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어 이자도 못 갚는 건설사 ‘수두룩’
  • 김관웅│파이낸셜뉴스 기자 ()
  • 승인 2014.07.2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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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 능력 상위 100개사 중 25곳 워크아웃·법정관리

지난 6월 ‘상떼빌’이란 아파트 브랜드로 친숙한 성원건설이 수원지방법원에 회생절차 폐지(파산) 신청을 했다. 지난 4월 벽산건설이 파산한 지 불과 두 달여 만의 일이다. 채권단 협의 절차가 남아 있지만 파산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국내 건설 경기 침체가 수년째 이어지면서 중견 건설사들이 또다시 줄도산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 2007년 말 주택 경기 침체를 시작으로 국내 건설업계에 불어닥친 한파는 지난해 말 기준 시공 능력 순위 상위 100개사 중 25곳을 줄줄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로 몰아넣었다. 올 7월 현재도 법정관리를 받는 회사가 10곳(쌍용건설·벽산건설·극동건설·남광토건·동양건설산업·한일건설·LIG건설·우림건설·STX건설·남양건설), 워크아웃 중인 업체가 7곳(경남기업·고려개발·진흥기업·삼호·동문건설·신동아건설·동일토건)에 달한다. 지난해 말보다 업체 수가 줄어든 것은 건설 경기가 좋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나머지 업체들이 파산하거나, 시공 능력 순위가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송파성원상떼빌. ⓒ 시사저널 구윤성
2013년 영업이익률 1.4%까지 하락

‘이자도 못 버는 업종.’ 국내 건설업계의 현실을 가장 잘 대변하는 말이다. 대한건설협회가 지난 5월 상장 건설사 128개사의 올해 1분기 경영 성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상장 건설사의 이자 보상 비율은 78.4%로 조사됐다. 2012년 같은 기간에 비해 170% 이상 떨어진 것으로 2012년 3분기 이후 5분기 연속 100%를 밑돌고 있다. 이자 보상 비율이란 기업이 영업 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으로 부채 등 금융비용을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100%를 밑돌면 벌어서 이자도 못 갚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사 대상 128개사 중 절반에 달하는 55개사가 이자 보상 비율 100%를 밑돌아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제조업 평균 이자 보상 비율이 635.7%(2013년 1분기 기준)에 달하는 것을 감안할 때 업황이 얼마나 안 좋은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건설사들의 경영 실적이 안 좋아진 것은 무엇보다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1%대까지 급락했기 때문이다. 영업이익률은 2011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5.9%로 나쁘지 않았지만 이후 급락세가 계속되면서 2013년 1분기에는 1.4%까지 하락한 상태다. 이로 인해 차입금 의존도도 2011년 상반기 18.3%에서 2012년 상반기 25.8%로 높아진 이후 줄곧 25%를 상회하고 있어 기업들이 빚으로 경영을 하는 비율이 높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불과 7년여 전이던 2007년까지만 해도 국내 산업계에서 가장 잘나가던 업종 중 하나로 꼽히던 건설업이 왜 이처럼 몰락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주택 경기 호황을 등에 업고 급속히 성장한 국내 건설사들은 주택 분양 사업에 거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켰다. 넘쳐나는 주택 수요로 인해 특별한 위험 없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었다. 이는 중견  건설사는 물론 대형 건설사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수년간 주택 분양 사업을 통해 큰돈을 번 건설사들은 사업 다각화를 통한 위험 회피는 안중에도 없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금융권 차입을 통해 주택 사업을 확장하고 대규모 개발 사업에 나서는 등 공격경영을 통한 ‘몸집 키우기’에만 몰두했다. 일부는 해외로 진출해 대규모 주택 사업을 벌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호황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호황기 때 정부가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해 쏟아냈던 각종 부동산 규제가 한꺼번에 효력을 발휘하면서 2007년 말 주택시장은 급속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미분양이 늘어나 건설업계는 현금 흐름에 애를 먹기 시작했다. 진짜 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본격화됐다. 글로벌 금융 시장 위기로 국내 금융권이 자금 회수에 나서면서 주택 분양에만 몰두하던 중견 건설사들은 한순간에 부실 기업으로 낙인찍히는 신세가 됐다. 대형 건설사의 경우 주택 사업을 신속히 줄이며 해외 시장에 진출해 위기를 넘겼지만 중견 건설업체는 결국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친 신용위험평가를 통해 각각 12개사와 16개사가 워크아웃 또는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는 시련을 맞았다.

주택 위주 포트폴리오가 재앙 불러

이들 중견 건설사는 이후 채권단에 의해 큰 아픔을 겪었고 위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건설산업 회생을 위해 대대적으로 진행된 워크아웃은 업체 대부분을 더욱 힘들게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중견 건설업체 한 관계자는 “워크아웃은 기업 회생을 위한 절차가 아니라 은행의 채권 확보를 위한 절차”라며 “당시 워크아웃 또는 구조조정 대상 업체에 포함된 업체들 중 절대 다수가 우량 자산을 대부분 매각당하거나 과도한 사업 구조조정으로 영업 활동이 불가능한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건설사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되면 채권은행의 철저한 관리와 통제를 받게 되는데 채권단은 채권을 단 한 푼이라도 더 회수하기 위해 인원 감축을 시작으로 회사가 보유한 알짜 자산을 모조리 매각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월드건설이다. ‘월드메르디앙’이란 아파트 브랜드로 잘 알려진 월드건설은 한때 대형 건설사 아파트 브랜드를 위협할 정도로 잘나가던 중견 건설사 중 하나였다. 그러나 2009년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돼 채권단 관리에 들어가면서 현재는 브랜드만 남아 있을 뿐 전문 인력도 자산도 없는 껍데기 회사로 전락했다. 채권단이 자금 회수를 위해 알짜 자산으로 분류되던 강남 본사 사옥과 사이판 리조트 등 돈 될 만한 자산은 모조리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또 회사가 신규 사업을 진행하려고 해도 채권단이 불경기라는 이유로 막으면서 미래 성장동력까지 완전히 상실해 회복 불능 상태가 됐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거미가 사냥감의 진액을 빨아먹은 후 껍데기만 남긴 채 버리는 것처럼 월드건설의 워크아웃은 채권단이 건설사들을 홀딱 벗겨먹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비난했다.

그렇다면 향후 중견 건설사들은 어떻게 될까. 주택 시장이 나아지면 다시 살아날까. 건설업계 대다수 전문가는 시장 상황이 좋아지면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만 예전 같은 봄날은 다시 오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워크아웃 절차를 진행 중인 건설사들은 사실상 이름만 남은 상태여서 향후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영위할 가능성이 작다. 

워크아웃 중인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채권단이 경영을 장악하고 채권 회수를 위해 미래 성장동력 여부를 가리지 않고 모두 매각하는 바람에 워크아웃을 졸업하더라도 독자적인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알짜 사업장도 없어지고 과도한 구조조정으로 인한 우수 인력 이탈로 파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굴레에 들지 않은 건설사들도 앞이 안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주택 경기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지만 예전과 같은 호황을 누리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택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바꾸기 전에는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시장에 독자적으로 진출할 능력이 없는 데다 국내 공공 공사 물량도 과거보다 크게 감소하고 있어서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야 할 필요성은 절감하지만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려면 실적도 축적해야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이를 이루기는 힘들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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