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호·클로제의 반전
  • 김재태 | 편집위원 ()
  • 승인 2014.07.0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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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정신과 단단한 육체끼리 서로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그 무엇에도 비할 바 없이 강렬한 짜릿함을 자아냅니다. 비록 우리가 예선에서 탈락해 아쉬움이 크게 남지만, 국적을 떠나 이름값 높은 스타 선수들이 명성에 걸맞게 수준 높은 기량을 펼쳐보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월드컵이 있는 여름밤은 상쾌합니다. 손흥민·오스카 같은 새로운 스타가 떠오르는 현장을 지켜볼 수 있다는 기쁨 또한 각별합니다.

월드컵 대회에서 선수들 못지않게 경기장을 지배하는 주체는 감독입니다. 감독들이 경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 지략은 바로 용병술입니다. 어떤 선수를 내보내느냐에 따라 경기의 흐름이 확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대한민국 팀은 러시아와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이근호를 투입해 값진 골을 얻어냈고, 가나와의 경기에서 독일을 벼랑 끝에서 구한 선수도 후반전에 교체돼 들어간 백전노장 클로제였습니다. 결국 감독이 어떤 선수 조합을 만들어내느냐가 경기의 흐름을 상당 부분 좌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용병술의 힘은 축구장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조직에서나 똑같이 발현됩니다. 국가 조직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온 나라를 혼란스럽게 했던 문창극 총리 후보자 사태가 자진 사퇴로 일단락됐지만 여진은 만만치 않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고 했던 총리가 유임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데 그에 대한 반성은 간데없이 정부의 책임지는 행위마저 무화시켜버리는 현상이 빚어진 것입니다. 끊이지 않는 인사 난맥의 종착점이 어디일지 도무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을 지경입니다.

책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이 내놓았던 공약집을 다시 한 번 찬찬히 펼쳐봅니다. ‘세상을 바꾸는 약속, 책임 있는 변화’라는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국민통합’ ‘정치 쇄신’ ‘일자리와 경제민주화’ ‘중산층 재건’이라는 국정 운영 4대 지표도 큰 글자로 쓰여 있습니다. ‘총리 및 국무위원의 권한 및 정책 책임성이 미흡하여 제왕적 대통령제로 비판받은’ 것을 바로잡기 위해 ‘총리가 국무회의를 사실상 주재하고, 총리의 정책 조정 및 정책 주도 기능도 대폭 강화’하겠다는 공약도 눈에 띕니다. 이른바 책임총리제를 구현하겠다는 얘기입니다. 모두가 절실하고 금쪽같은 내용들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 약속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지 국민들은 알 길이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벌어진 일련의 사태 또한 그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습니다. 국민 대통합을 이루고 정책을 주도적으로 이끌 책임총리를 들어앉힐 의사가 진정으로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틈만 나면 스스로를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해왔습니다. 그동안 국민 대통합, 정치 쇄신 같은 약속을 지킬 시간이 없었다면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국민에게 신의를 지키는 모습입니다.

선수 한 명이 경기의 국면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는 것처럼 참신한 총리 한 명이 정국을 신선하게 바꿔놓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벼랑 끝에 놓인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교체 투입될 ‘신의 한 수’ 같은 선수가 필요합니다. 대통령이 말하는 ‘비정상’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정부 안에 있습니다. 그 비정상의 정상화는 거기서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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