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내 거야’라고 편 가르는 이들은 친노 아니다”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4.07.02 09: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선 성공해 차기 대권 주자로 부상한 안희정 충남도지사

“요즘 잠자리 코 고는 소리 빼고는 다 녹음하는 것 같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이 한마디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기자가 인터뷰에 앞서 녹음기를 꺼내들며 “인터뷰 내용을 녹음하겠다”고 하자 안 지사가 던진 농담이다. 그만큼 지금 안 지사는 분 단위로 일정을 소화하는 초강행군을 펼치고 있다. 6·4 지방선거 이후 쏟아지는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 7월1일 민선 6기 취임식과 함께 시작되는 2기 도정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스포트라이트 주인공은 안희정”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보수 성향이 강한 충남에서 그는 연거푸 청색 깃발(새정치민주연합)을 꽂았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42.3%의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자유선진당 등 두 보수 정당 후보가 난립하는 3자 구도 덕을 봤다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52.2%의 득표율로 새누리당 정진석 후보(44.0%)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이번 재선으로 그에게는 일약 ‘야권의 유력 차기 대권 주자’ ‘친노의 새로운 수장’이라는 두 개의 수식어가 붙었다. 6월26일 충남 홍성에 있는 신청사에서 안 지사를 만났다. 

ⓒ 시사저널 최준필
이번 선거 과정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았거나, 기억에 남는 일은 뭔가.

대한민국 주권자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하게 됐다. 국민은 과연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자기 견해를 밝히거나 판단을 하는 것일까라는 물음에 대해, ‘건전한 상식에 기반 해서 한다’는 답을 얻었다. 어느 시장에서 좌판에 물건들을 놓고 장사를 하시는 할머니 한 분에게 제가 물었다. ‘어머니, 저 4년 동안 도지사 한 사람인데, 아시겄어요?’ ‘몰러.’ ‘제가 바로 그 사람이에요.’ ‘아유, 젊네.’ ‘제가 이번에 한 번 더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질 낫은께 잘하겄네.’ 그 할머니의 말씀은 도지사를 이미 한 번 해봐서 익숙하고 경험도 있을 터이니 잘할 것이라는 덕담의 성격도 있지만, 그동안 특별히 불편하거나 잘못됐다고 느끼지 않고 무난하게 잘했으니까 한 번 더 일할 기회를 주는 게 좋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생각됐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유, 그 사람 못 쓰겄네’ 하지 않았겠는가. 이처럼 우리 주권자들은 정치인을 산 아래서 산등성이 보듯 하시는구나 하는 점을 느꼈다. 정치인은 산등성이처럼 굵게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실루엣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재선 성공으로 차기 대권 주자로 부쩍 자주 거론되고 있다. 안 지사 스스로도 대권 도전 가능성을 어느 정도 열어두는 듯한 인상이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다 국가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포부는 가질 수 있고, 또 그런 포부를 밝힐 수 있다. 다만 국가의 지도자와 대통령을 위해서 따로 해야 할 일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다. 국회의원 열심히 하고, 도지사 열심히 해서 성과나 업적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평가받는 것이다. 포부가 대통령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따로 어떤 행보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충청을 대표해서 낡은 20세기의 진보와 보수를 극복하는 좋은 정치인으로 성장해보겠다’ ‘도지사로서 경험과 실적을 쌓아서 한 번 성장해보겠다’ 하는 말은 이번에도 했고, 4년 전 선거에서도 했고, 또 그 훨씬 전에도 했다.

때마침 최장집 교수로부터 <군주론>을 선물받았다는 점을 밝혀 화제가 됐는데.

최 교수님은 오래된 사제지간이어서 책 선물을 한두 번 받은 게 아니다. 그리고 제가 평소 좋은 책을 페이스북에 소개한 것 역시 자주 있는 일이다.

이번 2기 도정에 새 정무부지사(허승욱)와 비서실장(권혁술)으로 임명된 인사가 모두 호남 출신인 점을 들어, 향후 대권을 위해 호남 교두보 마련용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던데. 

허 부지사는 지난 1기에 3농 혁신을 이끌어왔던, 중추적 역할을 하신 분이다. 또 권 비서실장도 충남에서 지역 시민사회 활동을 꽤 오래 하신 분이다. 그것 외에 다른 것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2기 도정은 2018년 6월까지가 임기인데, 그 직전인 2017년 12월의 대선 참여 가능성은 있는 것인가.

대선은 지금의 저한테는 먼 얘기다. 지금으로서는 막 시작하게 되는 2기 도정에 충실해야 하는 것 말고 솔직히 다른 것에  관심을 갖기가 좀 어렵다.

새정치연합 내에서도 안 지사의 정치적 비중이 거론된다. ‘친노’라는 계파 내에서 문재인 의원과의 양자 구도를 말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저는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김대중과 노무현을 잇는 장자가 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이 과거 이 정당에서 내게 공천을 주지 않아도 탈당하지 않은 이유다. 이 집이 바로 내 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직업 정치인으로서 안희정의 포부는 정당정치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당과 민주주의의 틀에 관심이 있다. 현재 제가 몸담고 있는 진보 진영 전체에 관심이 있다. 지금 정당정치는 왜곡되어 있고 불안정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어떻게 하든 안정화시켜보고자 하는 꿈이 있다. 진보 진영이 분열하고, 정당과 계파도 분열하는 이런 현상을 극복해서 정당정치의 틀을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에 관심이 있다. ‘친노’니 ‘동교동계’니 하는 작은 단위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정당정치에서 계파가 필요한 부분도 있지 않을까.

물론 있다. 하지만 그게 정책과 노선으로 가야 하는 것이지, 특정 사람 중심으로 가는 건 곤란하다. 물론 ‘노무현’이란 가치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동의하느냐 안 하느냐를 기준으로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언론에서 말하는 친노란 것은 노무현 가치에 동의하는가 안 하는가를 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다.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 중심으로만 되어 있다. 흔히 언론에서 말하는 친노라는 사람들 외에도, 새정치연합 내에는 노무현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본다. 그런데 ‘노무현은 내 거야. 너는 가져선 안 돼’라고 말하는 사람들만 친노로 묶는, 그런 해석으로 계파를 분리하는 것은 절대 옳지 않다. 여기에는 정치인들의 문제도 많다. 정치인들이 개인적 인연의 친소 관계에서 못 벗어나기 때문이다. 친소 관계 중심으로 그룹을 구분 짓게 되니까 문제가 생긴다. 지난 시절 참여정부를 비판했다 하더라도, 또 참여정부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지금 노무현 가치를 인정하면 다 친노가 되는 게 맞다. ‘넌 과거에 이랬으니까 절대 친노가 될 수 없어’ 이런 식의 편 가르기를 하는 정치인은 진정한 친노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밑에서 ‘좌희정 우광재’로 불렸던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는 지금도 자주 보는가. 같이 도지사를 했더라면 든든한 동지이자 좋은 경쟁자가 됐을 텐데.

저도 그 점이 늘 안타깝다. 이 전 지사와는 서로 전화로 안부를 묻거나 견해를 물으며 잘 교류하고 있다.

혹시 요즘도 따로 갖는 친노 그룹 모임이 있나.

없다. 다만 1년에 한 번 5월22일 저녁에 모여서 대통령 제사 지내는 비서들의 모임은 있다. 그것도 친노 그룹이라고 부르지는 않겠지(웃음).

ⓒ 시사저널 최준필
지난 1기 도정 때도 그랬지만 이번 2기 도정 역시 도의회는 새누리당이 장악하고 있다. 도정을 펼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겠나.

(웃음)도 닦는 소리인 줄 모르겠지만,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좋게 생각한다. 도의회가 다른 당 소속 의원이 다수인 것은, 그만큼 제가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조금은 조심시키려는 그런 뜻이 아니겠나. 좀 더 천천히, 그리고 폭넓게 지역에 천착하게 되고, 의원들과 더 많이 대화해서 도지사 역할을 더 열심히 하라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번에 새로 당선된 새누리당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은 새정치연합 측과 정책 연대를 꾀하는 등 새로운 도정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 도정을 경험해본 입장에서 안 지사는 이런 시도를 어떻게 보는가.

그러한 노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쉽지 않은 만큼 새로운 시도에 대해서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 가지 더한다면, 의회와 대화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도청의 결정이 의회의 결정보다 앞서나가선 안 된다. 의회에서 합의된 것만 간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다만 의회에서 꼭 합의를 이뤄야만 할 집행부의 과제들이 어떤 게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그런데 지방정부 차원에서 그렇게 중요한 독자적 결정을 해야 할 게 사실은 별로 없다. 지방정부 업무의 70~80%가 중앙정부 각 장관의 부령에 귀속된다. 이는 의회와 크게 부딪칠 일이 없다는 말과도 연결된다. 권한 자체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정부와 의회는 중앙정치 문화의 연장선이 되지 않게, 서로 대화하고 존중하는 지방정치의 문화 조성이 필요하다. 이를 공사에 비유한다면, 지방정부에서는 시행과 시공 과정에서 생기는 트러블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일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잘 사인을 주고받고 존중하고 협의하면 풀릴 수 있다고 본다.

평소 보수와 진보라는 낡은 틀을 깨뜨려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 한다. 다소 보수 친화적인 발언도 종종 하고. 일각에서는 안 지사가 의도적으로 ‘우클릭’ 전략을 쓰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이번 기회를 빌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결코 정치공학적 성격이 아니다. 제 진심이다. 핵심은 두 가지다. 20세기의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의 틀에서 벗어나 이를 버전업(version-up)시키자는 게 첫 번째다. 20세기의 진보는 민족 해방과 계급 착취라는 두 가지 개념에 사로잡혔다. 20세기의 보수 역시 오로지 반공 이념 하나로 갔다. 오늘날, 계급 착취와 제국주의 침략이 있나. 또 동서 냉전이 무너진 상태에서 자유시장경제와 사적 소유권을 부정하는 세력이 있나. 전혀 없는 현실을 놓고 서로 상대방의 그림자를 향해 싸우는 꼴이다. 이런 20세기 진보와 보수의 낡은 틀에서 좀 벗어나야 한다. 너무 소모적이지 않나. 두 번째는 행태와 문화를 바꾸자는 것이다. 마치 앞으로 서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원수 취급하지 말고, 대화를 해야 한다. 어떻게 서로 안 볼 수 있겠나. TV 앞에만 나오면 그렇게 싸우면서, 나중에 따로 만나면 또 서로 악수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주권자들은 ‘아, 정치는 쇼구나’ 하는 불신감만 쌓일 것이다. 우클릭이 아니라,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를 하자는 것이다. 이를 정치공학적으로 우클릭한다고 하면 솔직히 속이 좀 상한다.

7월1일 취임식과 함께 2기 도정이 시작된다. 2기 도정에서 역점을 둘 사업은 무엇인가.

2기 도정에서도 지난 1기 도정 때 역점적으로 추진했던 ‘3농 혁신’ ‘행정 혁신’ ‘자치 분권’의 3대 혁신 과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일정 부분 성과를 내고 결실을 맺도록 할 계획이다. 또 지난 1기 도정 때 계획됐던 일곱 가지 종합발전계획을 계속 펼쳐나갈 것이다. 그 일곱 가지란 충남 종합 계획, 충남도청 신도시 개발 계획, 내포신도시권·공주역세권 광역 도시 계획, 세종시 주변 발전 전략, 서해안 비전, 금강 비전, 충남 도서 발전 계획 등이다.

 

▶ 대학생 기사공모전, 제3회 대학언론상에 도전하세요. 여러분에게 등록금을 드립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