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3개 나라로 쪼개지나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7.02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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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단체 ISIL 공세 속 ‘시아파-수니파-쿠르드족’ 3분할론 대두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의 역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단체 전사들은 시리아를 넘어 접경인 이라크 안바르 지역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다. 이 문제를 잘 다루지 못하면 중동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 올해 초, 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 미국대사가 말해준 힌트는 불행히도 현실이 되어버렸다. ISIL은 이라크를 다시 심연으로 가라앉히고 있다. 이라크 두 번째 도시 모술이 무장 조직 ISIL의 공세에 어이없이 함락되는 모습은 세계에 충격을 줬다. ISIL의 구호는 ‘지속적으로 확대하자(baqiya wa tatamadad)’인데, 그들은 이라크에서 불사조처럼 되살아나 뻗어나가고 있다. 액면으로는 ISIL이 승자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인 승자는 이라크 북부 안전한 곳에서 사태를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쿠르드족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분할 통치하면 좋다고 한다. 지금 이라크에 필요한 것은 옛날 베를린에서 벌어진 일이다. 쿠르드족·수니파·시아파 사이에 벽을 만드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한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 지역 아르빌의 한 여성의류 판매점 주인은 이렇게 잘라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지금의 소동에 해결책 따위는 없다. 이 나라는 이미 기분상으로는 조각났으니까.”

ⓒ 일러스트 정찬동
수니파-시아파 대립 속 독립 꿈꾸는 쿠르드

말리키 총리가 이끄는 시아파 주도의 이라크 정부는 이라크 영토의 넓은 범위를 빠르게 잠식해간 ISIL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쿠르드족의 영토에 대한 야심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은 갖고 있지 않다. 이라크·터키·이란 등에서 소수 민족으로 살며 독립국가 건설 노력을 포기하지 않던 쿠르드족에 지금은 자기의 영토를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쿠르드민주당(KDP) 아르빌 지부의 알리 후세인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우리가 (독립에 대한) 합의를 얻어낼 수 없는 경우, 각 세력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의 말대로 쿠르드족이 독립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치권 확대, 이라크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 증가 등 다른 이익을 얻어낼 수도 있다.

일단은 독립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마수드 바르자니 쿠르드 자치정부 대통령은 “이라크가 분열되고 있어 중앙정부가 통제권을 잃었다.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은 당황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이 6월24일 쿠르드 자치정부의 수도인 아르빌을 예고 없이 방문해 바르자니 대통령 달래기에 들어간 이유도 미국의 구상에서 쿠르드족의 독립은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이라크 신정부 수립을 이라크의 정치적인 토대를 재정립하는 기회로 활용하려면 쿠르드족의 참여가 결정적”이라는 게 미국 국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라크 정부는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다수인 시아파와 소수인 수니파 그리고 약 500만명인 쿠르드족 등 세 그룹의 분열을 억눌러 충돌을 막으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 방식은 서로에게 폭력적이었다. 쿠르드족이 자치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정부의 허가 없이 수출하면 이라크 정부는 자치정부 예산을 삭감하거나 급여 지불을 정지하는 식이었다. 실제로 쿠르드 자치정부의 경제는 올해 이와 같은 제재를 받고 휘청댔다.

쿠르드 자치정부와 이라크 정부는 일부 영토의 귀속을 둘러싸고도 여전히 다투는 중이다. 특히 키르쿠크는 이라크군이 무너지면서 쿠르드 자치정부가 충돌 없이 손에 넣었다. 키르쿠크는 다양한 소수 민족이 혼재해 거주하는 곳이다. 이전까지 이라크 정부의 북부 거점이었던 이곳을 지금은 쿠르드 자치정부 군대인 페쉬메르가가 장악했고, ISIL의 침입을 막고 있다. 그 덕에 지금 모술을 탈출한 수만 명의 피난민은 바그다드 대신 쿠르드 자치구로 들어왔다.

사카이 게이코 일본 지바 대학 국제정치학 교수는 “키르쿠크가 페쉬메르가의 보호를 받게 된 것은 이라크의 근현대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키르쿠크는 이라크 북부 유전 지대에 인접한 전략지로 경제적 가치가 크다. 게다가 수니파·시아파·쿠르드족·투르크족 외에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이다. 이라크 국토와 달리 특정 종파와 민족을 경계로 분리할 수 없는 도시가 키르쿠크다. 이라크의 ‘예루살렘’과 같은 곳인데 이곳을 쿠르드 자치정부가 장악했다는 것은 앞으로 실효 지배 영역을 확대하고 사실상 독립을 지향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쿠르드 자치구의회는 이라크 정부와 협상을 벌이며 “우리는 장기적으로 페쉬메르가가 키르쿠크에 주둔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할 것이다”고 천명한 상태다.

말리키 정부, 집권 위해 종파 갈등 부추겨

일부 쿠르드 정당은 자치권 확대에 대한 대가로 바그다드가 ISIL과 싸우는 것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전선에 있는 페쉬메르가는 이라크 정부를 도울 생각이 전혀 없다. 물론 ISIL은 이라크 정부만큼 쿠르드 자치정부에도 선을 그어야 할 대상이다. ISIL은 시리아 동부의 유전을 자신들의 지배 아래 두려고 하는데 쿠르드 유전시설 역시 ISIL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ISIL과 이라크 정부 양쪽 모두와 대치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주요 전투는 ISIL과 이라크 정부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북동쪽의 디아라 주와 이라크 최대 석유 정제시설이 있는 바이지는 양쪽 모두가 양보할 수 없는 곳이다. ISIL은 전신인 ‘알카에다-이라크(AQI)’ 시절의 지도자인 알 자르카위의 구상대로 수도 바그다드를 둥글게 둘러싸는 형태로 포위망을 형성하려 하고 있다.

ISIL에 이미 점령당한 이라크 제2 도시 모술의 모습은 전쟁 이후 재건 이라크가 통합을 향해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시아파 정부가 파견한 이라크 정부군이 떠나고 지하드를 외치는 수니파 ISIL이 점령한 모술은 오히려 이전보다 차분할뿐더러 주민들이 군의 축출을 반기고 무장 세력의 통치에 만족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ISIL이 무장 집단을 넘어 반정부 세력으로 등장한 배경에는 이라크 국내 정치에 드리워진 종파 갈등이 있다. 2010년 이후 말리키 정부는 수니파를 중앙정부에서 제거하고 권력을 시아파에 몰아줬다. 가장 큰 수혜자는 말리키 총리 자신이었다. 스스로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며 권위주의적인 정치를 해왔다. 국방장관과 내무장관을 공석으로 둔 채 부처를 장악했고, 수니파 최고위 인사인 타레크 알 하셰미 부통령에 대해서는 암살단 조직 혐의로 체포 명령을 내렸다. 말리키 정부는 시아파와 수니파 종파 갈등에 박차를 가한 주인공이었는데, 토비 닷지 런던정경대 교수는 “그의 종파주의적 행위는 수니파의 고립을 가져왔고, 이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며 ‘말리키 책임론’을 주장했다.

말리키의 만행에 항거하듯 모술을 포함한 이라크 북부 도시들에서 일어난 무장 세력 봉기에는 ISIL 외에 80여 개에 달하는 수니파 부족 단체로 구성된 ‘이라크 부족 군사평의회’ 등 안티 말리키 세력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시아파 정부에 대항해 수니파 세력이 대동단결한 모양새다. 특히 광범위한 수니파 저항 세력 연합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구(舊)바트당(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의 집권 여당) 중진 출신이자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이자토 알두리 이브라힘 전 이라크혁명평의회 부의장이 구심점 역할을 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이라크 혼란은 ISIL의 부상 그 이상으로 바트당 세력의 부활 드라마이며, 전 정부와 현 정부의 대결 양상을 띠고 있다.

반(反)말리키 세력이 이라크의 넓은 지역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말리키 총리는 스스로 바그다드에서 북동쪽으로 125㎞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사마라에 갔다. 그곳에는 시아파 성지의 하나인 아스카리 모스크가 있다. 6월13일 금요일 이곳에서 열린 예배에서 그는 이라크 국민들에게 “ISIL에 저항해달라”고 호소했다.

무장한 시아파 지원병 행진 이어져

예배 장소도 그랬고 호소 내용도 그랬다. 다양한 종파와 민족으로 구성된 이라크 국민을 하나로 묶을 책임이 있는 그는 시아파의 종파성만을 강하게 내세웠다. 시아파 이외의 사람들이 이날의 예배를 냉소적으로 바라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아파 최고 지도자인 그랜드 아야톨라 알리 알 시스타니는 말리키의 부름에 답했다. 그는 “이라크 국민은 무기를 들고 ISIL에 저항하라”고 말했다. 이미 시아파 최고 지도자의 부름에 응해 바그다드에는 수천 명의 시아파 지원병이 쇄도하고 있고, 무장한 시아파 지원병 행진이 이어지는 등 시아파의 사기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시스타니의 변화는 이라크의 분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폴 로저스 브래포드 대학 교수는 “이라크 전쟁이 끝난 직후 종파 갈등이 심해졌을 때 시스타니는 이라크 국민에게 인내와 고요함을 요구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이번 호소는 극적인 변화”라고 지적했다. 수니파 극단주의자에 대한 시아파의 저항. 시스타니가 보여준 이라크의 현실은 이처럼 종파 갈등으로 굳어져간다. 여기에 이 둘 모두를 거부하며 독립을 추진하는 쿠르드족까지 갈등의 3주체가 굳건하다. 국제 문제 해결사로 불리던 리처드 홀브룩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이라크를 남부의 시아파, 중부의 수니파, 북부의 쿠르드족 국가로 분할하는 ‘이라크 3분할론’을 주장한 적이 있지만 이내 폐기됐다. 폐기된 3분할론이 지금 다시 부활하고 있다. 다만 과거에는 이라크 밖에서, 지금은 이라크 안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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