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도 구럭도 다 잃고 빈손이다
  • 이유주현│한겨레신문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07.1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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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안철수의 사람들…“이렇게 휘둘린다면 다 떠날 것”

7·30 재보선 후보 등록을 하루 앞둔 7월9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에서 안철수 공동대표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와 인연이 있는 후보가 (공천) 받으면 자기 사람 챙기기라고 하고, 저와 인연이 있는 후보가 최적·최강의 후보인데 (공천을 못 받으면) 자기 사람도 못 챙긴다고 한다. 그런 잣대로라면 하느님도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2012년 대선 때부터 안 대표를 도왔던 한 측근은 “2년 동안 안철수 대표로부터 들었던 말 중 가장 ‘감정적인’ 말”이라고 평했다. 그는 “좀 ‘오버’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론 ‘안철수가 이젠 좀 변하려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자기 사람 하나 못 챙기고 비난은 다 받아

안 대표가 이날 ‘하느님’까지 운운하며 작심하고 나선 것은, 전날 최고위원회에서 자신의 핵심 측근인 금태섭 전 대변인의 수원 영통 공천이 불발됐기 때문이다. 8일 오전부터 열린 새정치연합 최고위원회는 자정을 넘겨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당 지도부가 “수원 영통에 후보들을 놓고 여론조사를 돌려보니 금 대변인이 가장 경쟁력 있다”는 근거 자료를 꺼내들자 일부 최고위원들은 “도대체 여론조사를 믿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한 최고위원은 “지난 3일 광주 광산 을에 공천을 신청했던 기동민 후보를 ‘박원순 마케팅이 가능하다’며 서울 동작 을로 돌릴 때만 해도 ‘오죽하면 안 대표가 자신의 측근(금태섭)까지 희생해가면서 최적·최강의 후보를 찾으려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동작 을에 공천을 신청했던 금 대변인을 갑자기 수원으로 보낸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6월18일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 회의장에 안철수 공동대표가 들어서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이날 ‘금태섭 수원 공천’에 대한 반발이 만만찮다는 소식이 퍼져나가자, 금 전 대변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미 한 지역에 출마선언을 했던 마당에 다른 지역에 출마할 순 없습니다. 혹여나 제가 당에 부담이 되는 것은 추호도 원하는 바가 아닙니다”라는 글을 올려 수원 불출마 뜻을 밝혔다. 최고위원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공천 퍼즐 짜 맞추기’를 계속했다. 결국 9일 저녁에야 당 지도부는 수원 영통에 박광온 대변인을 공천했다.

이번 7·30 재보선 공천에서 안철수 공동대표는 게도 구럭도 다 잃었다. 안 대표는 당내 반발을 돌파하지 못하고 금 전 대변인을 수원 영통에 투입하는 데 실패했다. 민주노총 대변인 출신으로 안 대표의 수석보좌관이었던 이수봉 후보도 경기 김포에 공천 신청을 했으나, 불리한 여론조사 경선으로 룰이 정해지는 바람에 자진 사퇴했다. 이에 앞서 김효석·이계안 최고위원 및 이태규 사무부총장, 정기남 정책위부의장 등도 출마를 포기한 바 있다. 결국 안 대표는 ‘자기 사람’은 아무도 건지지 못한 셈이다. 그럼에도 비난의 화살은 모두 안 대표에게 쏟아졌다.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김한길 대표의 교묘함과 안 대표의 무능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공천 파행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금태섭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 ⓒ 연합뉴스
“안철수 대표는 정무적 감각이 부족하다” 

안 대표가 이처럼 실리도 명분도 얻지 못한 것은 당내 역학관계와 구조적 원인, 본인의 취약한 리더십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세력 대 세력의 통합’ ‘50 대 50의 통합’을 내세우며 안 대표 쪽과 옛 민주당이 합쳤으나 이는 허울뿐이었다. 당직을 50 대 50으로 나누려고 해도 실제 안 대표 쪽엔 사람 수 자체가 적다. 안 대표 쪽 사람들 중 주요 당직자는 송호창 전략기획위원장, 이태규 사무부총장, 박인복 홍보위원장, 김연아 인터넷소통위원장 등 몇 되지 않는다. 최고위원회도 안 대표 쪽과 민주당 쪽 절반씩으로 구성돼 있으나, 안 대표 쪽 최고위원들은 당무 자체에 대한 정보와 인식이 부족하고 결집력도 약하다. 결국 기존 정당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안 대표는 ‘창당 파트너’인 김 대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새정치연합 전신인 민주당은 본래 계파 구조가  복잡하고 강고한 곳이다. 김한길 공동대표는 조직과 세로 보면 ‘비주류’에 속하기 때문에, 늘 친노·486 등 주류에 되치기당하지 않을까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안 대표가 접촉면을 넓히며 자기 공간을 확보할 여지가 많지 않은 셈이다.

안철수 공동대표 쪽 사람들은 그가 의견을 듣고 전략을 짤 만한 ‘정무 조직’을 따로 꾸리지 않은 게 패착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한 측근은 “안 대표는 당 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정무적 감각이 부족하다. 만약 금 대변인을 꼭 전략공천하고 싶었다면, 다른 전략공천 후보들과 한데 묶어서 발표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반발이 덜했을 것이다. 원래 자기 사람 챙기는 것은 욕먹기 마련이다. 욕을 덜 먹으면서도 자기 사람 챙기는 게 정치력이다. 그런 걸 의논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측근은 “안 대표 개인의 아이디어가 없다면 그걸 만들 아이디어 그룹이 있어야 하고, 그를 관철시킬 집행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계속 이렇게 옛 민주당 사람들에게 휘둘린다면 ‘안철수 사람들’은 다 떠나간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 공천 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2007년 대선 경선에서 자신을 도왔던 친박계 정치인들이 대거 낙천되자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는 ‘명언’을 남겼다. 이후 그는 한나라당 후보들을 위한 선거운동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낙천에 반발해 탈당한 친박계를 향해 “살아 돌아오라”는 해당(害黨) 발언을 했다.

그때의 박 대통령과 지금의 안 대표는 처지가 매우 다르다. 6년 전 박 대통령에겐 결속력 강한 수십 명의 친박계 의원들이 있었다. 또한 자신에게 무조건적으로 신뢰를 보내는 ‘콘크리트 지지층’ 30%가 있었다. 그에 비하면 안 대표는 느슨한 무당파 또는 야권 지지자들과 소수의 조력자들뿐이다. “살아 돌아오라”고 말할 사람도 없다.

이번 7·30 재보선 공천 이후 당내 의원들의 카톡방엔 당 지도부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른다고 한다. 일각에선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재보선 이후 조기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안철수 사람들’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말한다. 이들은 조만간 모여 앞으로 ‘안철수와 그의 사람들’이 갈 방향에 대해 의논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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