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문화 색깔, 뉴라이트로 도배하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07.1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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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주요 단체장 장악…‘역사관 편향’ 논란 제기

박근혜정부의 인사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가 개조’를 내걸고 진행된 최근 개각에서도 자질 논란이 거세게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자주 거론되는 단어가 ‘뉴라이트’다. 현 정부 고위 공직 주요 후보자들의 근현대사 인식이 뉴라이트의 논리와 유사하다는 점이 야당 및 시민사회 등의 반발을 낳고 있다.

뉴라이트는 2000년대 중반 ‘새로운 보수’를 표방하며 등장한 정치·사회적 운동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전면 옹호를 핵심 이념으로 한다. 근대화·산업화 업적을 중시하는 뉴라이트의 이념 성향은 한국 근현대사의 재평가 작업으로 이어졌다. 일제의 식민 지배가 조국 근대화의 초석이 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조명 등이다. 뉴라이트 성향의 단체 ‘교과서포럼’은 이를 역사교과서 개정 운동으로까지 이어갔다.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자가 7월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뉴라이트 세력의 정치적 전성기는 이명박(MB) 정부 때였다. 중도실용주의 노선을 내세운 정권 창출에 견인차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성향의 시민단체에 소속된 인사들이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과 정부를 통해 대거 정치권에 진입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종료되면서 뉴라이트 세력의 정치적 위상도 추락했다. 한때 뉴라이트를 표방했던 단체들도 대부분 명칭을 변경하는 등 뉴라이트 운동의 정치적 생명력은 사실상 끝났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3대 역사 기관’ 수장 뉴라이트가 장악

하지만 뉴라이트가 표방했던 이념 기조, 역사관 등은 오히려 보수 전반으로 확대되며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박근혜정부의 인사에서도 단적으로 확인된다. 현 정부 들어 ‘뉴라이트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주요 인사를 분석해보면, 특히 교육·문화계의 주요 직위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뉴라이트라고 대놓고 표방하지 않더라도, 속내로는 뉴라이트의 가치를 공유하는 인사들이 조용히 약진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뉴라이트 식 역사관을 지지하는 한국현대사학회 소속 인사들이 중심이 돼 집필한 교학사 역사교과서의 검정 통과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런데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 정부는 뉴라이트 인사로 분류되는 유영익 한동대 석좌교수를 국사편찬위원장에 임명했다. 유 위원장은 과거 교과서포럼이 펴낸 ‘대안교과서’를 두고 “대한민국의 국격에 걸맞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준하는 역사서를 갈망해온 독자에게서 환호의 탄성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높게 평가하는 입장을 고수해왔고, 한국현대사학회의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한국학중앙연구원장에 이배용 건양대 석좌교수가 임명됐다. 이 원장 역시 과거 교과서포럼 고문으로 활동한 뉴라이트 성향의 인물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이 원장이 자신의 저서에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일부 인물들을 미화해 기술한 점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MB 정부 말기인 2012년 9월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김학준 이사장 역시 한국현대사학회의 고문을 맡았던 뉴라이트 인사로 분류된다. 결국 학계에서 역사 관련 3대 국책기관으로 꼽는 국사편찬위원회·한국학중앙연구원·동북아역사재단 기관장직을 모두 뉴라이트 성향의 인사가 장악하게 된 것이다.

이후에도 교육·문화 분야의 고위 임명직에 뉴라이트 성향의 인사를 발탁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올해 2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에 친박·뉴라이트 인사로 분류되는 박상증 목사가 임명됐다. 안전행정부는 5월에 이사진과 감사 등 5기 임원 9명의 명단을 사업회에 전격 통보했는데, 여기에도 뉴라이트 인사인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가 포함됐다. 박 이사장 취임 후 다섯 달이 지난 현재까지 사업회 내부 구성원들은 반발의 목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사업회 직원들은 “박근혜정부가 박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을 통해 사업회를 장악해 민주화운동을 재평가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송광용 교육문화수석,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 ⓒ 연합뉴스
현 정부 ‘인사 참사’ 이면에 뉴라이트 그림자

지난 6월 임명된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은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다. 교과서포럼 회장으로 활동하며 5·16을 “쿠데타이기도 하고 혁명이기도 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 참여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분과위 간사를 지냈다. 방송 전력이 전무한 박 위원장에게 심의의 공정성·객관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반응이 언론계 안팎에서 나온다. 전국언론노조 등 16개 언론단체는 박 위원장을 “극편향 역사관을 지닌 자”로 규정하며 이번 인선이 “방송을 장악·통제하겠다는 대국민·대언론 선전포고”라는 입장을 밝혔다.

마찬가지로 지난 6월 임명된 송광용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역시 뉴라이트 역사관을 지닌 인사로 통한다. 송 수석은 2011년 5월 한국현대사학회의 창립 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해 “늦었지만 경사스러운 일”이라고 축사한 바 있다. 1999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정수장학회 이사로 재직한 점도 ‘역사관 편향 의혹’의 근거로 제기된다. 송 수석의 역사관이 청와대의 교육 및 문화 관련 정책을 관장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공세가 야당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집중포화를 맞은 김명수 교육부장관 후보자의 역사 인식도 뉴라이트의 그것을 답습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후보자는 7월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5·16 군사정변에 대해 “세계적으로 최빈국의 하나였고, 사회상이 상당히 어지러웠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훗날 다시 판단되지 않겠나”라고 밝혔다.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제출받은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서’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유신헌법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도 “충분한 시간이 지나지 않은 현 시점에서 평가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측면이 있다”고 답했다.

헌법재판소는 유신헌법 53조에 근거해 발령한 긴급조치 1·2·9호에 대해 지난해 위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김 후보자의 역사관이 심각하게 왜곡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논문 표절 의혹에서 시작된 논란이 청문회를 통해 자질 논란으로 확산되면서, 7월11일 현재 김 후보자의 낙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인사 참사’ 이면에 뉴라이트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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