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앞마당까지 레임덕 그림자 드리웠다
  • 이승욱·조해수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06.1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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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집권 2년 차를 맞고 있는 박근혜정부의 모습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조금 성급하게 이야기하면 ‘레임덕’이 거론될 정도다. 세월호 및 인사 참사에 따른 권력 누수다. 흔들림이 없어 보일 것 같던 청와대와 그들을 바라보는 집권 여당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레임덕(lame duck).’

역대 어느 정권도 피해가지 못한, 그러면서도 가장 불경스럽게 여기는 단어다. 레임덕은 국가권력의 최고 정점인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지고, 집권 세력 내부 암투가 격화되는 양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는 청와대와 정부, 집권 여당 곳곳에서 일사불란함보다는 자중지란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표출된다. 레임덕의 파고를 맞닥뜨리면서 절대 권력자인 대통령도 단어의 의미 그대로 ‘절름발이’ 신세로 전락한다. 레임덕이라는 세 글자를 입 밖에 내는 순간, 대통령을 향해 공격의 비수를 꽂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연합뉴스
김무성, 총리직 거부 발언에 친박 ‘부글부글’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는 이제 불과 1년4개월 정도 지났을 뿐이다. 더구나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최근 세월호 참사로 다소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5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6월13일 발표한 대통령 국정 지지율 조사에서 ‘잘하고 있다’는 47%였다. ‘잘못하고 있다’(43%)를 앞선다. 역대 정권의 집권 2년 차와 비교해 봐도 양호한 성적이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지금의 박근혜정부는 지난해와 같은 자신감과 견고함이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불안하고 위태롭기 그지없어 보인다. 불안감의 진원지는 집권 여당 쪽이다. 새누리당 안팎에서 레임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비박(非박근혜)’ 세력의 주류 흔들기 차원이 아니다. 다소 섣부른 감은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 레임덕의 징후를 논할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주요 요인이 있다. 당권 교체 가능성과 인사 파동이다.

7월14일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새누리당 지도부는 전면 교체된다. 그동안 새누리당은 친박 주류가 당 권력의 핵심부를 차지하면서 청와대의 당 장악력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당내 권력 구도가 큰 변화를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여당 내부에서 ‘친박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는 것 또한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다. 당권을 둘러싸고 친박 주류와 비주류 그리고 비박이 혼재된 권력 다툼이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불안감은 친박 주류와 김무성 의원의 해묵은 불신과 갈등에서 비롯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6월8일 새누리당 당사에서 7·30 전당대회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6·4 지방선거를 일주일 앞둔 지난 5월30일, 김무성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구 유세 현장에서 “저보고 총리를 하랍니다. 하지만 저는 영도를 지키고 새누리당 대표가 돼서 영도를 발전시키겠습니다”라고 외쳤다. 당시 그의 발언은 마치 청와대가 자신에게 총리 제안을 했고, 자신은 이를 거부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김 의원은 논란이 번지자 “당 안팎과 언론에서 총리를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는 취지의 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 의원의 발언을 접한 청와대와 친박 주류 쪽에선 불쾌감이 역력했다. 당시는 지방선거가 임박한 시점이었다. 박근혜정부로서는 지방선거 승리가 지상과제였다. 더구나 부산은 여당의 텃밭임에도, 친박 핵심 서병수 후보가 야권의 오거돈 후보에게 밀리는 양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권끼리 공격하고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칫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컸다. 김 의원의 발언은 청와대가 공식 대응을 하지 못하는, 이런 절묘한 시기적 상황을 계산에 넣고, 자신의 당권 도전에 힘을 싣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는 해석이 당 안팎에서 나왔다. 김 의원의 발언을 전해들은 친박계 한 핵심 인사는 기자에게 “그러니깐 잡X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6월1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서청원 의원(왼쪽)이 ‘새누리당 변화와 혁신의 길’이라는 주제의 토론회를 갖고 친이계의 좌장 이재오 의원과 손을 잡고 만세를 부르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청와대 향한 당내 반발 움직임 심상찮아

상당수 친박 주류 측 인사들은 김 의원이 언제든 박 대통령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한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친박 주류에서는 당권 도전에 나선 김 의원이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위해 할 말은 하겠다”고 공언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대통령을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특히 김 의원이 그동안 박 대통령 핵심 측근들과 갈등을 오래 키워왔다는 점도 배경에 깔려 있다.

김무성 의원이 당권 도전을 통해 당의 전면에 나설 경우, 당내 갈등뿐만 아니라 청와대와의 마찰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준 통치 스타일은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2인자 권력은 애초부터 싹을 자른다는 점이다. 이는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가 발탁될 당시 불거진 ‘책임총리제’ 논란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의 2012년 대선 공약이기도 한 책임총리제가 언론을 통해 회자되자, 청와대는 사회부총리 신설이라는 카드를 내놓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자칫 총리에게 쏠릴 수 있는 권력의 분산 효과를 노린 포석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강했다.

지금은 서청원 의원을 필두로 한 친박 주류 진영과 김무성 의원 중심의 친박 비주류 및 비박 진영이 7·14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대격돌을 벌일 것이 예고되는 상황이다. 양측의 대결 구도는 그동안 청와대를 배경으로 당을 운영해온 데 대한 ‘친박 주류 심판론’으로 첨예화되고 있다. 당내 소장파인 초선 의원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6월5일 당내 초선 의원 모임인 심우회 소속 의원 6명은 성명을 내고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요구한다면서 집단 항명하기도 했다. 이를 주도한 김상민 의원(비례대표)은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안주 세력이 대통령 주변에 있다”며 “국민 정서에 위반되는 문 후보자와 인사의 책임이 있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쇄신의 대상을 일종의 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사실상 친박 주류를 겨냥한 발언으로 읽힌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당내 집단 항명 움직임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청와대와 친박 주류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조짐은 이전부터 조금씩 감지되어왔다. 지난 5월29일 하반기 국회의장 선거에서 친박 성향 황우여 전 대표는 비박 성향의 정의화 의원에게 더블스코어 차이로 완패했다. 6·4 지방선거 경선 당시 여권의 심장부인 대구에서 ‘친이계’였던 권영진 전 의원이 친박 주류 서상기·조원진 의원 등을 누르고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된 것도 일종의 사건이었다.

일부 차기 당대표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김무성 의원이 서청원 의원을 앞지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친박 주류의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양측은 이미 물밑에서 치열한 수(手) 싸움을 벌이고 있다. 전당대회 출마 예상자가 원내에만 10여 명에 이른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특정 후보가 경쟁 후보 강세 지역에서의 표 분산을 위해 제3의 후보에게 출전을 요청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새누리당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자칫 여권 내부의 권력 다툼이 혈전으로 비화할 경우 박근혜정부의 당 장악력은 이완될 수밖에 없다.

현 정부의 두 번째 총리 인선을 통해 정국 주도권을 계속 이어가려 했던 청와대의 의도는 ‘문창극 파문’이란 암초를 맞았다. 인사에서 또다시 발목이 잡히는 모양새다. 한 달간의 장고 끝에 지명된 안대희 전 후보자의 낙마는 전주곡이었다. 다급해진 청와대가 2주 동안 숱한 인사 검증을 거친 끝에 내민 카드는 뜻밖이었다.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은 한 번도 언론에서 후보로 거론되지 않은 인물이다. 그야말로 ‘깜짝 인사’였다.

참신함을 평가받으려 했던 청와대의 의도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문 후보자가 책임총리를 감당할 수 있는 행정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민 통합을 기대하기에는 이념 편향성이 너무 짙다는 반대 여론에 부닥쳤다. 세월호 참사와 안대희 전 후보자의 낙마로 위기에 몰린 박근혜정부지만, 6·4 지방선거에서 의외로 선전하면서 정국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분위기였다. 그게 오판을 자초한 것일까. 지방선거 전까지 활발하게 거론됐던 화합형 총리 카드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문창극 파문’으로 김 실장 다시 도마에

이 대목에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문 후보자가 총리에 지명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6·4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충청권 참패가 거론되고 있다. 충청권 민심을 달래기 위해 충북 청주 출신의 문 후보자를 발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주목을 받는 것은 문 후보자와 김 실장의 ‘인연’이다. 문 후보자는 지난해 5월 새로 출범한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발기인으로 참여해 이사로 활동했는데, 이때 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이 김 실장이었다. 문 후보자와 함께 기자 생활을 했던 한 언론인은 “김 실장과 문 후보자가 (기념사업회의 인연으로) 정기적으로 미팅을 했다. 안대희 전 후보자가 낙마한 후, (청와대가) 충청권 인물을 가장 우선적으로 살펴보다 언론인 출신으로 급선회한 것으로 알고 있다. (문 후보자를 선택한 배경에) 김 실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된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 후보자의 왜곡된 역사관과 극우적인 이념적 성향을 보여주는 과거 교회 강연 발언과 칼럼 등이 연이어 공개되며 ‘인사 검증’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6월13일 발표된 새 내각 명단에서 문화부장관으로 내정된 정성근 아리랑TV 사장의 과거 음주운전 단속 동영상도 발표 직후 공개됐다. 검증 시스템에 대한 따가운 여론에 청와대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문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 통과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2010년 8월, 김태호 당시 총리 후보자가 인사 청문회 도중 자진 사퇴하면서 레임덕의 신호탄이 됐다.  

문창극 후보자의 향후 거취 여부와 관계없이, 박근혜정부의 레임덕은 이미 청와대 앞마당까지 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레임덕 현상의 이론과 실제>에서 레임덕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공직 기피 현상’을 꼽았다. 실제 이번 총리 인선 과정에서 꽤 많은 인사가 총리직을 고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뭔가 혁신적인 변화가 없으면 박근혜정부는 가랑비에 옷깃 젖듯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곧 7·14 전당대회가 있고, 바로 이어 7·30 재보선이 이어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고비를 맞고 있다.             

 

인사 실패와 권력 다툼이 레임덕 단초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레임덕 현상의 이론과 실제>를 통해 대통령이 맞게 되는 레임덕 발생의 대표 원인으로 5가지를 꼽았다. 인사 실패, 여권 내부 갈등, 대통령 주변 비리, 중간선거 패배, 정부 정책 실패 등이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우선으로 꼽은 것은 인사 실패와 여권 내부 갈등이다. 두 가지 모두 현재 박근혜정부가 겪고 있는 난맥상이다. 특히 최 원장은 “인사 실패는 눈에 보이는 사람의 문제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정책 실패 등의 문제보다 더 빠르고 파급력이 강하다. 즉 인사 실패는 정책 실패보다 더 무서운 여론의 반발을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안대희 총리 후보자 낙마부터 문창극 후보자까지, 총리 인선 과정에서 나오는 여러 잡음이 레임덕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총리 인선 과정에서 몇몇 인사가 총리 제안을 고사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이러한 공직 기피 현상 또한 레임덕의 전조 현상으로 분류된다. 집권 2년 차인 현 정부에서 벌써부터 레임덕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역대 정권을 보면, 집권 후반기로 접어드는 집권 3년 차부터 대개 레임덕 전조 현상이 나타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속화된 시점은 2010년 12월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내정 과정에서 여당 의원들이 집단 반발한 사건부터로 분석된다. 부동산 투기 등 각종 의혹에 시달렸던 정 후보자는 결국 청문회를 열기도 전인 내정 12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현재 문창극 총리 후보자 인선과 관련해 일부 여당 의원들이 반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현 정부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승규 국정원장 사퇴와 후임 인선 문제, 전효숙 헌법재판관 지명 철회 사태,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임명 강행이 레임덕을 가속화한 것으로 지적된다. 집권 3년 차이던 2005년 열린우리당 연석회의에서 “청와대가 당·정 분리 원칙을 지키지 않고 중요 사안을 독단적으로 결정한다”는 여당의 성토가 나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 레임덕의 시발은 임기 3년 차이던 2000년 12월 당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이 청와대 최고위원회의 도중 대통령 앞에서 권노갑 최고위원의 2선 퇴진을 주장한 사건이 꼽힌다. 여당의 차세대 주자가 대통령 측근 실세를 공격하는 ‘항명’ 역시 레임덕을 앞당기는 대표적 현상이다.  엄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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