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안철수 대신 ‘새 양자’ 맞을 채비
  • 윤희웅│민(MIN) 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 ()
  • 승인 2014.08.0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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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선 직후 호남에서 안철수 지지율 급락…호남-안철수 연대 금 간 내막

안방이 뚫렸다. 바깥방들에서도 성적이 처참하지만 그동안 철통같이 사수해오던 안방만큼은 내심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를 한 것 같은데, 결국 내주고 말았다. 전남 순천·곡성에 이정현 후보가 새누리당의 빨간 깃발을 꽂은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대참패에 대한 평가에 가중치가 부여되는 이유다.

순천·곡성 사수를 위해 선거 당시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는 지도부를 이끌고 세 차례나 현지를 방문해 서갑원 후보를 지원 유세했다. 준총선급이라 전국에 걸쳐 혈투가 벌어지는 엄중한 선거 과정에 텃밭인 호남 지역구 하나를 위해 세 번이나 당 대표가 찾는 일은 이전엔 없었다. 그만큼 안 대표는 이곳에서 이기기 위해 애썼다. 이곳을 놓치면 다른 지역에서 아무리 선전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뜨거운 열기 속에 치러진 이곳의 결과는 야당으로서는 차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정현 후보의 진정성과 인물론에 안철수 대표의 호소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7월31일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후 국회를 빠져나가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호남을 쉽게 여기는 듯한 태도’에 돌아서

새정치연합에 대한 호남 민심 이반 조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권은희 후보가 공천되어 본선에 나선 광주 광산 을에서 얻은 득표율은 60.6%였다. 간신히 60%를 넘겼다. 일견 높아 보이지만 이곳은 광주다. 지난 18대 총선과 19대 총선에서 이 지역 야당 후보였던 이용섭 전 의원은 74.7%와 73.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60.6%는 이에 한참 못 미치는 득표율인 것이다. 그만큼 광주 시민들이 이번 선거에서 새정치연합에 호응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고 읽어도 될 상황이다. 전략공천을 할 만큼 지도부가 공을 들인 지역이고, 정권 심판 정서를 촉진할 요량으로 지난 대선 과정 때 빚어진 국정원의 선거 개입 논란의 기억을 상기시키고자 후보를 골라 내세웠는데, 여기에 광주 시민들이 손뼉을 맞부딪치지 않은 것이다.

부정적 정서를 읽을 수 있는 지표는 더 있다. 바로 광산 을 지역의 투표율이다. 광산 을의 투표율은 전국 15개 선거구 중에서 가장 낮았다. 22.3%에 그쳤다. 낮다고 얘기되는 이번 재보선 전체 평균 투표율 32.9%에도 한참 뒤처진다. 어찌 보면 가장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지만 열기는 전혀 없었다. 투표율은 유권자의 선거 관심도를 나타내는데, 관심은커녕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는 지적이 적절해 보일 정도다. 

지난 6·4 지방선거의 광주시장 선거에서 안철수 대표가 윤장현 후보를 전략공천했을 때도 사실 말이 많았다. 당시 사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강운태·이용섭·윤장현 3자 구도에서 윤 후보는 한참 처지는 3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윤 후보는 ‘강운태-이용섭 단일 후보’인 강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안철수 대표의 정치적 위상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광주 시민들이 마음을 바꿔 윤장현 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광주 민심은 전략적 투표를 잘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단지 윤장현과 강운태의 대결이었다면 강 후보가 당선되었겠지만, 선거 프레임이 안철수와 강운태, 즉 안철수를 배제하느냐 마느냐로 짜이면서 막바지엔 윤 후보로 옮겨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셈이다. 안철수의 힘이었다.

그렇다면 불과 한 달여 전만 해도 호남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안철수의 지지세는 왜 이번 재보선에서 이렇게 급전직하했을까. ‘호남을 쉽게 여기는 듯한’ 태도 때문이다. 대표로서 공천 결정에 관여한 안철수 전 대표는 광산 을 공천 과정에서 논란을 양산했고 성적표는 초라했다. 지역 내 반발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서갑원 후보에게 유리한 경선 룰을 적용한 순천·곡성에서의 공천 결정도 악재로 작용했다. 안철수 전 대표에게 타격이 갈 것이란 점을 모르지 않았을 호남 민심이 이번엔 안 전 대표를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메시지였을까.  

호남은 안 전 대표의 지지 기반 역할을 해왔다. 안철수라는 인물이 출현해 당시 민주당을 위협할 때부터,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이후 합당 전까지, 또 그 이후도 호남은 안 전 대표의 버팀목이었다. 호남은 처음부터, 그리고 다른 곳보다 더 오래 안 전 대표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이 흐름은 매우 뚜렷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사후 리더를 만들지 못한 호남이 미래를 맡길 인물로 안 전 대표를 고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호남 출신은 아니지만 전략적으로 ‘양자’를 들인 셈이다. 호남 출신이 아니더라도 호남 정서를 대변하면서 전국적 인물이 될 재목으로 안 전 대표를 낙점한 것이다. 문재인이, 손학규가 구애해도 시큰둥하던 호남이 안철수에게는 반응했던 것이다.

‘호남표’의 위력 여지없이 과시

물론 엄밀하게는 이번 재보선 결과가 안 전 대표 개인에 대한 불만의 표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논란이 있는 공천이 있긴 했지만, 호남 유권자들을 더 화나게 한 것은 야당 내의 아노미 상태와 같은 무질서, 상시적 분열 양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같은 혼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 전 대표가 이러한 당을 이끌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적 미숙함’으로 인해 쉽지 않겠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안 전 대표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들게 했다는 것이다. 호남의 리더가 되어주기를 바랐던 안철수에 대한 호남의 미련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전 대표가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했지만, 그의 정치 생명까지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차피 안 전 대표의 최종 목표 지점은 2017년 대선이다. 만일 안 전 대표가 스스로 지금 이 위기 국면을 돌파해내지 못한다면, 호남과 안철수의 전략적 연대는 다시 이어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다른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호남은 미련 없이 안철수 카드를 버리고 새로운 양자를 들이려고 할 것이다. 이번 재보선에서 호남은 자신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여지없이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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