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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맞짱 떠야 ‘차기’ 쟁취한다

역대 보수 정권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 투쟁사

김현일 대기자 ㅣ | 승인 2014.07.23(Wed) 08: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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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次期)’는 ‘미래 권력’ 즉, 현직 대통령의 후임을 지칭하는 말로 통용된다. 청와대가 가장 질색하는 말이기도 하다. 금기시되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건 입에 담는 그 자체가 불경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차기’에는 대통령의 권력 훼손을 넘어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 나아가 레임덕을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약화된 권력(power)은 그나마 회복이 가능하나, 한번 실추된 권위(authority)는 회복되기 어려움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기가 너무 일찍 안 나왔으면” 하는 것은 청와대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채택한 우리 헌법 체제에선 차기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게끔 돼 있다. 그저 임기 중 어느 시점에서 본격화되느냐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단임제 속성상 새 대통령의 임기 시작과 동시에 레임덕이 진행되기 마련인데, 다만 청와대의 위상에 따라 그 시작 시기와 속도는 제각각이다.

   
1997년 6월, 신한국당 대선후보 선관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한 뒤 행사장을 나오는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대표(왼쪽). 두 사람의 굳은 표정이 ‘골 깊은’ 감정을 대변해준다. ⓒ 연합뉴스
그런 측면에서 김무성 대표 체제를 출범시킨 7·14 새누리당 전당대회의 결과는 매우 시사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원을 받는 친박(親朴) 서청원 의원이 비박(非朴) 김무성 의원에게 여지없이 무너진 것은 일대 사건이다. 6·4 지방선거 당시 김황식 전 총리의 서울시장 후보 탈락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의 국회의장 진입 무산 등 연이은 친박의 패퇴는 단순한 권력 누수가 아니다. 특히 ‘차기’가 정식으로 거론된 싸움에서 친박이 참패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선거전 종반 ‘서청원 후보’는 ‘김무성 후보’를 겨냥해 “(차기) 대권 생각이 있는 사람은 당권을 포기해야 한다”고 몰아세웠다. “그런 사람이 당 대표가 되면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이 우려된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전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권위 무너진 청와대…‘차기’ 경쟁 본격화

‘차기의 빈도와 강도’는 권력의 변화를 알리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이제 ‘차기’ 논의가 공공연히 진행될 것이다. 김무성 대표의 수평적 당·청 관계 형성 주장과 어우러져 더 큰 소리가 날 게 분명하다. 위세가 최고조에 이르러야 할 집권 2년 차의 박근혜정부로서는 급박한 상황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야권의 거친 공세와 여론의 질타라는 외환(外患)의 직격탄을 맞은 청와대로서 내부의 도전까지 겹친 속내가 어떨지는 짐작이 간다. 이런 가운데 여의도 정가는 이런저런 정국 상황을 종합해 당·청, 여야 관계가 소통과 협의 기조로 변환될 것을 예상했다.

청와대가 기존의 국정 장악 의지를 분명히 내비친 상황에서 ‘차기’의 꿈을 다지는 김 대표가 취할 자세는 이래저래 더 주목된다. 한마디로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느냐, 청와대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미래를 도모하느냐다. 당·정·청을 두루 섭렵한 5선 중진 김 대표의 선택이 과거의 사례를 참고하는 데서 비롯될 것이라는 점을 통해 요사이 청와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대 보수 정권 진영의 대통령 및 대선 후보 ‘계보’는 ‘전두환-노태우-김영삼(YS)-이회창(昌)-이명박(MB)-박근혜’로 이어진다. 주지하듯 현직 대통령 자신이 ‘좋아서’ 후임을 택한 경우는 거의 없다. 각 대통령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는 대세에 떠밀려, 마지못해 수용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후임의 위치에서 보면 대통령이란 현재 권력에 맞서 자신이 스스로 상황을 개척해 후보 자리를 쟁취해낸 것이다.

군사정권 시절 전두환 대통령-노태우 대선 후보의 경우가 다소 예외다. 12대 전두환 대통령은 노신영 총리를 마음에 두었으나, 군부의 반발에 부닥치자 노태우 민정당 대표로 후임을 정했다. 장세동 안기부장도 고려했으나, 영남 쪽 군부의 반대로 접었다. 대통령 후보에다 당 총재 자리까지 물려준 상태에서 전 대통령은 후계자를 ‘쥐 잡듯’ 호령한 것으로 유명하다. 청와대 행사장에 대통령 자리와 나란히 놓인 의자를 치우라고 호통 친 1987년 가을의 일화는 비단 전-노뿐 아니라 2인자를 인정하기 싫은 1인자의 심리를 대변하는 일화로 회자된다.

13대 노태우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한 식구가 된 YS가 민자당 대표가 되는 것을 지켜는 봤지만, 실제로는 박철언 장관·노재봉 총리 등을 의중에 두었다. YS도 서명한 내각제 합의문을 언론에 흘리고, 박태준 최고위원의 도전까지 부추기면서 YS를 견제했다. 그러나 YS는 탈당 불사 등 극단 카드로 맞서며 결국 대통령 후보를 쟁취했다.

   
1987년 6월 민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노태우 대표. 노 대표를 후계자로 낙점한 전두환 대통령(오른쪽)은 조직·자금을 동원해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 ⓒ 연합뉴스2011년 12월22일 청와대 회동. 서로를 외면하는 듯한 떨떠름한 이명박 대통령(왼쪽)과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표정이 둘의 관계를 암시한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정도 넘은 극한 대립이 ‘이회창 비극’ 초래

14대 김영삼 대통령은 ‘창(昌)’을 물리치기 위해 “좋은, 젊은 재목”이라며 ‘이인제 경기도지사’를 부각시켰다. 청와대를 감사하겠다고 나서는 이회창 감사원장을 임기가 보장되지 않는 총리로 빼돌리고, 헌법이 보장한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이회창 총리를 몇 달 만에 물러나게는 했지만, 세를 불린 昌이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러나 YS에게 탈당을 요구하는 등 현직 대통령과 막판까지 가는 불화는 그가 청와대 주인이 되는 데 장애가 됐다.

가장 최근의 ‘이명박-박근혜’ 사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MB에게 17대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에서 패한 ‘박근혜 후보’는 자신의 지지자들이 친박연대를 결성해 딴살림을 차리는 가운데서도 당에 남아 MB와 사사건건 날카롭게 대립했다. 그러곤 ‘대안 부재’를 대세론으로 굳혔다. MB 친형인 이상득 의원 등에게 “달리 대안은 없다. 퇴임 후 MB가 안녕하기 위해서도 딴마음 먹지 말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하는 등으로 방해 작업을 차단했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현직 대통령의 낙점으로 청와대에 안착한 노태우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전부가 자력으로 ‘차기’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는 3년 반이 남아 있다. 인사 비극과 세월호 참극으로 권위가 손상됐다지만 힘을 재충전할 시간은 충분하다. 정권이 가장 힘을 받는 황금 시기를 촛불시위로 허송한 MB 정부와 비견됨에도 여지는 다분하다는 얘기다. 신임 김무성 대표의 입장에서 보면 독자 세력을 키울 여유가 있는 동시에 예기치 못한 돌발사고로 대표 자리가 한순간에 날아갈 소지도 배제할 수 없는 양면을 지닌다.

김 대표는 7·14 전당대회 이후 여권의 차기 대권 후보 조사에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정몽준 전 의원을 제치고 앞서 달리고 있다. 각기 10% 전후로 아직은 크게 주목할 바 못 되지만, 나름의 의미는 있다. 섭씨 30도를 훨씬 웃도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안팎으로 부대키는 북한산 자락에는 찬 서리가 내릴 만큼 냉기가 감돈다. 그래서 ‘김무성호(號)’의 항로가 더욱 궁금하다. 김 대표 개인사만이 아닌, 집권 여당의 장래가 걸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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