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없어지고 혁신학교 뜬다
  • 김지영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4.06.1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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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교육감 13명 공약 분석…입시 위주 교육 대수술 나설 듯

“한국에서 교육은 학벌과 밥줄을 건 한판 승부다.” 지금으로부터 딱 5년 전 한 지식인이 일갈했다. <입시전쟁 잔혹사> 저자 강준만이다. 이 책은 제목이 곧 메시지다. 한국 교육의 뿌리 깊은 병폐를 이보다 더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말은 드물다. 그러나 진단이 정확하다고 해서 곧 해결되는 게 아니다. 저자의 매서운 일갈은 많은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줬지만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 책이 한국 교육계의 ‘고전’이 되어가고 있던 때, 이 ‘사건’이 터졌다.

진보교육감 득표율 꾸준한 상승세

13 대 4. 이쯤 되면 기적이다. 2010년 첫 교육감선거에서는 6 대 10이었다. 하지만 이 결과도 당시 충격이었다. 보수적인 교육계에서 진보 성향 교육감이 6명이나 나왔다. 그런데 이번엔 13명으로 두 배가 넘는다. 더 신기한 점은 당선자 가운데 그 무시무시한 ‘전교조 딱지’가 붙은 이들만 8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이 기적 같은 현실에 전문가 집단이 원인을 분석하고 나섰다. 혹자는 세월호 여파에 따른 ‘앵그리맘’의 분노라고 하고, 혹자는 단일화에 실패한 보수 후보의 분열 덕분이라고 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당사자가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가져다 붙이기 나름이다. 하지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바로 진보 교육에 대한 다수 시민의 숨죽인 열망이다.

이범 교육평론가의 말이다. “진보 교육감의 당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득표율이다. 경기를 제외하고 진보 교육감에 대한 득표율이 과거에 비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서울만 봐도 2010년 곽노현 교육감이 34.3%로 당선됐는데 이번엔 (조희연 당선자가) 39.1%다. 특히 보수적인 강원도 지역에서 전교조 지부장 출신인 민병희 교육감이 46.4%로 당선됐다. 입시와 경쟁 교육에 대한 시민들의 피로감이 협력·인성을 강조한 진보 교육의 가치에 대한 인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끝날 것 같지 않던 학벌과 밥줄을 건 입시 전쟁에 대한 조용한 종언, 이번 교육감 선거는 그 예고편이었다는 얘기다.

13인의 진보 교육감을 하나로 묶는 끈은 ‘혁신학교’다. 여기서 혁신학교라는 게 중요하다. 혁신학교 확대는 입시 전쟁의 종언과 맞닿아 있다. <혁신학교란 무엇인가>(김성천·2011년)에서는 ‘혁신학교란 교육 주체들의 협력으로 학교 문화를 새롭게 창출하여 교육 과정, 수업, 평가 체제에 의미 있는 변화를 시도하는 학교’라고 정의한다. 참여·공동체·협력은 혁신학교의 핵심 키워드다. 학교 구성원인 학교와 교사가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서로 협력해 하나의 배움 공동체를 만드는 게 혁신학교의 주된 교육 철학이라는 얘기다.

6개 시·도 혁신학교, 13개 시·도로 확대 전망

혁신학교 확대는 자사고 폐지와 필연적으로 맞물린다. 처음부터 잘하는 아이들이 머리 터지게 경쟁하는 학교가 자사고와 특목고다. ‘우리의 아이’가 아닌 ‘내 아이’만 더 잘 배울 수 있도록 최적화된 곳이 바로 자사고다. 반면 우리 아이 전체를 고르게 똑똑하게 키워보자는 게 혁신학교다. 혁신학교는 고교 평준화, 무상교육(급식)과 같은 진보 교육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6개 시·도에 그쳤던 혁신학교가 13개 시·도로 확대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혁신학교가 있는 지역은 경기(230곳), 전북(101곳), 서울(67곳), 전남(65곳), 강원(41곳), 광주(26곳)로 국한돼 있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로 전국 혁신학교 벨트가 형성될 것으로 분석된다. 강원-서울·수도권-충청-전남에 이어 보수의 아성이었던 부산-경남에 제주도까지 대대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김석준 부산시교육감 당선자는 ‘부산형 혁신학교’ 30곳을, 박종훈 경남도교육감 당선자는 ‘경남형 혁신학교’를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혁신학교에 대한 드라이브는 속도를 내는 반면 자사고 정책에는 제동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당장 38곳 자사고의 운명이 진보 교육감 손에 들어갔다. 전국 자사고는 총 49개인데 이 중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서울(25곳), 전북(3곳), 경기·광주·충남(각 2곳), 강원·부산·인천·전남(각 1곳) 등에 전체의 77.55%가 분포돼 있다.

현행 초·중등교육법령에 따르면 시·도 교육감은 교육부와 협의해 자사고를 5년마다 평가해 지정 취소 또는 지정 기간 연장을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정부와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교육부가 통제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서울 지역에서는 큰 수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선 조희연 당선자가 ‘일반고 전성시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자사고 출구전략’을 내세운 상황이다.

하지만 자사고 전면 폐지가 실질적으로 이뤄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관건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자사고 운영평가다. 현재 전국적으로 자사고 25개교에 대한 5년 단위 운영 성과 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자사고 폐지가 전국 진보 교육감들의 공통 공약이긴 하지만 ‘엄격한 평가 후 지정 목적에 맞게 운영’이라는 사실상 조건부 폐지를 내건 진보 교육감이 많기 때문이다.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자사고의 가장 큰 폐단이 일반고 슬럼화인데 현재 교육부의 자사고 평가 기준에는 이 부분에 대한 평가가 빠져 있다”며 “진보 교육감들이 정책적 네트워크를 구성해 정부에 자사고 평가 기준을 강화하라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혁신학교 확대-자사고 폐지와 함께 고교 평준화, 무상급식·무상교육 확대 흐름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교 평준화·무상교육 확대 흐름 거셀 듯

이러한 진보 교육 정책은 자연스레 박근혜정부를 압박한다. 중요한 건 진보 교육감 개개인의 행정력이다. 김무성 한국교총정책본부장은 “자사고 폐지 정책도 그렇지만 학교 인권조례나 혁신학교 확대 등도 중앙정부와 상당한 인식 차이가 있다”며 “정책을 강행한다면 저항감이 표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섬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 때보다 중앙정부와 교육감 간의 갈등이 덜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박근혜정부의 교육 정책인 자유학기제나 대통령 스스로 약속한 고교 무상교육 등은 진보 교육철학과 비슷하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만큼 대립각을 세우진 않을 것 같다”며 “그러나 세월호 시국선언에 대한 징계, 자사고 폐지 등과 관련해서는 이명박 정부 못지않게 갈등이 표출될 것이다. 개개인 교육감들이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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