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이제 와서 소동 벌이는지 한숨 난다”
  • 전남 순천=조현주·이규대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07.3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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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사체 발표 후에도 ‘뒷북 수사’…“일종의 쇼” 실토

지난 6월12일 전남 순천경찰서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추정되는 변사체를 전남 송치재 부근 매실 밭에서  발견했다는 소식이 7월22일 뒤늦게 밝혀지면서 전국이 발칵 뒤집혔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유 전 회장의 죽음을 두고 온갖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사건이 벌어진 핵심 장소였던 순천 지역은 그야말로 혼돈에 휩싸였다.

그동안 유병언 검거에 매진했던 경찰은 초상집 분위기다. 순천경찰서는 7월22일 오전 수사 브리핑을 통해 “매실 밭에서 발견된 변사체의 대퇴부 뼈에서 채취한 DNA와 지문을 분석한 결과 유병언 전 회장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변사체 발견 이후 무려 40일이 지난 ‘늑장 발표’에 변사체 수사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샀다. 결국 발표 당일 우형호 순천경찰서장과 임 아무개 형사과장이 직위해제됐고 수사 담당자들은 감찰 대상에 올랐다. 직위해제 발표 직후 우 전 서장은  예상했다는 듯 곧바로 서장실을 비웠다. 기자가 연락을 취하자 우 전 서장은 “대기발령 상태에서 담당한 수사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은 데다 심적 고통이 커 마주할 상태가 아니다”고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7월23일 오후 8시30분쯤 수사본부 요원들이 유병언의 은신처인 ‘숲속의 추억’ 별장 내 비밀 공간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다음 날인 7월23일 변사체 엉터리 수사에 대한 의혹이 더욱 커졌다. 경찰은 이날 오전 8시부터 탐지견 두 마리와 특공대 7명, 경찰관 42명을 포함한 수색 인원 175명을 동원해 유 전 회장 죽음의 단서와 그의 행적을 파악하기 위한 ‘뒷북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이날 밤 유 전 회장의 은신처였던 ‘숲속의 추억’ 별장과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순천교회로 불리는 ‘야망연수원’, 유 전 회장의 도피를 도왔던 변 아무개 부부가 운영한 송치재휴게소 인근 식당 등 3곳을 압수수색했다. 변사체 유류품 가운데 스쿠알렌, 육포 등이 발견됐는데 또 다른 물품을 찾기 위해서였다.

다음 날까지도 경찰의 생색내기 수사가 이어졌다. 순천 지역 일대를 수색 중이던 경찰은 7월24일 오전 9시58분쯤 ‘숲속의 추억’ 별장과 직선거리로 불과 500m, 변사체가 발견된 매실 밭과는 1.5㎞ 떨어진 지점에서 검은색 뿔테 안경을 발견했다. 유 전 회장이 변사체로 발견될 당시 평소 착용하던 안경은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만약 발견된 안경이 유 전 회장의 것이라면 그의 동선을 파악하는 핵심 증거가 됐을 것이다. 경찰은 발견한 뿔테 안경과 현장을 오전 11시쯤 즉각 언론에 공개했다. 하지만 공개 현장에서 만난 한 경찰 관계자는 “유 전 회장의 안경이 아니다. 사용한 지 얼마 안 된 새 안경인 데다 평소 착용한 반무테 안경과는 다른 형태”라며 “일종의 쇼 아니겠느냐”라고 실토했다. 실제 다음 날인 7월25일 경찰은 “뿔테 안경의 주인은 안경이 발견된 매실 밭의 주인인 윤 아무개씨가 밭일을 하다 분실한 것”이라고 밝혀 해프닝으로 끝났다.

경찰이 뒤늦게 순천 지역 일대를 샅샅이 파헤치는 동안 순천 지역 주민들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한 모습이었다. 순천 서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박 아무개씨는 “지금까지 1000여 명을 동원해 이 일대를 수색했는데 결국 (유 전 회장이) 사체로 발견됐다니 어이가 없다”며 “경찰이 왜 이제 와서 소동을 벌이는지 한숨이 난다”며 혀를 찼다.

경찰이 7월23일 유병언씨 관련 재수사에 나섰다. 이날 오전 유씨 시신이 발견된 매실 밭을 조사하고 있다. 7월24일 경찰은 유씨 변사체가 있던 매실 밭 인근에서 안경을 발견했다. 유씨 변사체를 최초로 신고한 박윤석씨는 “처음에 노숙자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마을 주민들, 유병언 사체인 줄 몰랐나

유 전 회장의 사체가 발견된 매실 묘목 밭은 순천 서면의 학구마을 안에 있다. 학구마을 주민들 또한 유 전 회장의 사체가 발견되기 전까지 그의 행적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일까. 7월23일 시사저널 취재진은 학구마을을 찾아갔다. 마을 초입 시멘트로 포장된 오르막길을 200m쯤 오르다 보면 유 전 회장의 사체를 최초로 신고한 박윤석씨의 농장 입구가 나온다. 거기에 있는 작은 철문을 지나 비탈길을 100m쯤 올라야 매실 밭에 도달할 수 있다.

박씨의 매실 밭은 5월25일까지 유 전 회장이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진 별장 ‘숲속의 추억’과 직선거리로 2.3㎞ 정도 떨어져 있다. 당시 경찰은 도주한 유 전 회장을 찾기 위해 순천 일대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하지만 6월12일 유 전 회장의 사체를 발견하고 신고한 박씨는 사체의 주인공이 유병언 전 회장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생전 처음 겪는 일에 당황한 박씨는 사체를 꼼꼼히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박씨는 “자세히 기억나진 않고 인상만 남아 있다. 배 쪽에 벌레가 가득 차 있었다. 벌레가 사체의 살 대부분을 파먹은 듯 보였다”며 “발견 당시 행색도 초라했고 발견된 유류품도 별것 없어서 노숙자인 줄만 알았다”고 덧붙였다.

마을 주민 “지난해까지 노숙자 종종 목격했다”

마을 주민들 역시 6월에 발견된 사체가 유 전 회장일 것이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주민 최종현씨(63)는 “온 마을이 매실 따느라 바빠 서로 만나기도 힘든 때였다. 사체가 발견됐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 마을이 조용했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일현씨는 “6월에 사체 이야기를 듣긴 했다. 그날 면사무소에서 주민자치회의가 있었는데 ‘사체가 발견됐다’는 말을 전해들은 정도가 전부다”고 말했다. 마을을 관통하는 4차로 도로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한 부부는 “지난해까지는 마을 주변을 배회하는 노숙자를 종종 목격했다”며 “더운 날씨에도 겨울 외투를 입고 다니기에 사체가 발견됐을 때 노숙자가 죽은 정도로만 생각했지 유병언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병언씨가 숨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순천의 ‘숲속의 추억’ 내 비밀 공간(왼쪽)과 별장 2층에서 바라본 1층 모습. ⓒ 시사저널 조현주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은 7월23일 “5월25일 유병언 전 회장의 은신처인 순천 ‘숲속의 추억’ 급습 당시 유 전 회장이 별장 내 비밀 공간에 은신해 있었다”며 “유 전 회장과 함께 ‘숲속의 추억’에 은신 중 구속된 신 아무개씨(33·여)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6월26일 이 같은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날 검찰은 “신씨의 진술을 청취한 다음 날 별장 내 비밀방에서 현금 8억3000만원과 16만 달러가 들어 있는 여행용 가방 2개를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5월25일 오후 4시 순천 별장에 대한 수색을 시도했다가 문이 잠겨 있어 정식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후 같은 날 오후 9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수색을 벌였지만 숨어 있던 유 전 회장을 찾아내지 못했다.

검찰의 ‘깜짝 발표’에 경찰의 뒷북 수사가 이어졌다. 순천경찰서는 7월23일 오후 8시30분쯤 ‘숲속의 추억’을 압수수색한 뒤 별장 내 비밀 공간을 언론에 공개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경찰 입회하에 별장 내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별장은 겉에서 보면 단층으로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가 보면 현관 왼편에 나무 계단이 보인다. 집 안 왼편의 3분의 1만큼의 공간이 복층으로 돼 있는 구조다.

비밀 공간은 2층 왼쪽 벽면과 오른쪽 벽면 안 두 군데에 만들어져 있다. 왼쪽 벽면 앞의 소파를 치우면 뒤 벽면에 통나무로 위장한 비밀 공간 출입문이 보인다. 출입문은 떼어낼 수 있는 판 형태로 돼 있고 안쪽에는 나무로 만든 잠금장치가 있었다. 경찰은 “2~3평 정도 되는 공간이고 이곳은 돈다발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오른쪽 벽면에도 유사한 방식으로 비밀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문이 있다. 문을 떼어내면 성인 4~5명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4평 남짓한 공간이 나온다. 검찰의 급습 당시 유씨가 숨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별장 내부 곳곳에서는 유 전 회장의 사체와 함께 발견된 유류품과 똑같은 세모그룹 계열사가 생산한 스쿠알렌과 육포 등이 다수 발견되기도 했다. 비밀 공간은 유 전 회장이 별장에 머무르면서 급히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비밀 공간 출입문으로 위장한 통나무의 색이 다른 벽면 통나무보다 조금 더 짙은 빛깔을 띠고 있다. 압수수색 당시 경찰은 통나무 벽면을 두들겨본 후 비밀 공간 출입문을 찾아냈다. 하지만 검찰은 5월25일 급습 당시 두 시간 동안 수색을 벌였지만 2층에 두 곳의 비밀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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