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아직 내 새끼가 있다”
  • 전남 진도=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06.0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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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못한 열여섯 실종자 가족…세월호 참사 43일째 진도 현장 르포

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이 있다. 가족들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간다. 지금도 그들은 자녀와 혈육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린다. 웃고 울고 대화하고 뒤척이며 세상의 망각에 저항한다.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여전히 참사가 진행 중인 진도의 ‘하루’를 기록했다. 16명에서 여전히 16명, 벌써 일주일째 실종자 숫자가 줄어들지 않던 5월28일의 현장이다.

오전 6시, 뉴스 앵커의 건조한 목소리가 진도실내체육관을 메운다. 전면 연단에 설치된 대형 화면들은 24시간 꺼지지 않는다. 취침을 위해 잠시 소리만 죽여 뒀을 뿐이다. 사고 직후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를 방문했을 때 희생자 가족들이 가장 먼저 요구했던 것이 바로 대형 화면 설치다. 왼쪽 화면은 뉴스를, 오른쪽 화면은 수색 현장을 비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눈’과도 같다. 왼쪽 눈으로는 진도를 둘러싼 세상의 소식을, 오른쪽 눈으로는 바다 아래 세월호 안에 있을 실종자를 좇는다. 하루 내내 ‘눈’은 감기지 않는다.

실종자 가족들의 임시 숙소인 진도실내체육관은 썰렁해졌다. 하지만 아직 가족을 품에 안지 못한 이들이 그곳에 남아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물속에 있는 아이 생각밖에 안 난다”

열여섯. 어제와 오늘의 실종자 숫자는 같다. 수색은 난관에 부닥쳤다. 실종자가 발견되지 않은 채 일주일이 지났다. 오늘부터는 세월호 선체를 일부 절단하는 등 좀 더 적극적인 수색이 시작될 예정이다. 잠에서 깨어난 실종자 가족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2014년 5월28일, 세월호 참사 43일째의 아침이 밝았다.

오전 9시,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국회에서 연 기자회견이 중계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정조사 계획서가 여야 간 이견으로 채택이 불발된 것에 대해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가족들은 한 학생 희생자의 편지를 낭독하며 눈물을 보인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호소한다. 아침 식사를 마친 실종자 가족들이 말없이 화면을 응시한다. 눈물을 흘리거나 큰소리를 내는 이는 찾아볼 수 없다. 묵묵히 화면을 응시하거나 먼 곳을 아련히 바라볼 뿐이다. 화면을 바라보다 중간에 자리를 박차고 돌아서는 이도 있다.

이영호씨(46)는 담배를 꺼내 문다. 벌써 세 개비째다. 흩어지는 연기 사이로 보이는 표정이 어둡다. 옆에 있던 한 실종자 가족이 “앉은자리에서 한 갑 다 피우겠다”며 농을 건넨다. 이씨는 쓴웃음만 지을 뿐이다. 하지만 신경이 쓰였는지, 마른기침이 나자 반이나 남은 담배를 발로 비벼 끈다. 이씨의 누나는 아직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조카와 함께 진도에 머무르며 누이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드물다. 혼잣말이나 특정 행동으로 반응을 표출하는 대신, 조용히 속으로 삭이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허공이나 영상을 자주 응시하는 버릇, 같은 자리에서 두세 대 이어지는 줄담배 같은 것이 증거다. 이씨에게 기자회견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이젠 (이런 일이) 새롭지도 않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이씨의 말들은 짧다. 거기 담긴 감정의 채도는 옅다. 분노도 슬픔도 느껴지지 않는 나직한 어조다. “국회의원부터 다 개조해야 나라가 산다”는 ‘센 말’조차 담담하게 뱉는다.

일부 가족에게서는 감정 소진의 징후도 보인다. 심리적으로 지친 상태인 것이다. 주로 체육관 안에 머무르며 거동을 거의 하지 않는 한 실종자 아버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담배를 피우러 잠시 바깥으로 나온 그에게 오전에 있었던 기자회견에 대한 감상을 물으며 대화의 물꼬를 터보려 했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숨이 깊었다. 먼 곳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물속에 있는 아이 생각밖에 안 난다.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눈시울이 붉게 젖어드는 그에게, 아직 돌아오지 못한 자녀에 대해서는 차마 물을 수 없었다.

5월28일 실종자 가족들이 팽목항 방파제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사랑하고 미안해,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이날 오전부터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 서울 지하철 방화 등 사고가 잇따랐다. 뉴스를 접한 실종자 가족들이 이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일 역시 드물다. 분노나 놀라움, 안타까움 등을 밖으로 노출하는 일이 극도로 억제된 인상이다. 하지만 억눌린 감정은 특정 계기를 만나면 폭발하곤 한다.

전날(5월27일) 오후 5시 무렵, 팽목항에서 잠시 소란이 일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의 브리핑 장소가 진도실내체육관이라는 사실이 일부 실종자 가족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팽목항에서 대기하고 있던 가족들이 거세게 항의했다. 결국 브리핑은 팽목항으로 장소를 옮겨 진행됐다.

사소한 계기가 감정 다툼으로 비화하기도 한다. 밤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술을 나눠 마시는 경우가 잦은데, 이때 종종 다툼이 발생한다. 지난 5월26일에는 소지품을 임의로 옮겼다는 이유로 일부 가족들 사이에 감정 대립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곧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관계가 회복되기 일쑤다. 왜 그리 갑작스레 분노를 폭발하곤 하는지, 서로가 이유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혈육이 차가운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다른 희생자 가족들은 속속 진도를 떠나가는데 그들은 이곳에 남았다. 그동안 심리적 충격이 지속적으로 누적됐다. 진도에 머무르며 세월호 참사 기록을 수집 중인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몇 번이나 가슴에 상처를 입었다. 사고 사실을 처음 인지한 순간, ‘전원 구조’가 오보라는 사실이 드러난 순간, 이후 현재까지 실종자 구조가 진행되며 하나 둘 현장을 떠나가는 동안까지 계속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실종자 가족의 구술 기록을 남기는 것이 현재로서는 불가능할 정도로 심리적 상처가 심하다.”

그럼에도 희생자 가족들은 서로를 의지하는 것으로 오늘을 지탱해나간다. 애써 유머 섞인 정담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한다. 그렇게라도 조금씩 웃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하루하루인 터라, 일부러라도 웃을 거리를 찾아내야 한다. 실종자 가족인 한 40대 여성이 “‘진도 펜션’에서 ‘안산 펜션’으로 가요?”라며 농담을 건넨다. 자녀를 찾은 후에도 다시 진도를 방문해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고 떠나는 유족에게 한 말이다. 떠나는 이는 “제발 안산에서 봐요”라고 답한다. 여기에 “처음 사고 났을 때만 해도 곧 갈 줄 알았지. 그런데 벌써 6월이야”라며 자조적인 대답이 이어진다. 또 다른 실종자 가족은 수색이 난항을 겪는 상황을 웃음기 섞어 한탄한다. “이제 바지선 빠지는 건 익숙해. 벌써 네 번째야. 한번 빠지면 다시 들어가기까지 이틀이 걸려. 바다 상황 안 좋으면 ‘턴’한다고 하루 더 걸려서 사흘이야.”

어제 실종자 가족들은 4층 선미의 선체 외판 일부를 절단하자는 데 범정부사고대책본부와 합의를 보았다. 관련 장비를 실은 바지선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오전까지 계속된 기상 악화로 바지선은 낮 중에 투입되지 못했다. 오늘 단 한 명의 실종자라도 돌아올 가능성은 또 낮아졌다.

실종자 가족들은 차로 약 25분 거리의 체육관과 팽목항을 자주 오간다. 체육관에서는 주로 뉴스를 접하고 구조 현장을 응시한다. 함께 남은 이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홀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거나 먼 곳을 바라보기도 한다. 팽목항에 가서는 세월호가 침몰한 바다 쪽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현장에 마련된 가족대책위 천막에서 범정부사고대책본부의 브리핑을 기다린다.

이날도 체육관에는 불면의 밤 이어져

팽목항 방파제에는 실종자의 귀환을 염원하는 노란 리본이 가득하다. 실종자 가족들은 이곳에 음식, 옷, 신발 등을 놓아뒀다. 어서 뭍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당장이라도 바닷속 실종자가 마실 수 있도록 캔은 뚜껑을 따뒀다. 음료에는 빨대를 꽂았다. 자녀가 신던 구두, 입던 체육복, 좋아하던 아이돌 가수의 앨범을 놓아두기도 했다.

실종자 남현철군(17)의 부모는 그곳에 기타를 두었다. 남군이 평소 아끼던 물건이다. ‘사랑하고 미안해. 이제 그만 집에 가자’는 부모의 편지가 적혀 있다. 오후 4시30분쯤, 아버지가 방파제를 찾았다. 남군의 손때가 묻은 기타를 어루만진다. 한동안 곁을 떠나지 못하다 방파제 난간에 얼굴을 묻는다. 아버지는 오열한다. 동행한 실종자 가족들이 그의 어깨를 감싼다. 아버지는 멀리 바다를 향해 고개를 든다. 아들의 이름을 크게 소리친다. “사랑한다”고 절규한다. 팽목항에 바닷바람이 분다. 메아리 없는 외침이 멎은 자리에, 실종자의 귀환을 염원하는 풍경(風磬) 소리가 울려 퍼진다.

진도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낮에 출항하지 못한 바지선은 오후 8시50분쯤에야 사고 해역으로 출발했다. 본격적인 절단 작업은 내일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유속이 빨라지는 대조기에 들어간다. 실종자 수색 여건은 더욱 나빠진다. 체육관 내 수색 현장 화면에 불을 밝힌 바지선이 보인다. 실종자 가족들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면은 출렁이는 파도를 따라 크게 흔들린다.

실종자 가족들은 서로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하루를 정리한다. 오후 9시가 넘어가면 자원봉사자들이 체육관으로 들어온다. 실종자 가족들이 “가장 고마운 분들”이라고 칭송하는 이들이다. 하루 일과를 마친 자원봉사자들은 곧 잠에 빠져든다. 하지만 가족들은 좀처럼 잠들지 못한다. 끼리끼리 둘러앉아 늦도록 대화를 이어간다. 애써 자리에 누웠다가도 뒤척이다 체육관 바깥으로 나오는 이가 많다. 오늘도 체육관에는 불면의 밤이 이어진다.

체육관 천장의 조명이 꺼진다. 하지만 연단의 대형 화면들은 꺼지지 않는다. 실종자 가족들이 애써 잠을 청한 뒤에도, 뉴스 및 수색 현장 화면이 아침까지 체육관을 밝힐 것이다. 어느덧 자정이 지났다.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물었다. 5월29일이다. 세월호 참사가 44일째로 접어들었다.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의 수는 아직도 열여섯이다.

“힘이 돼주고 싶어 다시 진도에 왔다” 


이미 가족을 되찾은 유족들 중 상당수가 다시 진도를 방문하고 있다. 아직까지 진도를 떠나지 못하는 실종자 가족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함께 체육관에서 숙식하며 위로를 건넨다. 그들과 더불어 팽목항을 찾아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귀환을 염원한다. 밤이면 술잔을 기울이며 속말을 나누기도 한다.

고(故) 최덕하군의 아버지 최 아무개씨는 “(실종자 가족에게) 힘이 돼주고 싶어서 왔다. 이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생각 같아서는 진도에 계속 있고 싶다. 하지만 생업 등 사정이 있기에 계속 진도와 안산을 오간다.

같은 시간 최군의 어머니는 국회에 있었다. 여야의 국정조사 합의를 촉구하는 가족대책위에 목소리를 더하기 위해서다. 아버지가 진도에서 실종자 가족과 고통을 나눌 때, 어머니는 서울에서 사건의 진상 규명을 호소한다.

단원고 2학년 최군은 세월호 침몰 당일인 16일 오전 8시52분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에 최초로 조난 신고를 했던 학생이다. 최군의 신고 덕에 174명이 구조될 수 있었다. 최군은 4월23일 세월호 선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들의 몸은 부모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부모의 마음은 여전히 진도 앞바다에 있다.


 
 

“해경 해체, 불 꺼야 할 소방서 없앤 꼴 아닌가” 


팽목항 방파제에 남현철군의 이름이 울려 퍼졌을 때, 멀리 서울 국회에서도 “현철아”라는 울부짖음이 있었다. 5월28일 오후5시 무렵, 국회 본관 계단에 세월호 참사 피해자 유족들이 섰다. 국정조사를 둘러싼 여야의 줄다리기는 오후 늦게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유족들의 분노는 슬픔으로 바뀌어갔다.

“우리는 그래도 젖은 머리카락 쓰다듬어봤잖아요. 차갑게 식은 볼 만져라도 봤잖아요. 지금 이 시간에도 바닷속에서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 자식 부르는 심정으로 크게 한번 이름을 외쳐 봅시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단원고 학생들의 이름이 하나씩 울려퍼진다. 외침에 울음이 섞여, 이름들은 제대로 발음되지 못한다. 숫제 통곡에 가까운 호명에 주변이 숙연해졌다.

희생자 가족들의 정부 및 정치권에 대한 분노는 팽목항 물살만큼이나 거세다. 진도에서도 “여야 다 필요 없다. 아무도 안 믿는다” “어차피 이럴 줄 알았는데, 또다시 무엇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접할 수 있었다. 정치권으로부터 참사 진상 규명의 의지를 느끼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해경 해체 방침에도 불만이다. 참사 초기 해경 관계자와 민간 잠수부들의 손에 먹을 것을 쥐여주며 “제발 우리 애 좀 꺼내달라”며 간청했던 이들이다. 아직 구조되지 못한 실종자가 있는 상황에서 해경을 흔드는 것에 우려가 깊다. “불 꺼야 할 소방서를 없앤 꼴 아닌가. 현장에 있는 해경 관계자도 힘이 빠진다고 하더라.”

여야는 5월29일에야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여야 간 갈등의 원인이었던 청와대 비서실에 대한 조사 대상 기관 포함이 확정됐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국회 특위에서 기관보고를 하게 된다. 국가정보원도 조사 대상 기관에 포함됐다. 6월2일부터 8월30일까지 90일 동안 ‘세월호 침몰 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실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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