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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순천 항쟁’ 예고된 민란이었다

엄민우 기자 ㅣ mw@sisapress.com | 승인 2014.08.05(Tue) 16: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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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재보선의 MVP는 이정현이다. 그의 이름 뒤에는 ‘당선’이 아닌 ‘기적’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었다. 야당은 물론 여당도 호남에서 이뤄낸 그의 승리가 믿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이정현 혁명’은 멀리서 보면 기적이다. 그러나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충분히 예측된 결과였다. 이미 선거 한 달 전 이상 징후가 있었고 새정치연합 지도부에도 관련 보고가 올라갔지만 묵살됐다. 순천에서는 대체 어떤 혁명의 조짐이 있었던 것일까.

 

1990년 3당 합당에 의해 탄생한 민자당의 출현으로 지역감정은 극에 달했다. 영남은 민자당(새누리당의 전신), 호남은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으로 ‘동서 냉전’ 체제가 확고해졌다. 영호남을 가르는 소백산맥의 산줄기는 누구도 넘기 어려울 만큼 험준했다.

   
7·30 재보선 순천·곡성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당선이 유력시된 이후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받고 있다. ⓒ 연합뉴스
2004년 4월15일, 17대 총선에서 일대 사건이 터졌다. 무명에 가까운 열린우리당 조경태 후보가 부산 사하 을에서 세 번째 도전 만에 당선한 것이다. 3당 합당 이후 ‘민주 계열’ 후보의 첫 영남 지역 당선이었다. 이후 조경태 의원은 그 지역에서 내리 3선을 했고, 19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부산 사상(문재인)과 경남 김해 갑(민홍철)에서도 청색 깃발을 꽂았다. 소백산맥이 무너지는 듯했다.

하지만 호남은 요지부동이었다. ‘새누리 계열’ 후보 그 누구도 소백산맥을 넘지도, 아니 넘을 생각도 못했다. 그나마 지역색이 비교적 덜한 전북에서 1992년과 1996년 총선 때 세 번에 걸쳐 새누리 계열 후보가 당선된 바 있지만, 광주·전남은 철옹성이었다. 2000년대 들어 영남은 조금씩 열렸지만, 호남은 오히려 거꾸로 갔다. 2000년 이후 호남에서 새누리 계열은 발도 못 붙였다.

2014년 7월30일, 또 하나의 역사가 쓰였다.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전남 순천·곡성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되는 대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그것도 상대 후보 난립에 따른 어부지리도 아닌, 사실상의 일대일 맞대결 구도에서 과반수에 가까운 49.43%의 득표율로 서갑원 새정치연합 후보(40.32%)를 눌렀다.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새누리 계열 후보가 광주·전남에 첫발을 디디는 데 무려 26년이 걸린 셈이다. 이정현 후보의 당선 소식이 방송에 나오자 새누리당사에서는 “이건 혁명이다”라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광주는 이정현 얘기뿐, 권은희 관심 없어”

7·30 재보선의 키워드는 ‘호남’, 주인공은 단연 ‘이정현’이다.  김한길·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의 사퇴와 손학규 고문의 정계 은퇴라는 대형 사건보다도 이정현 의원에 대한 소식이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격전지인 수도권에서의 압승으로 새누리당이 11 대 4 대승을 거뒀음에도 세간의 관심은 수도권 스코어보다는 호남으로 쏠렸다. 호남 민심 이반은 새누리당에는 기적이었지만, 새정치연합에는 참극이 됐다. 중진 의원 출신인 호남 지역의 한 야권 인사는 “가장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굉장히 충격적이어서 뭐라고 말을 할 수조차 없으니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선거에 대한 평가 자체를 거부했다. 광주에 사는 직장인 임 아무개씨(34)는 “선거 다음 날 회사에선 온통 이정현 이야기뿐이었다. 권은희는 다들 별로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고‥·”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7·30 재보선 선거운동 중인 서갑원 후보와 안철수 대표. ⓒ 뉴시스
“이정현 찍어 서갑원과 야당 심판해야”

이정현의 ‘순천 혁명’은 새정치연합은 물론, 새누리당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치권 동향에 밝은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재보선 직전,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에서 최종 여론조사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순천·곡성에서 이정현 후보가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내부에서도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며 지는 쪽으로 분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정도로 여당에서도 꿈도 꾸지 못한 대이변이 연출된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모든 대형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순천 혁명에도 전조 현상이 있었고, 새정치연합 지도부에도 이런 정보가 흘러 들어갔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도부가 지역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안일하게 대처하다 참극을 자초했다는 비난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시사저널이 접촉한 호남 지역 유력 인사들은 “선거가 치러지기 전부터 이미 호남은 여러 번 지도부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지도부는 이를 가볍게 여겼다”고 증언하고 있다. 호남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대중(DJ)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조순용 전 수석은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호남 민심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온 산증인이다. 고향인 순천에서 꾸준히 활동해왔고, 또 이번 재보선에도 순천 지역 출마선언을 했던  인물이어서 특히 순천 민심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밝다고 할 수 있다. 조 전 수석은 선거 이튿날인 7월31일 기자에게 “내가 직접 경험한 수상한 순천 민심에 대해 여러 번 당에 보고를 했지만, 지도부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후로 이와 관련해서는 한마디도 안 했다. (공천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을 아껴왔다”며 그동안 지켜봐온 순천 민심에 대해 털어놓았다.

조순용 전 수석은 이미 선거운동 때부터 순천에서 ‘이변의 조짐’이 보였다고 증언했다. “(경선 불참 선언 전까지) 약 일주일 간 선거운동을 하며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현장에서 심상찮은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내가 누군지 잘 모른다는 사람들도 서갑원이나 노관규가 출마하면 이정현을 찍겠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잘못하면 순천이 넘어갈 수도 있겠다’고 지도부에 보고했지만 심각하게 듣지 않았다. (지도부는) 어차피 (선거 때가 되면 기호) 2번을 찍는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당 지도부는 선거가 치러지고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순천 반란’의 조짐을 보고받고도 묵살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지적을 한 사람은 조 전 수석뿐만이 아니었다. 이변의 조짐은 이미 그 이전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역 정치권 사정에 밝은 호남 지역의 한 대학 교수 ㄱ씨는 “순천·곡성 재보선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이변이 아니다. 패배 징후가 많이 보였고 오히려 사력을 다해서 막판 뒤집기를 했어야 하는데 지도부의 의지가 없어 보였다. 애초에 서갑원 후보는 공천은커녕 경선에서 컷오프됐어야 했는데, 친노(親盧) 배려 차원에서 후보가 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 밖에도 기자가 접촉한 대다수 지역 인사들이 ‘호남의 경고’를 읽지 못한 야당 지도부를 비난했다. 이번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구희승 후보를 지지하는 인사들도 “이정현을 찍어 서갑원과 야당을 심판해야 한다” “서갑원으로는 역부족이니 당에 이야기해서 후보 정리를 하라고 해라”라는 이야기를 수차례 전했지만, 새정치연합에서는 “결국 2번일 것”이라는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재차 제기된 호남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 결국 순천은 새누리당 혁명의 발원지가 됐다.

순천은 복잡한 정치사를 지닌 곳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서갑원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해묵은 갈등이다. 두 사람은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를 놓고도 맞붙었다. 2010년 당시 노관규 순천시장이 해당 박람회를 추진하려 했으나, 이 지역 국회의원이던 서갑원 의원이 이를 결사반대했다. 이번 경선 과정까지 이어진 둘의 앙숙 관계는 순천 시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다.

전남 동부 지역 ‘소외감’ 파고든 이정현 전략

특히 서갑원 후보가 국제정원박람회를 반대한 것은 순천 지역민들에게는 아주 중한 ‘괘씸죄’가 됐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전남 지역 민심은 크게 서부와 동부로 나뉘어 다르게 나타난다. DJ의 고향인 목포가 있는 서부 지역에 비해 동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호남에서도 소외된 지역’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광주에 있던 전남 도청도 서부인 목포로 옮긴 데다, 그동안 서부 출신 박준영 전 지사가 10년 동안 도정을 이끌며 이런 인식이 더 강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전남도청 소속 공무원으로 30년 가까이 근무해온 고위 공무원 ㄴ씨의 말이다.

“동부의 소외의식은 DJ 때부터 있어온 오래된 이야기여서 행정을 할 때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지난 지방선거 때 새정치연합 전남도지사 후보 경선도 서부 출신 이낙연 후보와 동부 출신 주승용 후보의 다툼이었다. 여기서 주 후보를 꺾은 이낙연 현 지사도 이런 민심을 이해하고 동부출장소의 위상을 제2의 도청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서갑원 후보는 모처럼 순천에 생기려던 박람회장을 대안도 없이 반대했다. 순천 사람들에게 박람회장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외지 사람을 불러오고 이미지 변신을 꾀할 수 있다고 본 하나의 비전이었다. 이 와중에 이정현 후보가 갑자기 등장해 ‘예산 폭탄’을 이야기하는데 그쪽으로 표가 가지 않을 수 있겠나.”

공천 과정에서도 뒷말 무성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서갑원 후보를 공천했을까. 이 물음에 기자가 접촉한 다양한 지역 인사들은 거의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친노를 배려하기 위한 당의 결정’이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공천 과정에서도 석연찮은 점이 많았다. 서 후보 이외의 대다수 후보는 경선 룰 등에 부당함을 느꼈고, 이 때문에 구희승 후보는 경선 참여를 거부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호남의 경고를 지도부에 전달했던 조순용 전 수석은 공천 과정에서 석연찮음을 느끼고 아예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다. 결국 광주뿐만이 아니라 순천·곡성에서도 사실상의 ‘준(準)전략공천’이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친노 그룹도 이번 선거 결과에서 그리 자유로울 수 없게 된 이유다.

이번 반란 수준의 호남 민심 변화는 한국 정치에 또 다른 발전을 가져올 것이란 평가를 낳는다. 조순용 전 수석은 “자꾸 이번 결과를 두고 호남의 ‘경고’라고 하는데, 경고가 아니라 일종의 ‘선고’다. (야당이) 이 선고를 정말 심각한 경고로 받아들여서 쇄신하지 않으면 민심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정현 후보의 당선은) 이제 우리 유권자의 투표 양식이 단순히 지역감정 등으로 감성적 투표를 하기보다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후보를 뽑는 이성적 투표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사지인 줄 빤히 알면서도 내려오는디 어찌 안 찍겄소” 이정현의 뚝심에 반한 호남  


   
이정현 후보의 ‘나홀로 선거운동’은 반신반의하던 주민들의 마음을 녹였다. ⓒ 뉴시스
시사저널은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8월, 정치 전문가 100인을 대상으로 박근혜정부 최고 실세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때 1위로 꼽힌 인물이 바로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다. 초선 의원 경력의 차관급 청와대 수석이 정권의 최고 실세로 거론된 데는 그 배경에 박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박근혜의 대변인’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한다.

이른바 ‘왕의 남자’가 선거에 나서기 위해 ‘사지’(死地)나 다름없는 전남까지 직접 내려온다는 사실에 지역은 들썩였다. 전남 목포 지역의 한 50대 인사는 “그동안 야권에서는 노무현·김부겸 등 지역주의에 도전하는 거물급 인사들이 있었는데, 여권의 거물이란 인사들은 지레 겁먹고 늘 도전을 피하기만 했다. 매번 여당의 비중 없는 인사들만 호남에서 공천을 받아왔다. 그런 와중에 이정현 후보의 도전은 순천뿐만이 아니라 호남 전체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전했다.

이정현 의원의 승리가 의미 있는 것은 그가 처음부터 호남의 지지를 받던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제일 밑바닥부터 시작한 것이다. 그는 2004년 17대 총선 때 광주 서구 을 지역에 출마해 단 1%의 득표를 받는 데 그쳤다. 2008년 18대 총선 때는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고, 2012년 19대 총선 때 서울·경기 등에 출마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광주(서구  을)로 다시 내려왔다. 39.7% 득표율을 얻어 가능성을 보였다. 결국 이번 재보선에서 순천·곡성에 출마해 서갑원 후보를 약 10%포인트 가까이 여유 있게 제치며 지역 장벽을 허물었다. 곡성군이 자신의 고향이긴 하지만, 인구 수에서 순천이 곡성보다 9배나 많다는 점에서 순천 출신의 서 후보를 이긴 것은 대단한 일로 평가된다.

당 지도부의 지원을 마다하고 자전거를 타고 홀로 다닌 이정현 의원의 선거운동 방식은 반신반의하던 유권자들의 마음을 녹였다. 서갑원 후보가 당 지도부를 거느리고 시장을 누비며 악수를 건네는 동안 이 의원은 시장 바닥에 주저앉아 상인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홀로 주민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 과정을 지켜본 한 지역 인사는 양 후보 간 선거운동을 이렇게 평했다. “새정치연합은 시종일관 과거 방식대로 선거를 치렀다. 예전 방식대로, 세월호 특위 증인 채택을 하니 마니 싸우는 모습에 유권자들이 지쳤다. 요즘같이 정보가 오픈된 시대에는 그렇게 남들이 다 아는 이야기를 해서는 승산이 없다. 유권자 수준은 변했는데 사람 꾸리고 시장 한 바퀴 도는 과거 방식을 기계적으로 써먹었다.”

특히 현재 유방암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진 이 의원의 부인 김민경씨의 공도 컸다. 2011년 유방암 판정을 받고 외부 활동을 자제하다가 남편의 선거전에 나선 김씨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유권자는 없었다.

현장뿐 아니라 TV토론에서도 그는 돋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토론회를 시청했다는 한 지역 인사는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고 외치는 그의 기세에 다른 후보들은 맥을 못 췄다. 저렇게 일하고 싶다는데 뽑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전했다.

이미지뿐 아니라 공약 내용 면에서도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확실히 이정현 후보의 콘텐츠가 앞섰다. 예를 들어 순천대 의대 유치의 경우, 다른 후보들은 ‘열심히 하겠다’는 수준이었다면 이 후보는 ‘의대를 유치하려면 관련 부처 회의를 통해 결정되는데 여기에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 그 역할은 내가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남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여기에 야권 후보끼리의 갈등 구조도 이정현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 현장에서는 서갑원 후보와 각을 세운 다른 야권 후보 지지자들이 오히려 이정현 후보가 잘되기를 바랐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내부에서조차 여러 하자가 있다고 지적받은 후보를 공천하면서 오히려 다른 후보들로부터 지지는커녕 외면을 받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어찌 됐든 이렇게 이정현 의원은 호남 지역주의의 벽을 허문 사실상의 1호 국회의원이 됐다. 전남 지역의 한 공무원은 “전남 주민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영남(대구·경북)에 손을 내밀었다. 이제 영남이 이 손을 잡고 답할 때”라며 지역주의 타파 흐름이 향후 영남으로도 번져가길 희망한다는 말을 전했다.


 
 

광주, 이기고도 진 것보다 더 ‘침울’ 


   
광주 광산 을 재보선에서 당선된 권은희 후보. ⓒ 뉴시스
‘악플(악성 댓글)보다 더 무서운 게 무플(댓글 없음)’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비판 섞인 관심이라도 받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광주 광산 을 재보선에 출마한 새정치연합 권은희 후보의 선거 결과는 ‘무플’에 가까웠다. 유권자 전체를 100명으로 쳤을 때 22명만이 투표를 한 셈인데, 그나마 그중에서도 60%의 지지밖에 얻지 못했다. 산술적으로 광산을  주민 100명 중 13명만이 권은희 의원 당선자에게 투표한 셈이다. ‘광주의 딸’이라는 호소에 광주의 응답은 냉랭했다.

권은희 의원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었다. “광주는 맘대로 꽂아도 된다”는 식의 지도부의 공천 과정이 유권자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한 50대 광주 시민은 “(새정치연합) 자기들이 관피아 척결하겠다고 하면서 낙하산 후보를 보내는 게 말이 되는가. 전략공천이 관피아랑 다를 게 뭐냐”며 당 지도부를 거세게 비판했다. 광주 지역 선거에서 새누리당 유세차를 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런데 이번엔 유난히 ‘빨간색 트럭’이 많이 보였다고 한다. 선거 트럭 확성기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권은희 전략공천’에 대한 비판이었다.

광주 시민들은 당의 정치적 문제를 호남 공천으로 해결하려는 야당의 태도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재보선이 치러진 광산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조 아무개씨(24)는 “권은희 후보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정치 쟁점 중심에 선 인물을 공천했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들었다. 지역이 아니라 당을 위해 지역을 이용하려 한 것 아닌가. 지역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정현 후보를 순천·곡성에 공천한 것과 너무 비교됐다”고 비판했다.

이런 와중에 터진 권은희 의원 남편의 보유 부동산 축소 신고 의혹에 대한 뉴스타파의 보도는 권 의원에 대해 그나마 남아 있던 ‘짠하다(불쌍하다)’는 민심까지 식혀버렸다. 사실 보도 전부터 권 의원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정치권에 돌고 있었다. 결국 ‘불합격 승리’라는 불명예스러운 결과가 떨어졌다.

문제는 단순히 불명예스러운 것뿐 아니라 입지가 불안하다는 점이다. 2016년 총선이 불과 1년 8개월 남은 시점에 권은희 의원이 지역구를 사수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온다. 광주 지역 사정에 밝은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앞으로 광주에서는 전략(공천) 없다. 결국 경선 치러야 할 것인데, 권은희 의원이 과연 다음 총선에서 공천을 받고 살아남을 수 있겠나”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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