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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함께 혼내자”에 유럽은 뭉그적

‘민간 항공기 격추’ 러시아 제재 요구 EU 각국 이해관계 엇갈려 ‘미지근’

김원식│미국 통신원 ㅣ 승인 2014.07.31(Thu) 13: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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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당신은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실수였다면 실수라고 세상에 말해야 한다. 러시아와 분리주의 반군의 연계가 명확하다는 증거는 충분하다. 유럽은 이제 러시아 제재에 힘을 합쳐야 한다. 특히 독일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7월20일, CNN 방송에 출연한 미국 상원 정보위원장인 다이앤 페인스타인은 유럽을 독려했다. 미국과 함께 러시아를 막아서길 원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상공에서 미사일에 의한 여객기 격추로 298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강고하다. 이 여객기를 격추한 것이 러시아가 만든 지대공 방어 시스템인 ‘부크(Buk)’ 미사일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 연합뉴스·AP 연합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 미사일을 발사해 여객기를 격추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서방 국가와 국제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 반군이 발사했다고 강하게 의심한다. 설혹 국제사회가 어떤 조사 결과를 내놓더라도 미국과 서방 국가의 믿음은 확고해 보인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는 이 사건만큼 큰 악재도 없다.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후 승승장구했지만, 고귀한 민간인 298명의 희생이 푸틴이 벌이고 있는 게임 중에 발생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스크바 시간으로 7월21일 오전 1시30분, 야심한 시각이지만 크렘린궁은 이례적으로 이번 여객기 참사와 러시아가 무관하다고 말하는 푸틴의 동영상을 보도자료와 함께 배포했다. 모스크바는 심야지만 미국 등 서방 국가는 낮 시간이다. 다분히 서방 언론이나 국민을 의식한 발표였다. 러시아로 몰려드는 비난과 책임론을 피해가겠다는 의지였다.

미국, 푸틴의 ‘신냉전 체제 국면 확산’ 의심

푸틴은 동영상에 등장해 “이번 참사가 그 어떤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음 날 열린 러시아 국가안보회의에서도 ‘서방의 최후통첩’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푸틴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화살에 정면 대응했다. “서방 국가들은 인종적·역사적으로 러시아와 가까운 우크라이나 일부 주민이 학살되는 것을 허용하면서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겠다는 최후통첩을 했다”며 “이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뒤에서는 출구 전략을 찾느라 바쁜 모양새다. 요즘 들어 러시아 내에서는 “친(親)러시아 무장 세력이 사실 다양한 소그룹으로 구성돼 있어서 정말 ‘친러시아’인지도 의심스럽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고, “푸틴이라고 해도 이웃 나라에 흩어져 있는 친러시아 무장 세력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식의 보도도 많아졌다.

러시아의 출구 전략을 막으려는 듯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은 분명히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동안 이번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익명으로 언론에 제공하던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7월22일 이례적으로 대언론 브리핑을 가졌다. 기자들 앞에 선 CIA 관계자는 “이번 여객기 참사는 충분한 훈련을 받지 못한 친러시아계 우크라이나 반군 무장 세력의 오인으로 인한 격추 가능성이 크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보기관의 공식 브리핑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신냉전 국면을 통해 세력을 확장하려는 푸틴을 주저앉히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번 사건을 ‘게임 체인저’로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이번 참사에 자신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가 완벽하게 나오기 전까지는 러시아의 대외 정책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모스크바 소재 ‘정치기술센터(Center for Political Technologies)’의 알렉세이 마카르킨 부소장은 “100% 러시아 소행이라는 증거가 없는 한, 95% 혹은 99%의 증거에도 러시아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우크라이나 반군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움이 필요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유럽을 향해 손을 뻗치고 있다. 이번만큼은 같이하자는 요청이다. 헤더 콘리 미국 국제전략연구소(CSIS) 미국-EU(유럽연합) 외교 문제 연구원은 “미국이 선제적으로 러시아 추가 제재를 발표한 것은 일종의 불만 표출이다. 백악관은 유럽과 나란히 가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제임스 모란 민주당 의원은 “대(對)러시아 문제에서 유럽의 입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직설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공화당의 젊은 희망으로 주목받는 애덤 킹징거 의원은 러시아 해군과 대규모 함선 건조 계약을 맺은 프랑스 기업을 예로 들며 “이런 계약을 파기하는 것만으로도 러시아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럽의 반응은 의외로 싸늘하다.

   
6월4일 러시아를 빼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6년 만에 만난 주요 7개국 정상. ⓒ AP 연합
오바마, 격추 사건을 반등 기회로

정치적으로 러시아를 고립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러시아는 이미 주요 8개국 정상회의(G8)에서 배척되고 있다. 이번 참극의 희생 국가인 호주는 11월 브리즈번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에 “푸틴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경제라면 말이 달라진다. 천연자원에서 무기까지 러시아와 유럽의 경제 관계는 의외로 밀접하다. 강한 제재를 요구하는 미국과 온도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러시아 제재를 강력히 수행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는 독일은 기업들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독일 기업 단체들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강해지면 2만5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러시아 제재 여부를 놓고 “각국 지도자의 자제가 필요하다”며 중립적인 의견을 내고 있다. 킹징거 의원이 언급한 프랑스의 함선 건조는 프랑스를 소극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번 민항기 격추 사건에서는 관찰자나 다름없는 남유럽 역시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 피에르 카를로 파도안 이탈리아 경제장관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두고 “부과하는 쪽이나 부과 당하는 쪽 모두에게 문제가 될 것”이라고 반대했다. EU가 제재를 결정하려면 28개 회원국의 만장일치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러시아 제재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이탈리아·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의 대응이 주목되는 상황에서 나온 이 같은 발언들은 백악관의 힘을 빼놓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을 후퇴시킨 대통령”으로 기록되기 싫은 오바마 정부는 이번 격추 사건을 ‘경종’으로 삼고 반등의 기회로 만들려고 한다. 결국 성패는 얼마나 반(反)러시아 세력을 규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데 그것이 그리 쉽지 않다. 그나마 동조하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말은 뼈아프다.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과 마주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EU에는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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