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룡·태연·정성근, 괜히 손가락 잘못 놀렸나
  • 하재근│대중문화 평론가 ()
  • 승인 2014.07.2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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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글 올렸다 뭇매…공인은 사회적 파급력 고민해야

홍명보 감독에 이어 월드컵 대표팀의 골키퍼 정성룡이 축구팬들의 공적으로 떠올랐다. 그가 귀국길에 올린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글 때문이다. ‘월드컵 기간, 아니 언제나 응원해주신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더 진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게요! 다 같이 퐈이야~’라는 글과 함께 장난스럽고 자신만만한 표정의 사진을 올린 것인데 문제는 그 시점이었다.

만약 월드컵 전, 최소한 알제리와의 경기 전에만 올렸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알제리전 패배 이후 대량 실점한 대표팀과 정성룡 골키퍼에 대한 민심이 흉흉해졌고, 16강 탈락 확정 후엔 국민 분노가 극에 달했다. 요즘엔 인터넷을 통해 국내 여론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정성룡도 이런 분위기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장난스러운 글을 여 보란 듯이 올린 것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정성룡(왼쪽 ⓒ 시사저널 임준선 )과 소녀시대 태연 ⓒ 시사저널 박은숙
설사 국내 여론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몰랐다고 하더라도 평소 우리 국민이 월드컵 선전에 큰 기대감을 보여왔던 것에 비추어볼 때 이번 졸전에 대해 매우 실망하리란 건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이 장난스러운 글을 올릴 때가 아니란 것도 당연히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민감한 시기에 SNS 글을 올릴 이유도 없지만 굳이 올려야겠다면 국민에게 사죄하는 심정의 진정성을 담아야 했다.

기성용 소동 후 교육까지 받았건만

정성룡의 장난스러운 글을 접한 네티즌은 당연히 분노했다. ‘지금까지 우리만 심각했단 말인가. 대표팀에 월드컵은 가벼운 이벤트 정도였단 말인가’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정성룡에 대한 분노가 대표팀 전체로 퍼졌다. 여기에 대표팀 회식, 이구아수 폭포 관광 논란까지 겹쳤다. 정성룡이 귀국 후 가진 경기에선 관중이 ‘퐈이야’ 플래카드를 내걸고 그를 조롱했다. 앞으로 특별한 분위기 반전이 없는 한 ‘퐈이야’ 꼬리표가 선수 생활 내내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이 사태는 정성룡이 SNS를 통해 자멸의 길로 갔다고밖에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는 자신이 올리는 사진과 글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 패배 직후 태연하게 글을 올린 것을 보면 민감한 시기의 SNS 글이 얼마나 폭발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도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친구들과 사담 나누는 정도의 느낌으로 가볍게 게시 글을 올렸다가 국민적 비난을 사고 말았다.

축구 대표팀에선 이전에도 기성용이 비슷한 이유로 구설에 올랐다. ‘가만히 있었던 우리(해외파)를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그러다 다친다’며 최강희 감독을 조롱하는 SNS 글을 올렸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은 것이다. 그 직후 벌어진 대표팀 경기에선 관중이 그에게 야유를 보냈다. 월드컵 16강 탈락 이후 기성용의 SNS 글이 다시금 화제가 되며 그를 조롱하는 소재로 쓰이고 있다. 그 글은 아마도 그를 평생 따라다닐 것으로 보인다. SNS에 글을 올리는 소소한 재미를 위해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을 감수하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일까.

당연히 그런 일은 피해야 한다. 축구협회는 기성용 파문 이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표팀 선수들을 대상으로 협회 스폰서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의 김영채 미디어본부장을 강사로 초빙해 SNS 활용법을 교육했다. 김영채 본부장은 “대표 선수는 공인인 만큼 책임감을 느끼고 SNS를 팬과의 소통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했고, 강의를 들은 대표팀 선수들은 “SNS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정성룡 사태를 보면 그 교육은 결국 무의미했다. 과거에 비해 SNS 활용에 신중해졌다는 징후를 발견하기 어렵다. 홍명보 감독이 사퇴 기자회견을 연 7월10일엔 미드필더 박종우가 ‘두 귀를 막고, 두 눈을 감고’라는 글과 함께 헤드셋을 끼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올려 많은 억측을 낳았다. 대표팀 내분설까지 나오기도 했다. 사람들의 감정이 잔뜩 격앙된 터에 그런 미묘한 글을 굳이 올려야 했을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웨인 루니 ⓒ epa 연합
웨인 루니도 게임 홍보 글로 비난받아

SNS의 부주의한 사용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영국 신문 미러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삼성 갤럭시 11게임 홍보 글을 올린 웨인 루니에 대한 축구 팬들의 분노가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성룡 파문과 비슷한 경우다. 잉글랜드의 월드컵 초반 탈락으로 국민감정이 흉흉한 상황에서 대표 선수가 게임 홍보 글이나 올리는 게 말이 되느냐란 비난이다. 정성룡처럼 웨인 루니도 국민 감정을 너무 몰랐다.

이탈리아 대표팀의 발로텔리는 월드컵 탈락 직후 ‘나를 싫어하는 모든 이에게 키스를’이라는 글과 함께 총구를 정면으로 겨눈 사진을 SNS에 올려 국제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국민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도덕률의 문제다. 그의 사진이 총격 살인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그는 문제의 사진을 삭제했지만 이미 전 세계로 퍼져나간 후였다.

벨기에 월드컵 응원녀도 사회적 도덕률의 문제로 비난을 받았다. 벨기에의 악셀르 데스피겔라르는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 때 중계 화면에 잡힌 후 벨기에의 스타로 떠올랐다. 순식간에 페이스북을 통해 20만명으로부터 친구 신청을 받았고 세계적인 기업 로레알과 광고 계약까지 체결했다. 하지만 수많은 팬에게 둘러싸여 너무 고무됐던 것 같다. 그녀는 벨기에의 16강전 직전 페이스북 계정에 자신이 과거 사냥했던 가젤과 함께 엽총을 들고 자신만만하게 포즈를 취한 사진을 올렸는데 이것이 문제가 됐다. 동물을 죽이는 이미지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유럽에서 이런 모습은 인간이 해선 안 될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녀는 비난에 직면했고 로레알은 계약을 즉각 해지했다. 순식간에 스타가 됐다가 순식간에 추락한 그녀는 지금 뒤늦게 SNS 계정을 폐쇄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월드컵이 열렸던 시기 국내에선 소녀시대의 태연이 SNS 글로 인해 팬들의 공격을 받았다. 엑소의 멤버 백현과의 열애 사실이 알려졌는데 팬들이 과거 SNS 글 중에 백현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의심되는 것들을 찾아낸 것이다. 팬들은 태연의 SNS 글을 팬에 대한 사랑의 표시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그것이 백현을 향한 것이었다면 팬 입장에선 농락당한 느낌을 받게 된다. 팬이 돌아서면 가장 무섭다. 태연은 가수 데뷔 이래 팬으로부터 가장 크게 공격을 받고 사과 의사를 비쳤으나 여론은 호전되지 않고 있다. 도대체 왜 팬들이 보는 SNS에 애매한 게시물을 올려 오해를 자초했을까.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정성근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 ⓒ 시사저널 이종현
대중 반응 예측하고 사회적 도덕률도 갖춰야

같은 시기 정치권에선 정성근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가 SNS 막말로 문제가 됐다. ‘천주교 주교단은 정의구현사제단을 축출해야 한다’ ‘조국, 박창식, 공지영 등은 북한에 가서 살아야 한다’는 취지의 게시 글을 올렸다는 것이다. “2012년 대선으로 첨예한 대결이 있었을 당시였다”며 “너무 죄송하다”고 사죄했지만 여론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다. 나중에 사죄할 말을 SNS에 올린 것부터가 문제였다.

지금까지 거론한 사례의 공통점은 사석에서 친구들끼리 할 수 있는 언행과 수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공식적으로 보여야 할 언행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월드컵 때 분패한 선수라도 친구와 함께라면 얼마든지 ‘퐈이야~’ 하며 웃을 수 있다. 하지만 상심하고 분노한 수많은 국민 앞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SNS는 보통 사적인 공간에서 혼자 활용하다 보니 이것이 수많은 사람에게 보이는 공적인 공간이라는 점을 망각하기 쉽다. 혼자 방 안에 앉아 속옷 차림으로 쓰더라도 마치 대중 앞에서 공식 발표를 하는 것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질 수 없다면 유명인의 SNS는 언제라도 자신을 해치는 흉기가 될 수 있다.

꼭 지금 당장 유명인이 아니라 해도 그렇다. 정성근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과거의 SNS 막말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현재 쓰는 SNS 글이 길이길이 남아 나중에 나에게 어떤 족쇄로 작용할지 모른다. 기성용도 정성룡도 자신이 무심코 올린 글이 두고두고 따라다닐 꼬리표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공인이라면 대중 정서에 대한 판단력 그리고 현재의 보편타당한 도덕률에 대한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 정성룡이나 웨인 루니의 경우에는 대중 정서에 대한 판단력이 미흡했다. 총을 겨눈 사진을 올린 발로텔리나 사냥 사진을 올린 벨기에 응원녀의 경우엔 사회적 도덕률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한 미국 회사의 임원은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타며 ‘아프리카로 간다. 에이즈에 안 걸렸으면 좋겠다. 농담이다. 난 백인이야’라는 글을 올렸는데, 즉시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고 현지에 도착해 비행기를 내리자마자 그는 해고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퍼거슨 전 감독은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두고두고 회자될 명언을 남겼다. 이번 월드컵 때 러시아의 카펠로 감독은 SNS로 인한 구설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월드컵 기간 중 SNS 자제령을 내렸다. 자신의 SNS 글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예측하지 못하고 사회적 도덕률에 대한 인식도 없는 사람이 내키는 대로 쓰는 SNS는 정말 인생의 낭비, 더 나아가 인생의 자살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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