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는 ‘필요’, 자사고는 ‘불필요’
  • 김지영·노진섭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4.06.1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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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리얼미터 전국 1000명 여론조사…교육감 직선제 폐지 ‘반대’

© 시사저널 박은숙

국민은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보수·진보 등 후보자의 성향과 함께 정책 공약을 꼼꼼히 살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교육감 직선제 폐지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의견이 우세했다. 혁신학교는 필요하지만 자사고(자율형 사립학교)는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극심한 입시 경쟁 풍토와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교육 정책이 부모에서 자식으로 대물림되지 않도록 교육계의 변화를 요구했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전문 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6월11~12일 조사한 결과다.


전체 국민의 60% 이상은 교육감을 뽑을 때 각 후보자의 보수·진보 성향과 정책을 고루 따진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감 후보 선택 기준을 ‘보수냐, 진보냐 하는 성향’으로 꼽은 이가 전체의 33.1%였고, ‘각 후보의 정책’을 눈여겨본 유권자는 32.6%로 집계됐다. ‘후보 개인의 품성’(18.9%)이나 ‘인지도’(5.5%)는 그리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세대인 40~50대의 응답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40대는 후보의 정책(33.2%)에, 50대는 보수·진보 성향(34.4%)에 더 무게를 두고 교육감 투표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17개 시·도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성향을 가진 후보가 13개 지역을 차지했다. 이 결과에 대해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의 영향’(19.2%)이나 ‘박근혜정부와 여당에 대한 반감’(19.5%)보다는 ‘보수 교육감 후보의 난’(22.9%)과 ‘진보 교육감 후보의 정책이 우수했기 때문’(22.4%)을 더 큰 요인으로 꼽았다. 40대 가운데 31%는 진보 교육감 정책의 우수함을, 50대의 25.9%는 보수 교육감 후보의 난립을 각각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정치학의 오랜 속설은 최소한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보수 진영 후보는 분열했고, 진보 성향 후보는 뭉쳤다. 보수 진영은 선거를 앞두고 ‘대한민국올바른교육감추대전국회의’(올바른교육감전국회의)를 꾸리며 단일화 움직임을 보였으나 경선 과정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17개 시·도 가운데 10곳만 단일 후보를 추대하는데 그쳤다. 그마저도 후보들이 독자 출마를 선언하면서 실제 보수 단일 후보가 나선 지역은 3곳에 불과했다.

보수 후보 분열할 때 진보 후보 정책 승부

서울·경기는 보수 진영 단일화가 실패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서울에서 ‘올바른교육감전 국회의’는 문용린 후보를 보수 진영 단일 후보로 내세웠다. 당장 고승덕 후보와 이상면 후보가 반발했다. 고 후보는 보수 후보 단일화 경선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 후보는 ‘단일화 후보’라는 명칭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의뢰해 불법이라는 답변까지 받아냈다. 게다가 선거 막판에 터진 고후보의 ‘딸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글 파문’은 유권자가 보수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고 후보의 딸인 캔디 고씨(한국명 고희경·27)가 아버지를 향해 “교육감 자격이 없다”며 사퇴를 요구해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것이다.

경기는 보수 후보가 가장 난립한 지역이었다. 최종적으로 중앙선관위에 등록한 6명의후보 가운데 4명이 보수 진영이었다. 조전혁(26.2%)·김광래(11.3%)·최준영(9.7%)·박용우(9.4%) 후보의 득표율을 합치면 56.6%다. 투표 전날 사퇴한 후보의 무효표까지 합하면 60%를 넘는다. 이는 이재정 당선자의 최종 득표율 36.4%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황우승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고문은 “교육감=선생다. 최종적으로 중앙선관위에 등록한 6명의 후보 가운데 4명이 보수 진영이었다. 조전혁(26.2%)·김광래(11.3%)·최준영(9.7%)·박용우(9.4%) 후보의 득표율을 합치면 56.6%다. 투표 전날 사퇴한 후보의 무효표까지 합하면 60%를 넘는다. 이는 이재정 당선자의 최종 득표율 36.4%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황우승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고문은 “교육감=선생님으로 보는 인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보수후보들끼리 이전투구하는 모습을 본 국민은 거부감이 있었을 테고, 특히 고승덕·문용린후보의 행태에 대한 반발심이 진보 쪽 표로 연결된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과거 진보 교육감들은 무상급식과 혁신학교를 추진하면서 학부모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한 진보 교육감 후보들도 그때와 같거나 비슷한 공약을 제시했다. 입시 고통 해소 및 공교육 정상화, 학생 안전 및 건강권 보장, 교육 비리 척결이라는 3대 핵심 공약을 발표했다. 특히 고교 서열화의 주범인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를 폐지하고 혁신학교를 통해 일반고 전성시대를 열겠다는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았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경제정의실천시민연대’ ‘좋은교사운동’ ‘인간교육실현학부연대’ 등으로 구성된 ‘2014서울교육감시민선택’에서 조희연 후보가 가장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새누리당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의 교육감 직선제 폐지 주장에 대해 국민의 45.6%는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의하는 의견은 39.5%였다. 14.9%는 ‘잘 모르겠다’며 답변을 유보했다. 직선제 폐지에 대해40대와 50대의 입장은 다소 갈렸다. 40대에선 ‘동의하지 않는다’(54.9%)가, 50대에선 ‘동의한다’(55.8%)가 각각 과반을 넘겼다. 20대(53.8%)와 30대(58.7%)에선 ‘동의하지 않는다’, 60대이상(51.9%)에선 ‘동의한다’에 대한 의견이 많아 세대별 대립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50대에서 직선제 폐지에 ‘동의한다’는 의견이 많이 나온 것은 고연령층의 보수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중간지대인 40대층에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률이 높게 나온 것은 주목된다.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교육과정·생활관리·체험활동 등에 교사 자율권이 확대된 혁신학교에 대해 국민들은 긍정적인 사인을 보냈다. ‘혁신학교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62.6%로 조사됐고,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15.8%에 그쳤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40대와 50대가 모두 필요하다는 입장(각각 65.6%와 59.3%)을 보였다. 혁신학교는 2010년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의 공약으로 도입됐다.

독립된 재정과 교과과정이 특징인 자사고에 대해서는 ‘불필요하다’는 의견(49.4%)이 더많았다. ‘필요하다’는 주장은 29.5%에 머물렀다. 자사고에 대해서는 40~50대 모두 불필요하다는 의견(각각 57.3%와 46.6%)이 많았다. 자사고는 이명박 정부 때 탄생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으므로 등록금은 일반 고등학교보다 세 배가량 비싸다. 교과과정도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자율성은 입시 교육을 강화하는 쪽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민 3명 중 1명 “지나친 경쟁 구도가 문제”

응답자들은 한국 공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나친 경쟁 구도’(28%)를 꼽았다. ‘정부의 교육정책 혼란’(21.1%)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40대는 ‘지나친 경쟁 구도’(23.4%)를, 50대는 ‘정부의 교육정책혼란’(23%)을 가장 큰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마디로 입시 경쟁에 휘둘리는 현실이 부모에서 자식으로 대물림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지적이라 할 수 있다.

공교육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미치는 영향을 국민들은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매우 긍정적’(15.7%), ‘어느 정도 긍정적’(34.6%) 등 국민의 50.3%가 전교조의 영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41.5%나 됐다.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는 세대 간에 뚜렷하게 대비됐다. 40대는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59%)이 많았고, 50대는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52.8%)이 우세했다.

전교조는 그동안 학급당 학생 수 줄이기와 일제고사 반대 등을 주장해왔다. 실제로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가 폐지됐다.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표 시절, 전교조를 ‘해충’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 단체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았던 박근혜 대통령도 2012년 대선에서는 초등학교 일제고사 폐지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혁신학교 도입도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려는 전교조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국민들은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이런 점들을 평가한 셈이다.

교육계에 진보 성향 교육감이 포진한 데 대해 국민들은 교육 정책과 환경 변화를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74.4%는 ‘교육 환경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고,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는 사람은 21.3%였다. 40~50대 모두(각각 78.1%와 74.2%) 교육계의 변화를 주문한 것으로 분석됐다.

어떻게 조사했나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전문 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6월11~12일 전국에 거주하는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임의번호걸기(RDD) 자동 응답 전화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해 유·무선 각 70%와 30%씩 조사했고, 인구 비례 기준 무작위로 추출하는 방식으로 오차를 보정했다. 성별은 남성 49.5%, 여성 50.5%다. 실제 청소년 자녀를 둔 40~50대는 전체의 41.3%를 차지했다. 표본 오차 95%에 신뢰 수준은 ±3.1%포인트, 응답률은 4.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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