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대장군’ 기세 막을 자 누군가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4.08.0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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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일 수밖에 없는 당·청 밀월…‘친박 맏형’ 서청원 최고위원 행보에 관심

새정치민주연합은 결코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다. 완패라는 말로도 부족하게 느껴질 만큼 처참하게 무너졌다. 역대 어느 선거에서건 야당에 이만큼 유리한 호재들이 널려 있던 적은 없었다. 시들한 민생 경제에, 총리·장관 후보자들의 잇단 낙마 사태 등 청와대의 인사 패착 정도는 오히려 약과였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세월호’ 참사에다, 그 처리 과정에서 나타난 한심한 검찰·경찰의 무능과 추태 등등은 야당의 압승을 충분히 담보할 만했다. 그럼에도 참패한 것은 애당초 이길 수 없는 당 지도력 때문이었다고 보는 게 적확하다.

반면 뜻밖의 성적표를 받아든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희희낙락이다. 선거 전 8 대 7만 해도 승리라며 가슴을 졸였는데, 11석을 챙겼다. 그것도 전남에서의 의석 확보라는 역사적 사건까지 기록했으니 큰 잔의 축배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청와대는 국정 운영에 탄력을 받게 됐다며 들떠 있다. 2016년 4월의 제20대 총선 때까지는 전국 단위의 재보선이나 지방선거도 없어 안정적 국정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완승을 확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7월30일 밤 제일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활성화 노력 지원과 새누리당의 분발이었다.

7·14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김무성 의원이 2위를 한 서청원 의원을 껴안고 당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그러나 김무성 대표의 이런 몸 낮춤과는 별개로 ‘박근혜 마케팅’ 없이 자력으로 대승을 거둔 새누리당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 있다. 당·정 협의 요구 목소리도 예전과는 강도가 다르다. 이제 청와대에 할 얘기를 할 것이라는 예고다. 여기에는 그간의 청와대 독주에 대한 불만이 짙게 배어 있다.

김 대표, 지금 웃지만 청와대와 마찰 불가피

출범 후의 첫 시험을 잘 치른 ‘김무성호(號)’의 항로는 대충 짐작된다. 일단 친박(親朴)과 비박(非朴)을 아우르는 탕평 인사로 순항 기조를 이어갈 것이 예상된다.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정현 의원’을 임명직 최고위원으로 검토한 것도 탕평의 일환이다. 나중의 부담이 예상됨에도 일단 지금은 화합의 장면을 내비칠 필요가 있어서다.

김 대표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사조직인 ‘상도동’에서 정치를 익혔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편인 김 대표는 특유의 뱃심에다 베풂으로 두루 환심을 샀다. 지지자를 규합하고 이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지지를 확보하는 기량은 이론이 아니라 실전에서 체득한 것이다. 김 대표가 청와대의 견제 속에서도 당내 다수의 지지 의원을 끌어들인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YS를 궁지에 몰아넣은 ‘이회창 여당 후보’가 결국은 ‘김대중 야당 후보’에게 대선에서 패퇴한 전말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김 대표다. ‘차기’를 도모하려면 최고 권력자와 일정 수준의 팽팽한 긴장을 외부에 과시할 필요는 있으나, 마지막 자존심까지 건드리는 역린적(逆鱗的) 상황은 결단코 피해야 한다는 정치판의 기본을 꿰고 있다. 최근 1년 동안의 김 대표 행적은 일단 그런 교범에 충실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YS 정부 시절 청와대 인사들의 연말 모임에 김 대표가 함께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박상범 전 경호실장을 비롯한 당시 여러 수석들과 청와대 출입기자 모임에서 김 대표는 깍듯함과 진지함으로 선배들의 칭찬과 격려의 말을 들었다. 향후 행보와 관련한 필자의 물음에 그는 ‘항심(恒心)’과 ‘진력(盡力)’이라고 에둘러 답변하기도 했다. 

김무성 대표 체제와 청와대 간의 밀월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말 그대로 ‘당분간’이다. 김 대표 체제에서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친박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이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나 정몽준 전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원내에 복귀한 나경원 동작을 당선자 등 이른바 잠룡들 보다는 비주류로 밀려난 친박 그룹 문제가 김 대표에게는 당장의 큰 짐이다. 김 대표가 청와대와 협조 관계를 견지하는 동안에도 숱한 긴장이 형성될 소지는 다분하다. 과거 ‘안상수 대표-홍준표 최고위원’ 때처럼 눈에 띄는 그런 수준은 아니라도 어느 정도의 갈등은 예고된 수순이다.

청와대, 도전 견제를 위한 ‘칼’ 항상 비치

7·14 전당대회 패배 후 칭병하며 일주일 넘게 당사에 나타나지 않았던 서 최고위원은 이번 재보선 지원을 위해 복귀했다. 김 대표는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해 청와대와 마찰을 감행해야 한다. 반면 서 최고위원은 친박 리더로서 김 대표의 독주를 견제하고 저지해야 한다. 두 사람은 각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딪치게 돼 있는 것이다. 속내와 달리 애써 웃는 얼굴로 대하는 게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산술적으로, 두 사람의 협력 관계는 최대 1년으로 보인다. 20대 총선이 있는 2016년 4월에서 역산한 수치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부실 지구당 정리 등 공천을 앞둔 정비 작업이 본격화되면 동지라는 단어는 물 건너가게 마련이다. 제 식구 챙기기에 실패한다면 금도(襟度)니 뭐니 하는 것은 사치품일 뿐이요, 남는 것은 몰락이라는 철칙을 노련한 두 정치인은 누구보다 절감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총선 전후 단계의 우위가 2017년 12월 실시될 19대 대선과 직결되는 만큼 양보는 더욱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나마 1년이라는 기한도 가상일 따름이다. 역대 정부가 ‘사고를 친’ 것은 대개가 ‘과반 의석 확보’나 ‘압도적 승리’ 이후였다. 압승에 도취해, 외부를 의식 않고 밥그릇 싸움에 열중하는 등 오만에 빠진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번 7·30 재보선 압승이 새누리당의 국정 수행 능력을 평가받아서가 아니라, ‘거저 거머쥔 떡에 체한’ 야당의 오만 때문임은 다 동감한다지만, 새누리당이 이를 반면교사로 삼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동안의 딱한 행태에 미루어서다.

청와대와의 긴장 관계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당 내분 등 정치권이 심상치 않을 때 과거 청와대가 동원한 것은 공권력이었다. 의원들의 비위 등을 빌미로 한 원격 견제가 ‘전가의 보도’였다. 치졸한 수법이지만,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톡톡히 봤다. 최근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는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이 여권 실세와 연결되어 있다는 등의 소문에 정치권이 주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개헌 논의’라는 복병도 도사리고 있다. 여야 양쪽 모두 두드러진 차기 대권 주자가 없는 만큼, 개헌 논의는 일단 발동되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크다. 그 실현 여부를 떠나 정치권을 일대 휘저을 최대 변수다.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라도 새누리당이 정치게임에나 몰입하는 계파 다툼을 벌인다면 새정치연합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집안싸움으로 풍비박산 위기에 놓인 야당의 처량한 모습이 남의 얘기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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