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 꿈꾸는 ‘신진 사대부’들이 몰려온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08.0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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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선거 거치며 486 군단 약진…“이제는 그들이 ‘미래 권력’이다”

‘미니 총선’이라 불린 7·30 재·보궐 선거가 갖는 의미는 여러 면에서 각별했다. 전국적으로 15곳이나 되는 선거구의 규모도 규모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었다. 이번 선거를 끝으로 정치권에 당분간은 큰 선거가 없는 탓이다. 2016년 4월의 20대 총선까지는 1년 8개월여가 남았다. 즉 이번 선거로 인해 재편되는 차기 대권 구도는 1년 이상 이어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잠룡’들은 재앙을 만났다. 사실 지금껏 정당 지지율에서는 새누리당이 일방적으로 새정치연합을 앞섰지만, 차기 대권 주자 지지율로 보면 새정치연합의 곳간이 훨씬 더 풍족했다. 차기를 바라볼 수 있는 인재들이 많았던 셈이다. 지난 7월 초 새정치연합 중진인 박지원 의원은 사석에서, 1997년 대선 때 신한국당(새누리당의 전신)에서 ‘9룡’이 회자됐던 때를 떠올리며 “우리 당에도 9룡이라 할 만한 인물이 즐비하다. 당장 안철수 대표에, 문재인·손학규·김두관·정동영·정세균 고문 등이 있고, 박원순 시장과 안희정 지사도 있다. 또 박영선 원내대표와 김부겸 전 의원도 뜰 것”이라고 말했다. 지지율 부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차기 정권 창출은 기대할 만하다”는 기대감이 나온 것도 중량감 있는 대권 잠룡들이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안희정 충남도지사,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권한대행 ⓒ 시사저널 임준선·최준필·연합뉴스
손학규의 퇴장, 대권 잠룡 세대교체 신호탄

하지만 7·30 재보선의 참패는 이런 희망마저 일거에 날려버렸다. 이번 선거 후폭풍으로 인해 야권의 대권 구도는 직격탄을 맞았고, 판세를 다시 정비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 중 한 명이던 안철수 대표가 대표직에서 사퇴하면서 선두 그룹에서 밀려날 형편이다. 특히 ‘구원투수’ 손학규 상임고문이 낙마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기에 이르면서 후보군에서 밀려날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차기 대권 구도도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을 거치면서 출렁이고 있다. 상대적으로 야권에 비해 인물 기근 현상을 보이던 여권은 야권과 달리 후보군이 두터워지는 현상을 맞고 있다. 특히 당권을 거머쥐면서 일약 차기 대권 주자의 입지를 굳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당분간 선두 그룹에 계속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당에 복귀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486’ 군단이 대거 가세하면서 아직 3년여가 남은 대선이지만, 향후 주도권 다툼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이 경기 수원 병(팔달)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패배한 다음 날인 7월31일 정계 은퇴를 전격적으로 선언했다. 그는 측근 인사들의 만류에도 정계 은퇴라는, 정치인으로서는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하지만 이 같은 초강수를 꺼내든 것은 단순히 개인적 거취 차원의 결정만은 아니라는 게 측근들의 이야기다. 손 전 고문의 정계 은퇴 선언에는 야권 내 물갈이와 세대교체의 불쏘시개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전직 국회의원으로 손 전 고문의 핵심 측근인 한 인사는 “손 전 고문이 당을 위해서 독배를 마신 것”이라면서 “다 이긴 선거 판세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다음 총선까지 불투명한 상황으로 몰고 간 세력은 따로 있다. 그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을 (손 전 고문) 자신이 책임진 것이다. 모범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손 전 고문만이 아니라 책임질 사람이 더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결국 손 전 고문의 정계 은퇴가 기존 야권 잠룡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은 그래서 나온다. 7·30 재보선을 통해 원내 재진입을 노렸지만 좌절을 맛본 정동영·천정배 전 의원도 손 전 고문의 정계 은퇴로 입지가 더욱 좁아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손 전 고문 정계 은퇴의 유탄을 누구보다 아프게 맞을 이는 안철수 전 대표라는 얘기도 나온다. “책임질 사람”이 사실상 안 전 대표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리틀 노무현’으로 불린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의 미래도 다소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결국 손 전 고문의 정계 은퇴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존 대권 잠룡들의 퇴조와 미래 권력을 향해 달려가는 신진 잠룡들의 등장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실제 여야를 막론하고 차기 대권 후보군의 물갈이와 세대교체는 상당한 폭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미 여권에서는 486 정치인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을 통해 상대적으로 젊은 중진 정치인들이 신진 잠룡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486 정치인’은 1960년대생 정치인들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여권 내 486 정치인을 대표하는 잠룡으로 분류된다. 그들은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대권 주자의 대열에 성큼 다가섰다.

7·30 재보선에서 재기에 성공한 나경원 의원도 주목해볼 만하다. 나 의원은 여당 내 유일한 여성 3선 중진으로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강점이 있다. 김태호 최고위원도 지난 7·14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3위로 당선되며 저력을 과시했다. PK(부산·경남) 출신인 그는 여권의 대권 후보 반열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지역적 기반도 지녔다.

야권에서는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박영선 새정치연합 대표 권한대행이 486을 대표하는 신진 잠룡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안 지사는 ‘범친노(汎親盧)’로 분류되면서 문재인 의원에 비해 계파 갈등에서 자유로운 만큼 당내 지지 확대를 노릴 기반을 갖추고 있다. 박 대표 권한대행은 7·30 재보선의 책임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지만, 당내 초·재선 그룹 등 쇄신파의 지지를 받고 있다.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의 퇴진으로 인해 수장을 잃은 새정치연합을 당분간 진두지휘하는 만큼 당의 재건 과정에서 그의 정치력이 인정받는다면 당내에서 대선 주자의 반열에 오를 여지는 작지 않다. 

7월23일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마스조에 요이치 도쿄 도지사가 도시 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면담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7월22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김포 5일장을 찾아 새누리당 홍철호 후보의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위상 점점 올라가는 박원순과 김문수

물론 486 세대로 대표되는 신진 잠룡들의 도전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들이 대부분 현직 단체장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고, 전국적인 기반이 약한 만큼 잔여 임기 내에 당장 차기 대권에 도전하기엔 현실적인 난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 유력 대권 주자를 대체할 수 있는 중량감 있는 후보들에게 쏠리는 눈길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여권에서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야권에서는 문재인 의원을 예로 들 수 있다.

7·14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거머쥐는 것과 동시에 차기 대권 주자의 반열에 오른 김무성 대표의 발걸음은 더욱 가벼워질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는 자신이 직접 설계한 선거는 아니지만 7·30 재보선의 과실을 챙겼다. 원내 과반을 훨씬 넘는 158석을 확보하면서 야권과의 경쟁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된 것이다. 당 대표 경선에서 기치로 내건 ‘힘 있는 여당’을 실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김 대표가 안정적인 여당 내 주도권을 거머쥐면서 청와대와는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당분간 ‘윈윈 전략’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당권 장악력을 키우면서 차기 대권 후보로서의 위상도 굳건히 하며 장기 전략으로 갈 공산이 크다. 하지만 차기 대권 주자로서 그의 위상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도 있다. 오히려 그의 역할을 ‘킹메이커’로 한정 지어 바라보는 시각도 많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의원은 이번 재보선으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력한 경쟁자인 안철수 전 대표가 퇴진한 마당에 그에 대한 당내 의존도도 높아질 것이란 설명이다. 공교롭게도 7·30 재보선 직전(7월21~25일) 실시한 리얼미터의 ‘여야 통합 차기 대권 주자’ 관련 설문조사에서 문 의원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철수 전 대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같은 조사에서 7주 만에 여야의 차기 대권 주자 후보 1위로 다시 올라선 것이다. 하지만 그는 18대 대선 패배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고, 그의 등장은 계파 갈등을 수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여야 안팎에서 공히 경쟁력이 있으면서도 새로운 인물로 부각될 수 있는 차기 대권 주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는 야권의 박원순 서울시장과 여권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로 압축된다. 당이 만신창이가 될수록 상대적으로 박 시장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김문수 전 지사 역시 당내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제약이 존재하지만, 쇄신 이미지를 통해 여권의 잠재적 대안으로 급부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다. 최근 여권 일각에서는 김 전 지사와 친박(親朴) 간 교감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김능구 이윈컴 대표는 “야권으로서는 ‘안철수 현상’에 의존하는 자세를 버릴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박원순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김문수 전 지사는 7·30 재보선에 불출마하면서 모험이 뒤따르는 승부를 걸지 않고 자기 위상을 지켜낸 만큼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가는 조건을 충족시킨 셈이 됐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차기 당권 구도는? 


7·30 재보선 참패로 김한길·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가 물러나면서 제1 야당의 새로운 지도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차기 당권을 획득하면 2016년 총선 공천권을 장악하고, 2017년 대선에서는 경선 규칙을 결정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 특히 계파 난립이 치열한 야당으로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자리인 것이다.

차기 당 대표 후보군에는 문재인·박지원·정세균·이인영·전병헌·추미애·신계륜·김동철·최재성 등 현역 의원을 비롯해 정동영·천정배·김부겸 전 의원 등이 폭넓게 거론되고 있다. 박지원 의원에게는 대표 권한대행을 맡은 박영선 원내대표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전병헌 의원은 직전 원내대표의 경험이 큰 자산이다. 486그룹의 선두 주자인 이인영 의원은 당내 혁신 모임 ‘더 좋은 미래’를 발판으로 세대교체를 노리고 있다.

가장 크게 주목을 받는 쪽은 문재인 의원이다. 문 의원은 이번 7·30 재보선 참패에서 상대적으로 상처를 덜 받았다. 문 의원이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 그룹을 움직여 당권 경쟁에 뛰어든다면 가장 강력한 후보임에 틀림없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당권과 대권의 분리’ 조항이다.

현재의 당헌은 ‘당 대표 및 최고위원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때에는 대통령 선거일로부터 1년 전까지 사퇴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문 의원이 조력자 역할에 그칠 경우, 친노 세력이 대표성을 띤 인물로 누구를 미느냐에 따라 당권 구도는 크게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조해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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