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들, 불법 '바로뽕 주사' 맞는다
  • 노진섭 기자·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7.16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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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 시술로 경기력 강화 기대…세계반도핑기구에서는 '도핑' 판정

수도권 프로야구단의 베테랑 선수 B씨는 최근 충격적인 얘기를 꺼냈다. “내가 직접 맞은 건 아니지만”이란 전제를 달고서 한 얘기의 내용은 이렇다.

“금지 약물 복용은 데미지가 크다. 자칫 걸렸다간 야구계에서 추방될 수 있다. 솔직히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선지 요즘 선수들 사이에선 ‘바로뽕 주사’가 유행하고 있다. 이 주사를 맞으면 아팠던 곳이 바로 아물고, 뼈와 근육이 단단해진다는 소문이 설득력 있게 퍼져 있다. 올 시즌이 끝나면 나도 무릎에 ‘바로뽕 주사’를 맞을 예정이다.”

줄기세포 주사, 진화한 스테로이드제인가

몇몇 선수 사이에서 ‘바로뽕 주사’로 불리는 이 주사는 바로 ‘줄기세포 주사’를 말한다. C구단 트레이너는 “세 방이면 끝”이라는 말로 줄기세포 주사의 효과를 평가했다. “처음엔 나도 긴가민가했다. 하지만 한 병원에서 줄기세포 주사를 맞은 골프 선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무릎이 좋지 않아 오랜 기간 고생했는데줄기세포 주사를 세 번 맞고 몰라보게 좋아졌다. 세계적인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와 미식축구 선수 하인즈 워드도 줄기세포 주사를 맞고 효과를 봤는데, 입원과 오랜 재활 기간이 필요 없다는 점에서 줄기세포 주사가 선수 재활 치료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트레이너는 “줄기세포 주사 비용이 만만치 않고, 국내 의료법상 불법이라는 말이 있어 우리 팀 선수들에게 선뜻 ‘한번 맞아보라’는 이야기를 못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부상을 당하거나 근력이 떨어졌을 때 약물 사용 유혹에 빠진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 연합뉴스

그렇다면 과연 줄기세포 주사 비용은 얼마나 될까. 부산의 한 병원에서 줄기세포 주사와 관련해 상담을 받았던 대학 야구선수 A씨는 “병원에서 ‘한 번 시술에 1000만원’이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이었다. 한 지방 병원 의사는 “이쪽 계통에서 유명한 의사들 사이에선 ‘1회 시술 비용 1000만원’이 정가로 통하고 있다. 운동선수의 경우 무릎 시술 시 보통 3~4회 주사를 맞는다”며 “4회 정도 맞으면 할인을 해줘서 3000만원가량의 시술비가 든다”고 말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운동선수에게도 1000만원은 적지 않은 액수다. 그럼에도 많은 선수가 줄기세포 주사에 관심을 보이는 건 수술로도 고치지 못하는 부상을 완치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프로야구에선 줄기세포 주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무릎·어깨·팔꿈치·허리·척추 부상에 시달리는 베테랑 선수들이 줄기세포 주사 애용자들로, 이 선수들은 대부분 시술 후에 “부상 부위가 호전됐다”, “젊고 강한 새로운 연골이 자랐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게다가 일본은 한국과 달리 줄기세포 주사가 불법 논란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선수들의 부담도 덜한 편이다.

문제는 줄기세포 주사의 성격이다. 일본에선 줄기세포 주사를 치료 목적으로 보는 쪽과 새로운 금지 약물로 평가하는 쪽으로 양분돼 있다. 6월 중순 일본 프로야구를 취재하면서 만난 퍼시픽리그 D구단 스카우트는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의 기본 명제는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시험하고, 그 한계를 인간의 힘으로 극복하는 것”이라며 “나이가 들어 부상을 당하고, 육체적 능력이 떨어지는 건 운동선수에겐 숙명이자 스포츠의 원초적 시스템”이라며 “자연스럽게 떨어진 인간의 신체 능력과 근력 및 골격을 외부 물질의 도움을 받아 다시 회복한다는 점에서 줄기세포 주사 역시 스테로이드처럼 스포츠 정신에 반하는 금지 약물”이라고 주장했다.

아직 한국 야구계에서는 줄기세포 주사와 관련해 어떤 조사와 연구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많은 선수가 오프시즌 기간 중 ‘바로뽕 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을 수소문하고 있다. 줄기세포 주사를 맞았다고 해서 당장은 그 선수를 제재할 법적 근거는 없다. 그러나 세계반도핑기구가 이를 도핑으로 보고 있는 만큼 앞으로 줄기세포 주사는 스포츠계에 새로운 이슈가 될 전망이다.

“줄기세포 도핑 향후 이슈화될 것”

격렬한 운동으로 연골 손상이 많은 운동선수에게 줄기세포 주사는 유혹적이다. 관절 연골은 외부 충격에 약하고 한번 손상되면 자연 치유가 어려워 인공 관절로 바꾸는 수술이 일반적인 치료법이지만 격렬한 운동을 그만둬야 한다. 치료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운동선수에게 줄기세포 주사는 도핑(doping)에 해당한다.

도핑은 ‘선수가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금지약물을 복용하거나 금지된 방법을 사용하는 일’을 말한다.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최근 금지 약물·행동 규정에 ‘정상 세포 또는 유전자 변형 세포를 몸에 주입하는 행위’를 포함시켰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 관계자는 “줄기세포를 포함한 모든 세포의 외부 투여는 선수의 경기력 향상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평균 도핑 적발률은 2% 정도다. 검사 기술이 발달해 이전보다 도핑 시도가 줄어들었다. 혈액 1mL 속에 있는 1피코그램(pg=1조분의 1g)의 약물도 잡아낸다. 과거에 주로 사용하던 흥분제나 남성 호르몬제는 도핑 검사를 피해갈 수 없다. 하지만 검사하기 어려운 신종 도핑 방법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예를들어 운동선수가 경기 전에 수혈하면 체내 헤모글로빈 농도가 높아져 산소 운반 능력이 향상된다. 세계반도핑기구는 비정상적으로 헤모글로빈 농도가 높으면 도핑으로 인정하고 선수를 경기에서 추방한다.

하철원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과거에도 자신의 혈액을 빼놓았다가 경기 전에 수혈하는 것이 도핑으로 분류된 적이 있다”며 “줄기세포 주입도 외부에서 물질을 주입하는 것이므로 도핑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유전자 도핑’이 나왔다. 선수가 근력 증강을 위해 단백질을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이식받는 것이다. 환자 치료용으로 개발된 줄기세포 치료제가 여기에 해당한다. 상업적인 줄기세포 은행인 크라이오제네시스의 폴 그리피스 국장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줄기세포는 신체의 속력·유연성·근력 등을 증가시킨다”며 “줄기세포 관련 기술이 슈퍼 운동선수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반도핑기구는 최근 선수 생체 여권 제도를 도입했다. 외국에 다녀올 때마다 입출국 사실을 기록하는 여권처럼 선수의 생체지표를 추적하는 제도다. 혈액의 적혈구·백혈구 숫자와 헤모글로빈 농도 등을 기록해두면 도핑으로 이례적인 변화가 생겼을 때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줄기세포 주사와 관련한 구체적인 규정, 도핑 검사 방법, 제재 수위는 정해진 바 없다. 권오승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도핑콘트롤센터장은 “줄기세포는 화학약품과 달리 우리 몸의 일부라서 특별한 검사 방법이 필요해 세계반도핑기구가 검사 방법을 개발 중”이라며 “앞으로 운동선수의 줄기세포 주사는 스포츠계에 이슈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병원 수술실에서 디스크 줄기세포 치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불법 시술 논란에 휘말릴 수도

도핑 검사에 걸리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선수가 불법 시술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연골 재생 줄기세포 치료제는 한 가지(카티스템)뿐이다. 거스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 국내에서 맞은 약이다. 이 치료는 줄기세포를 특정 연골 부위에 넣어야 하기 때문에 수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부 병·의원에서는 수술 없이 주사로 줄기세포를 투여한다며 환자를 유혹하고 있다. 또 시중에 나온 다른 치료제는 아직 시험 단계를 마치지 않아 효용성이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 이는 식약처의 허가를 받지 않은 치료제나 치료법으로 연구 목적으로만 허용된 상태다. 하철원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외국에서 인정한 줄기세포 치료제는 국내에서 연구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고, 이런 경우 환자에게 연구 목적이라는 걸 알리고 효과와 부작용 등을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서까지 받아야 한다”며 “한마디로 주사로줄기세포를 투여한다는 것은 엉터리라고 보면된다”고 설명했다.

환자는 줄기세포 치료비용으로 1000만원에 육박하는 돈을 지불하지만, 사실 연구 목적의 줄기세포 치료는 환자에게 돈을 받을 수 없다. 일부 병원은 줄기세포 치료비를 받지 않는 대신 불필요한 검사 비용을 부풀려 환자에게 돈을 받는 편법을 쓴다. 한 정형외과 의사는 “식약처 허가를 받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를 행하는 병·의원은 국민을 상대로 동물 실험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건강보험심사 평가원이 그런 병원을 조사한 후 벌금 7억원을 매겼더니 그 원장이 벌금을 낼 테니 영업을 방해하지 말고 빨리 가라고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일부 줄기세포 치료제에는 줄기세포가 극미량(0.01~0.001%)만 들어 있어서 효과가 의심되기도 한다. 또 척수·엉덩이·복부에서 뽑은 줄기세포를 체외에서 배양한 후 환자에게 주입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이동훈 세브란스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줄기세포 치료제는 유효성과 안전성을 모두 만족해야 하는데, 특히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를 하는 병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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