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 복종 익숙한 ‘관피아’ ‘법피아’ 걷어내라
  • 고원 |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정치학) ()
  • 승인 2014.06.0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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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정치 중심에 편중 인사…정권 보위 벗어나 합리적 인사 해야

중국 춘추전국시대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재 확보 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약육강식과 이합집산이 횡행했던 이 시대에 제후국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인재를 모으는 데 있었다. 탁월한 인사 정책의 모범은 제나라 환공이었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 한 음모에 가담한 관중을 재상으로 발탁해 천하 제패의 꿈을 이뤘다.

조선시대에도 인사 정책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 왕들에게는 환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나온 영조의 탕평책은 통치술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나름의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영조가 52년간의 최장수 재위를 그런대로 무난하게 이어갈 수 있었던 데는 바로 인사 정책에서의 균형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원래 영조는 노론의 지지를 얻어 왕위에 올랐으나, 노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론 온건파 인사들을 중용했다. 이는 후일 소론·노론 강경파들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이인좌의 난을 진압할 때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난을 진압한 것은 노론이 아니라 탕평책으로 등용된 소론 온건파들이었다. 만약 영조가 탕평책을 펴지 않고 노론에만 의존해 통치를 펴나갔다면 그가 재위를 이어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책임 은폐와 전가, 복지부동 판쳐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한 사회 통합 위기를 겪고 있다. 지도층에서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이념과 지역, 그리고 세대가 갈가리 찢겨 서로를 불편해하고 경원시하며 심지어는 서로에 대한 냉소와 적개심을 불태운다. 그런데 정치는 이런 문제를 치유하기는커녕 여기에 편승해 자기 당파의 권력 이익을 공고히 하고자 몸부림을 친다. 권력이 위기에 빠지면 자신의 지지층을 동원하기 위해 상대 지지층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를 의도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전략을 쓴다. 이런 적대와 증오의 정치 중심에 집권자의 편중적 인사 정책이 자리한다.

지금의 박근혜정부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반세기 동안 극한 분열과 갈등을 빚어왔던 역사의 고리를 화해와 대탕평 인사 정책으로 끊겠다”라고 누누이 공언했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출범 초부터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파문이 자신의 정통성 시비로 비화하는 것을 차단하는 데 상당한 역량을 투입해왔다. 인사 정책도 정권 보위라는 목표에 맞춰 이뤄져왔다. 대통령의 일사불란한 지시와 통제에 맞지 않는 인사가 발견되면 가차 없이 찍어 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충성파는 여러 가지 실책과 허물을 범해도 한없이 감싸고 지위를 굳건하게 유지해주었다.

그런 연장에서 나온 인사 정책상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정권 초기부터 내각과 청와대에 관료 출신, 법조계 출신 인사를 중용했다는 점이다. 대개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집권 초기에는 자신의 철학과 공약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학자·정치권 출신들을 상당 폭 기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박근혜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이는 사리원칙을 따지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대화와 타협의 조정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보다는 기계적 복종과 집행에 익숙한 관료 출신과 법조계 출신들의 특성을 중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인사 정책이 중심이 된 국정 운영의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우선은 임기 초에 자신이 내걸었던 중요한 정책 공약들을 단 한 개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각종 정책들은 줄줄이 후퇴하고, 복지 영역에서 노인기초연금 공약은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그 외에도 기초선거 정당 공천 폐지, 상설특검, 특별감찰관제 등이 모두 없던 일로 돼버렸다. 게다가 권위주의 리더십과 결합된 관료 의존적 국정 운영은 세월호 사고의 와중에서 그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시스템은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리고, 책임지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책임의 은폐와 전가, 복지부동이 판을 쳤다. 피드백과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상부가 아무리 압박하고 독촉해도 엉뚱한 지시만 내리는 현상이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5월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으로 토론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여기에 더해 지역 편중 인사가 노골화되고 있다. 이미 언론에서는 PK(부산·경남) 출신, 법조계 인사들이 요직을 장악했다는 평이 대세다. 사실 이런 지역 편중 인사는 어느 정부에서나 있었다. 김영삼·이명박 보수 정권은 물론이고 김대중·노무현 진보 정권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과거 정부들의 경우 대개 정권이 레임덕에 빠진 후반기 시점에 그런 현상이 집중적으로 나타난 반면, 이 정부는 정권 초부터 굉장히 빨리 나타났다는 데 있다.  

‘의리’ 신봉하는 대통령, 끼리끼리 논리 안 돼

물론 대통령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때 믿고 신뢰한다는 것의 의미는 지연·혈연·학연이나 맹목적 충성심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이 담긴 정책 공약들을 추진하고 실현하는 데 적합한 인물을 믿는다는 뜻이다. 미국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캐스퍼 와인버거는 대통령의 인사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당의 다양한 분파를 대변하는 사람도 아니고, 지역적 균형을 맞추는 것도 아니고, 재선을 돕기 위해 필요한 사람도 아닌 바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인물을 뽑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대통령 인사에서 중요한 요건은 바로 가치와 정책 그리고 실현 능력인 것이다. 그것은 관료조직의 부처 이익을 대변하는 인물과는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의리론을 신봉한다. “의리를 모르는 사람은 사람도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의리는 인간에게 소중한 가치다. 백제의 성충과 흥수, 고려 말의 정몽주, 조선 단종 때의 사육신, 이들은 의리를 지키며 향기로운 자취를 남긴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의리가 끼리끼리의 논리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정치적으로 임명한 참모들이 대통령의 철학보다는 부처 이익을 앞세우는 것이나, 낙하산과 전관예우의 메커니즘 속에서 담합을 일삼다가 국가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관피아’들과 하등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정권 보위란 인사 정책에서 집권 철학을 분명히 세우고 균형을 잡는 데 있다. 대통령은 충성의 가치를 내세워 정부 내에서 합리적 목소리를 배제하고 억압하는 강경파 인사들을 축출해야 한다. 박근혜정부의 출구는 배신하지 않을 믿을 만한 사람을 구하는 데 있지 않다. 진영 논리, 정권 보위의 논리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유능한 인사를 널리 구하는 데 있다. 박근혜정부가 인재 선발의 폭을 넓히려면 전반적 국정 운영의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정치 위에 군림하고 장악하려는 권위적·제왕적 리더십을 버려야 한다. 경쟁 세력에 대해서도 배제와 적대를 통해 고립·분열·무력화시키는 전략을 버리고 포용과 타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야 합리적이고 유능한 인사들이 모여들게 된다. 폐쇄적이고 싸늘하기 그지없는 정권에 들어가서 1년을 버틸지 2년을 버틸지 알 수 없는데, 일 한번 제대로 해보겠다고 나설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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