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대는 중앙회 낙하산의 ‘노후 안식처’인가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07.16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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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83%가 중앙회 출신…전산망 사태로 물러난 사람이 총장

지난 2011년 4월12일 3000만명의 고객과 1158개의 점포를 보유하고 있던 NH농협의 모든 거래가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농협의 금융 전산망이 마비되면서 온라인 거래뿐 아니라 모바일 뱅킹, ATM 거래, 창구 거래가 줄줄이 마비된 것이다.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 사고 이틀 후인 4월14일 사흘간 지속된 전산장애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피해 보상 마련을 약속했지만 서비스 복구가 지연되면서 비난 여론이 빗발쳤다.

결국 이재관 농협중앙회 전무이사가 4월22일 금융 전산망 마비를 제대로 복구하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며 사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고, 사태 발생 19일이 지나서야 서비스가 정상화됐다. 농협 전산 시스템 마비 사태는 지금까지도 국내 금융권 사상 최악의 전산 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물러난 이재관 전 전무이사는 지난해 1월 농협중앙회가 운영하는 농협대학교의 제22대 총장으로 취임하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 당시 책임론이 불거졌던 최원병 회장을 대신해 농협중앙회를 떠났던 인물이 유관 기관의 장으로 복귀하는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농협재단 이사장인 최 회장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농협대학교(왼쪽)와 서울 서대문 소재 농협중앙회 본사. ⓒ 시사저널 박은숙·구윤성

중앙회에서 물러난 간부 대거 포진

“농협이 ‘철밥통’이라 불리는 데 농협대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농협중앙회에서 물러난 간부급 인사들이 농협대에 대거 포진해 있다. 이 총장은 일부 사례일 뿐이다.” 최근 기자와 만난 금융권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재관 전 전무가 옮겨간 곳이 농협대인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농협대가 농협 간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인지 농협 간부들의 ‘노후 대책’을 위한 곳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라고 지적했다.

시사저널은 새정치민주연합 김춘진 의원실을 통해 농협대학교의 역대 총장 리스트와 교수진, 이사회 구성 현황 자료를 입수해 그 실상을 들여다봤다. 사실 농협대의 역대 총장은 퇴직을 앞둔 농협중앙회 임원이 맡는 게 일종의 관례였다. 실제 역대 농협대 총장의 경력을 살펴보면 대부분 농협중앙회 상무직을 거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관례를 깬 유일한 이가 박해상 전 총장(20~21대)이다. 농림부 차관 출신인 박 전 총장은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강력한 권고로 농협대에 오게 됐고, 2009년 1월부터 2013년 1월까지 4년 동안 농협대 총장을 지냈다. 박 전 총장의 뒤를 이은 이가 바로 이재관 현 총장이다.

농협중앙회의 퇴직 임원이 농협대 총장에 오르는 관례는 이사회 구성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농협대 총장은 학교법인 농협학원 정관에 따라 농협대 이사회 의결을 거쳐 이사장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정관 39조에 따르면 법인이 설치·경영하는 학교의 장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이사장이 임명하되, 그 임기는 2년으로 하고 1회에 한해 중임할 수 있다. 그런데 농협대 이사회 또한 농협중앙회 출신들로 채워져 있어 의결 기구로서의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현재 농협대를 운영하는 농협재단 이사회 구성만 살펴봐도 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이사장과 이사, 감사를 포함한 이사회 구성원 11명 전원이 농협 출신인데 이 가운데 농협중앙회 출신이 6명이나 된다. 이를 두고 농협대의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이사와 감사까지 모두 농협 임원진으로 구성돼 있는데 어떻게 비(非)농협 출신 총장이나 이사가 농협대에 올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총장 취임 당시 이사회 내부에서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농협대 교수진까지 농협중앙회 출신이 독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4년 현재 농협대 교수 현황 자료를 보면 총 12명의 교수 가운데 10명, 83.3%가 농협중앙회 출신이다. 농협대의 교수는 공모를 통한 교수 채용 절차를 거쳐 선출된다. 그럼에도 농협중앙회 출신 교수가 대부분인 까닭은 무엇일까.

교수 채용 방식 바꿨어도 농협 출신이 ‘독식’ 

농협대는 학교법인 건국학원이 1962년 설립한 농협초급대학을 농협중앙회가 1966년에 인수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당초 농협 간부 요원과 농촌 교육 전문가를 양성하고자 하는 것이 농협대 인수 목적이었기 때문에 농협중앙회 직원들이 농협대 교직원으로 파견돼 순환 근무하는 방식으로 학교를 운영했다. 하지만 농협중앙회의 파견 직원이 농협대 교수를 겸하다 보니 보직이 바뀔 때마다 교수진도 바뀌게 되는 등 교육의 연속성이 무너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에 대해 농협대 정정현 교학처장은 “2009년부터 기존의 순환 근무 체제를 깨고 농협중앙회 직원과 농협대 교직원을 완벽하게 분리하면서 문제의 싹을 잘랐다”며 “지금은 중앙회 직원으로 운영되던 대학이 전문적인 대학 체제로 옮겨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정 교학처장에 따르면 2009년 이후 농협대에 남아 있는 교수는 농협중앙회를 퇴직하고 교원으로 채용됐거나 교수 채용 공모를 통해 정식 교수가 된 경우에 해당한다.

체제는 바뀌었지만 농협중앙회 출신 교수 비중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정 처장은 이에 대해 “외부에서는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농협대 교과목이 농협 업무와 관련이 깊다”며 “그렇다 보니 농협에서의 경험과 지식을 가진 이들이 주로 채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협대는 설립 이후 줄곧 농협중앙회로부터 대학 운영자금을 지원받아왔다. 2005년 이후 농협중앙회에서 농협대에 지원한 자금 현황 자료를 보면 지원금 규모가 연간 60억원을 넘어설 때도 있었다. 대학 운영 재정의 절반 이상을 농협중앙회에 기대고 있는 상황에서 농협대가 농협중앙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농협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농협중앙회가 농협대 교수채용에 관여하는 일은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게다가 농협중앙회에서 퇴직한 인사가 농협대에 낙하산 식으로 옮겨간다는 오해가 있는데 농협대에 채용된 교수 대부분이 3~4급 직원들이다”고 밝혔다.

농협대가 농협중앙회로부터 받는 대학 운영자금 또한 점차 규모를 축소해나가는 중이라고 그는 밝혔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농협대의 등록금은 다른 전문대의 75% 수준인 데다 장학금을 받는 학생 비율이 50~70%에 이른다. 중앙회 입장에서 보면 학교에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개념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대학이 방만하게 운영되지 않도록 운영자금 지원 규모로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대학 측과 협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농협대는 저렴한 등록금과 90%를 웃도는 취업률로 입학 경쟁률이 매년 고공비행을 하고 있다. 하지만 총장과 이사장 그리고 교수까지 농협중앙회 출신으로 채워진 농협대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온 인재들의 기대를 채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김춘진 의원은 “3년제 전문대인 농협대에는 학사 학위 과정은 물론이고 MBA 과정까지 마련돼 있는데 교수 대부분이 농협중앙회 출신이라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금감원, 농협중앙회 정밀 점검 나서  


금융 당국이 최근 농협중앙회에 대한 정밀 점검에 착수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6월23일부터 약 3주에 걸쳐 농협중앙회의 개인정보 관리 실태와 전산 내부 시스템에 대한 종합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점검 대상은 농협중앙회의 개인정보 관리 실태와 단위 조합에 대한 관리·감독 및 전산 내부 통제, 자산 운용 적정성 등이다.

오는 9월에는 금감원 정보통신(IT) 전담 검사반이 파견돼 농협중앙회의 전산 운영 부실 가능성을 정밀 점검할 예정이다. 금감원이 농협중앙회 전산 운영 체계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까닭은 농협중앙회의 전산망을 농협은행·농협생명·농협손해보험 등 관련 금융 계열사가 함께 쓰고 있어서다. 농협중앙회 전산망에 문제가 생길 경우 2011년처럼 전체 시스템이 동시에 마비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농협중앙회는 지난해 3월 주요 금융회사와 방송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던 이른바 ‘3·20 전산 사고’ 당시 농협은행·농협생명·농협손보의 정보기술(IT) 업무를 위탁받아 운영하면서 방화벽 보안과 백신 업데이트 서버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돼 징계를 받았다. 또 농협중앙회는 지난해 전산장애가 일어났는데도 별도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3월20일에 이어 4월10일 다시 전산장애가 발생해 고객들의 불안을 키웠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과거 전산 사고로 인한 징계는 이미 받았고 지금은 전산 시스템 개혁을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농협은 전산 사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경기도 의왕시에 3200억원 규모의 통합 IT센터를 건립하고 사업부문별 전산망 분리 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등 2016년까지 총 7600억원을 투자해 IT 부문을 개혁할 방침이다. 또 오는 2017년 2월까지 농협은행과 상호금융(지역 농축협 금융 사업)의 전산 시스템을 완전히 분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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