깨져갔고, 2010년 즈음엔 일반 대중의 인식도 확연히 바뀌었다. 2010년에 등장한 드라마 <개인의 취향>에선 류승룡이 ‘동성애 취향’을 가진 인물로 나왔는데 시청자의 반응이 대단히 호의적이었다. 이때부터 미국처럼 여성이 동성애 남성을 매력적인 친구 후보로 여기기 시작했다. 동성애자를 무조건 혐오만 하던 과거와는 전혀 달라진 분위기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는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다’는 응답 비율이 2007년 18%에서 2013년 39%로 높아져 한국의 동성애 수용 증가율이 세계 1위라고 발표했다. 아직까지 동성애 수용률의 절대치는 서구 선진국에 비해 낮지만 최소한 변하는 속도만큼은 대단히 빠르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홍석천 커밍아웃과 김재웅 커밍아웃에 대한 반응 차이를 설명해준다. 2014년 초에 미국의 ‘타임’은 한국에서 동성애를 보는 시각이 급속히 변하고 있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최근엔 김조광수 감독이 본인의 동성애 커플 결혼을 사회운동화했는데 이를 보는 매체의 시각도 상당히 우호적이다.

일반적으로 선진 산업사회에선 성적 취향의 자유를 인권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흐름이 대세다. 한국도 그런 보편적인 흐름에 부응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까지는 전통적인 동성애 혐오가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섣불리 커밍아웃을 방송 소재로 활용하는 건 조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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