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연합의 집단적 기억력
  • 김태일 |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 승인 2014.08.0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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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재·보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제1 야당이 오래된 패배의 늪에서 결국은 빠져나오지 못하며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어려움에서 잘 빠져나올 수 있을지 걱정이다. 위기에서 헤어나고자 하는 그간의 대응이 얼마나 상투적이었는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에 패배한다. 다음 날 아침, 결과에 책임을 지고 당 지도부가 사퇴를 한다. 그 공백을 원내대표가 대신한다. 크고 작은 회의 끝에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진다. 선거 패배의 원인을 진단하는 토론회가 이곳저곳에서 열린다. 당의 혁신을 위한 여론조사도 해본다. 정강·정책을 손질한다.  당헌·당규도 개정한다. 상징 색과 로고를 바꿔보기도 한다. 마지막 절차는 전당대회다. 새로운 지도부를 선출한다.’

이는 필자가 지켜본, 지난 10년 동안 새정치연합 계열의 정당이 비상 상황에서 취해온 구체적 행동 패턴이다. 이들이 무엇을 할지는 이젠 눈을 감고도 알 수 있다. 앞으로 나올 얘기도 뻔하다. 예언컨대, 며칠 후에는 당이 왼쪽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오른쪽으로 가야 하나라는 얘기를 꺼내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당이 진보적 정체성을 더 분명히 해서 전통적 지지자들을 동원해내야 한다는 ‘좌클릭’ 주장과, 당이 다수 지지자 연합을 만들려면 좀 더 중도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우클릭’ 주장 사이의 이념과 노선 논쟁은 당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혁신을 모색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그런데 사실은 이 단골 메뉴만큼 식상한 것도 없다. 새정치연합 계열의 정당들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국민들의 가장 중요한 염려는 이념과 노선 문제 이전의 것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민주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들은 당시 민주당에 대해 신뢰·책임·안정·능력 등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중하게 결정을 하고, 약속한 것은 지키려 노력하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잘 이루어내는 실력 있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 생각으로는 신뢰·책임·안정·능력보다 더 중요한 덕목이 있다. 위기를 기억하는 힘이다. 그동안 새정치연합 계열 정당의 위기관리 과정을 지켜본 바로는, 위기 상황이 발생한 날부터 약 두 주일 동안은 위기의식이 작동한다. 이 기간 동안 당은 이른바 ‘정당이성(政黨理性)’이 지배한다. 정당이성이란 최고의

충성과 이익의 최우선 순위를 ‘정당’에 두고자 하는 생각을 말한다. 그러나 두 주일이 지나면 당내의 특수 이익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그 순간 위기의식은 사라져버리고 당은 ‘비상’이 아니라 ‘일상’으로 돌아가버린다. 당 혁신은 도루묵이 되고 만다.

이들의 집단적 기억력이 왜 두 주일밖에 되지 않는 것일까? 필자에게 그런 조직 우생학적 질문에 답할 능력은 없다. 다만 필자의 짐작으로 그것은 당 내부에 존재하는 고질적 분파주의가 당의 중추신경회로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당이성의 작동을 방해하고, 당의 합리적 의사 결정을 왜곡시키고, 당의 개방성을 떨어뜨리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집단적 기억력을 파괴하는 분파주의 문제의 해결 없이는 새정치연합의 혁신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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