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7인회’, 박근혜에 등 돌리나
  • 서상현│매일신문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07.1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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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렬·김용갑 등 청와대 비판… 권력 관리에 균열 조짐

박근혜정부 탄생을 이끌었던 원로 그룹이 발끈하고 나섰다. 인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숨은 손’으로 회자되던 원로 그룹은 애써 침묵을 지켰지만, 이번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사퇴 과정에서만큼은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에 영향을 준다는 원로 자문그룹 ‘7인회’가 세간의 화제가 됐다.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김용갑 전 한나라당 의원,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강창희 전 국회의장,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문창극 총리 후보자 추천 배후로 지목된 것이다. 

“서울고 출신이면 다 추천하느냐. 나는 (정치에) 완전히 손을 뗐다. (7인회가) 신문에 오르내리며 범죄 집단처럼 얘기되는데 (우리는) 그런 사람들 아니다. 박 대통령 성격으로 볼 때 누구의 자문이나 추천을 받을 사람이 아니다. 추천한 일이 없다. 우리가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안병훈)

 “어떻게 그런 분이 후보가 됐는지 모르겠다. 누가 그 사람을 믿고 일을 추진하겠느냐. 국가 개조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정치를 쉽게 하면 좋을 텐데 왜 이렇게 어렵게 하는지 아쉽다.”(김용갑)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 김용갑 전 한나라당 의원 ⓒ 시사저널 이종현·시사저널 사진자료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 시사저널 이종현·연합뉴스
“원로들, 박 대통령에 서운한 감정 쌓인 듯”

서울고 동문이어서 문 후보자 추천 인물로 지목된 안 전 부사장은 자신은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김 전 의원은 7인회 작품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꼬리말에 날이 서 있다. 오랜 기간 이들과 알고 지내온 친박계 한 중진 의원은 이런 말을 들려줬다.

“언론을 통해 이 정도 수위의 말을 할 정도면 화가 많이 쌓였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가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나, ‘정치를 왜 어렵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 부분은 성격이 좀 다르다. 앞으로 기대하지 않겠다거나 어떤 포기의 심정이 묻어 있고, 실망감이 서려 있는 것 같다. 완전히 등 돌릴 것 같지는 않지만, 박 대통령에게 서운한 감정이 많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토로한 것이다. 화가 많이 쌓인 것 같다. 서로 소통을 자주 했다면 언론에 얘기할 필요가 있었겠나. 통화하거나 만나서 이야기하면 그걸로 끝인데 그게 안 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다들 성격상 이런 이야기를 밖으로 하실 분들이 전혀 아니다.”

문창극 후보자가 지명된 직후 여의도 정가는 7인회를 주목했다. 청와대 쪽과 자주 교감하는 여권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문창극 후보자 추천은 7인회 작품이 진짜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박 대통령과 가까운 정윤회씨, 청와대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 박 대통령의 동생인 지만씨 중에 천거한 사람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고 있다. 7인회는 어떻게 보면 보수 진영의 상징이고, 살아 있는 역사다. 하지만 (문 후보자의) 역사관 문제는 보수 전체의 문제로 번질 소지가 컸다. 어떻게든 이런 오해를 바로잡고 싶었을 것이다. 이념의 문제는 이성의 영역이지만, 문 후보자의 친일·위안부 등의 강연 내용과 ‘책임총리가 뭔가’ ‘사과는 무슨’ 이런 말들이 국민 감정을 자극해버렸다. 그래서 7인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라 해석된다. 덧붙인 말들은 박 대통령에게 직접 해주고 싶은 이야기였던 것 같다.”

6월 초 최병렬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을 두고 “무서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지? 대체 이해할 수 없다. (임기 중 아무것도 못하고 끝날까 걱정된다는 말에 공감하며) 내 생각도 그렇다. 우리 친구들을 만나도 큰일 났다는 말만 한다. 지금 박 대통령은 (참모가 직언하는) 그런 말을 할 분위기를 만들어주지 않는 것 같다. (7인회와 거리를 두는 것은) 잘은 모르지만 뭔가 좀 이상하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같이 밥 먹고 편안하게 조크도 하면서 잘 지냈지만 청와대 들어가면서 달라졌다. 무서운 분이다.”

7인회 멤버 중 현 정권에서 역할을 맡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이나 현경대 수석부의장, 강창희 전 국회의장을 빼고 모두가 박 대통령과의 소원함을 토로한 셈이다. 김용환 새누리당 고문도 박 대통령에 대해 직접 날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6·4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사실상 여당이 패배한 선거다. 반성해야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박 대통령이 원로를 대접하지 않아 불만이 터졌고, 원로 그룹이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려 여권의 분열을 가속화할 것이란 진단을 한다. 정치권 사정을 잘 아는 부처 관계자는 최근 청와대 쪽 인사와 만나 대화한 내용을 들려줬다.

“7인회는 박 치마폭 싸인 친박계와 달라”

“박 대통령 당선까지는 7인회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취임 이후에는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한마디로 찬밥 신세다. 인사와 관련해서는 씨알도 안 먹힌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이 돌아섰는데 갑자기 문창극 천거의 주범으로 몰렸으니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더구나 인사 문제에서만큼은 대통령 측근과 주변부에 밀려 있으니 꼴이 말이 아니게 돼버렸다. 최 전 대표의 언론 인터뷰에는 실망감을 넘어 어떤 분노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런데 이와는 다른 분위기의 말을 하는 인사도 있다. 지난 대선 때 캠프에서 전략기획 쪽 일을 맡았던 여권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7인회는 박 대통령에게 남은 마지막 ‘순장조’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박근혜의 지금을 만들어온 분들이고, 박 대통령도 아버지에게 우호적이었던 원로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더 이상의 정치적 야심이 없는 7인회는 박근혜 치마폭에서 살코기만 빼먹는 친박계 정치인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직언을 할 수 있는 분들이고, 그걸 박 대통령도 이해하고 있다.”

현 정부의 인사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연이은 인사 난맥상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지적이 비등했지만 박 대통령은 미동도 않는다. 그래서 이번 안대희·문창극 총리 후보자 천거는 7인회 등 원로의 작품이 아니라는 점을 박 대통령이 입을 열지 않은 채 증명하고 있는 것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7인회 멤버 가운데 한 명과 친분이 두터운 정치권 인사는 “7인회는 언론에서 만든 이름이다. 언론에서 다소 과하게 (파워를) 키워준 감이 있다. 이들의 영향력이나 파워에 대해선 어떤 실체도 드러난 바 없다. 대부분이 추측일 뿐”이라고 밝혔다.

집권 중반기에 접어들면서 지지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박 대통령에게 원로 그룹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특히 박 대통령에게 무한한 성원과 지지를 보냈던 7인회의 존재는 실제 역할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상징적인 효과가 크다. 그 7인회 내부에서 박 대통령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등 균열 조짐이 일고 있는 것은 권력 관리에 구멍이 뚫렸음을 알려주는 징표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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