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품 주의’
  • 김재태 | 편집위원 ()
  • 승인 2014.08.0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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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선배로부터 이런저런 조언을 듣게 됩니다. 대부분 금쪽같이 유익한 충고들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기사에 너무 많을 것을 담으려고 하지 마라. 핵심을 추리고 추려 정말 필요한 정보만 내놓아라.” 취사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말은 이후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직업 특성상 필연적으로 특종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기자들로서 이런 ‘절제의 미학’을 지켜내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흥미롭고 그럴싸한 소재를 찾고 싶은 유혹을 떨쳐내기가 꽤나 어렵습니다. 그렇다 보니 내용을 침소봉대하거나 요란하게 치장하는 등 ‘과대포장’으로 시선을 끌려고 하는 사례도 적지 않게 나타납니다.

실제로 전남 순천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인 것으로 밝혀졌던 지난 7월22일 이후 언론 보도에서 이런 모습이 자주 눈에 띕니다. 온갖 추측을 바탕으로 이른바 ‘소설을 쓴’ 기사가 있는가 하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거르지 않고 내보내는 일도 있습니다. 압권은 유씨의 장남인 유대균씨가 박수경이라는 여성과 함께 경찰에 붙잡힌 이후의 보도들입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두고 갖은 억측을 해대고, 심지어는 유대균씨가 뼈 없는 치킨을 배달시켜서 먹었느냐, 아니냐를 두고 치졸한 공방을 벌이기까지 했습니다. 또한 박수경씨의 외모와 관련해 ‘호위무사’니 ‘미녀 무사’니 하는 수식어를 남발하는 등 자극적인 표현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기도 했습니다(82쪽 기사 참조). 박씨의 모습이 ‘북한 여군 같은 느낌’을 준다는 어처구니없는 멘트까지 버젓이 방송을 타고 전해집니다.

이들이 이처럼 관음증적인 보도에 열을 올리는 동안 정작 중요한 세월호 참사의 본질에 대한 고민은 저만치 멀어져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기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23일부터 28일까지 국내 주요 일간지와 방송에서 유병언 일가에 관한 보도 건수와 세월호 참사 관련 보도 건수가 258개 대 92개로 ‘유병언 쏠림 현상’이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건수도 건수지만 그 내용이 더 문제입니다. 개인 사생활과 관련한 내용 등 선정성 짙은 보도들이 넘쳐납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 침해라고 규정한 ‘수갑 찬 피의자 영상’이 그대로 방송에 노출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세월호 침몰 직후 구조된 학생에게 친구가 사망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묻는 등 여러 부적절한 보도 태도로 빈축을 사며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말까지 들었던 언론이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이런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더는 답이 없습니다. 이런 행태를 보이면서 그동안 검·경이 무엇을 했느냐고 따지는 것도 머쓱할 일입니다. 검·경의 헛발질을 비난하기 전에 검·경이 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언론의 임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종편에 각종 온라인 미디어까지 홍수를 이룬 매체들 속에서 저속·저급한 시선을 들이대며 물을 흐리는 유사품마저 활개 치는 ‘언론 과잉’ 시대. 가뜩이나 피곤해진 독자·시청자들로 하여금, 믿고 봐야 할 언론에 대해서까지 진품과 유사품을 가려내야 하는 수고를 하게끔 만든다면 그런 ‘민폐’도 더는 없을 것입니다. 언론의 품격은 언론 스스로 말고는 아무도 지켜줄 수 없습니다. 시사저널부터 혹여 그런 ‘민폐’를 끼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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