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지성들, 유대인 문제는 못 본 척
  • 최정민│프랑스 통신원 ()
  • 승인 2014.07.3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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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반유대주의 물결, 정치·학계·언론은 외면

프랑스 파리 역 인근의 텅 빈 대로들이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최루가스로 자욱해졌다.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시위가 과격하게 진행된 탓이다. 시위와 파업이 끊이지 않는 파리지만 대부분은 온건한 분위기에서 가두행진으로만 끝난다. 그런데 7월19일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사태를 예견한 듯 프랑스 내무부가 이례적으로 시위 금지 조치를 내렸지만, 상황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사흘 후인 22일, 파리 북쪽 외곽 지역인 삭셀에서는 시위대가 유대인 상점과 자동차를 습격하고 방화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마치 2005년에 있었던 파리 소요 사태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유대인을 향한 습격을 피하려는 듯 7월16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위치한 벤구리온 국제공항에는 430명의 새로운 이민자들이 도착했다. 이들은 프랑스 등 유럽에서 이스라엘로 이주해 온 유대인들이다. 이들 중에는 미사일 사정거리인 아스글론에 정착하는 사람도 있다. 이주 이유 중 하나는 유럽의 ‘반(反)유대주의’ 정서 때문이다. “최근 유럽 지역의 반유대 정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게 치솟았다”는 분석이 곳곳에서 제기된다. 그래서인지 올 1분기에 프랑스에서만 1407명이 이스라엘로 돌아갔다.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하면 무려 네 배나 많다.

7월19일 프랑스 파리 역 인근에서 벌어진 반(反)이스라엘 시위 중 한 참가자가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 AP 연합
‘반유대주의’ 전사로 돌아선 코미디언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시위를 금지한 데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파스칼 보니파스 프랑스 국제관계전략연구소(IRIS) 소장은 “공동체들의 목표가 상호 충돌하지 않는데도 무작정 시위를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며 “이스라엘의 정책을 비판한다고 모두 반유대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이번 결정은 프랑스 정부가 유대인 공동체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호응하는 것으로 친(親)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비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조치가 시위대를 더 급진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보니파스 소장의 분석은 이번 시위가 폭력적으로 번진 이유를 설명해준다. 2005년에 벌어진 프랑스의 소요가 과거부터 쌓였던 불평등에 대한 불만의 폭발이라면, 이번 사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불평등한 대결, 더 나가서는 친이스라엘 일변도의 서방 선진국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었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여기에 더해 그 밑바닥에는 프랑스를 넘어 전 유럽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유대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

반유대주의의 근원은 어디일까. 가자 지구 참극이 촉매제였지만 그 속에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이 반유대주의를 부른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이슬람 문제나 이민자 문제를 유대인들은 유독 ‘종교 문제’로 몰고 간다. 무슬림인 타릭 라마단 제네바 대학 교수는 “그런 것들은 종교 문제가 아니라 빈곤 지역의 실업과 생계 문제”라고 지적하며 “반유대주의 문제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향한 적대적 행위로 부각시키면서 끊임없이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 코미디언을 둘러싼 사건은 반유대주의의 이슈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지난 1월9일 프랑스 코미디언 디유도네가 공연 금지 처분을 받았다. 디유도네는 자멜 드부즈 등 프랑스 무슬림 코미디언의 정신적 우상이다. 그의 공연이 금지된 이유는 단순했다. ‘반유대주의 선동’이었다. 공연 초반부에 유대인을 풍자하는 부분은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유대인 폄하’가 아니었다. 실업률이 40%에 달하는    ‘프랑스 무슬림의 삶’을 풍자하는 내용이었다. 아무튼 유대인 단체들은 그를 조직적으로 공격했다. 그 순간부터 디유도네는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반유대주의자’가 됐다.

그는 낙인을 없애기 위해 수많은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공식적으로 사과도 했다. 그래도 유대인 단체와 학자들의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디유도네도 화해 시도를 멈췄다. 오히려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유대인 문제에 비해 홀대받던 아프리카 노예 착취 문제와 이민자 문제를 들고나오면서 진심으로 유대인의 반대편에 서기로 했다. 유대계의 ‘반유대주의’라는 이슈 파이팅에 공연의 실체는 사라졌고 ‘반유대주의자’ 딱지만 남게 됐다.

유대인의 뒷배는 든든하다. 역사적으로 부채의식을 가진 유럽 정치인들은 유대인들을 향해 휴머니즘을 내세운다. 그나마 프랑스 정계는 그런 부분이 약했다. ‘정교 분리’라는 공화국의 원칙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이들에게 공개적으로 구애하며 지지를 표시하는 정치인이 있다. 좌파의 사르코지라고 불리는 마누엘 발스 총리다.

지식인과 언론 외면, 비판 담론 형성 못해

발스 총리의 구애는 오래된 일이다. 2012년 11월 내무장관 시절 유대계 방송인 ‘Radio J’의 갈라 행사에 등장해 “유대인 공동체가 곧 프랑스다”라고 말했던 그다. 디유도네를 반유대주의 전사로 만든 사람도 따지고 보면 발스 총리였다. 그의 공연을 금지시킨 사람이 내무장관 시절의 발스 총리였다. 3월19일 디유도네를 둘러싼 논란이 끝난 후 발스 총리는 내무장관 신분으로 파리의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열린 유대인 집회 단상에 올랐다. “프랑스의 유대인은 공화국의 전위대다.” 그의 공격적인 발언은 당시 논란거리가 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비판 담론이 형성되지 못해서다. ‘비판 지성’의 나라인 프랑스지만, 유독 유대인 관련 문제는 예외다. 학계의 스타 지식인들이 주로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 알랭 핀켈크루트 등 유대인 지식인들은 반유대 정서 문제에 대해 복잡하고 심도 깊은 비판 논거를 들고 공영방송에 출연한다. 이들에 맞서 토론을 벌일 수 있는 무슬림 학자는 타릭 라마단 교수 정도에 불과하다.

7월22일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의 외무장관들은 “유럽에서 반유대주의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지만, 반유대 정서, 그리고 유대인들의 유럽 탈출에 브레이크가 걸릴지는 미지수다. 여기에 유럽 언론들의 불공정한 보도 행태는 군불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프랑스 언론들은 600여 명의 가자 지구 희생자보다 23명의 이스라엘 피해자 보도를 먼저 내보낸다. 7월24일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파스칼 보니파스 국제관계전략연구소장은 유대인 과격파의 습격을 받았지만 프랑스의 주류 언론 중 이 사건을 다룬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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