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우리 아이들도 가해자가 아닐까 걱정을 했다"
  • 감명국 기자·정리 조아라 인턴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4.08.1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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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정' 도입 등 파격 행보 선보이는 남경필 경기도지사

6·4 지방선거에서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주인공은 남경필 경기도지사다. 출마부터 당선까지가 하나의 드라마였다. 여당 원내대표 출마 준비를 다 마쳤을 무렵, 당에서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라는 거센 압력을 받았다. 이른바 ‘중진 차출론’이었다. 출마하지 않겠다고 버티자 ‘해당행위’라는 격한 용어까지 등장했다. 어쩔 수 없이 원내대표를 포기하고 경기도지사 경선 출마를 선언했으나, 당내 경쟁자로 정병국 의원이 버티고 있었다. 정 의원은 이른바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으로 불리는 쇄신파 동지였다.

정 의원의 경기도지사 출마를 응원했던 남 지사로서는 그런 동지와 경쟁해야 한다는 게 곤혹스러웠다. 본선에서 맞붙은 김진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또한 경제부총리 출신 3선 의원을 지낸 강적이었다. 6월4일 오후 6시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는 남 지사가 김 후보에게 지는 것으로 예상돼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여당 쪽에서 탄식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개표 상황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초박빙 접전이었다. 50.4%의 득표율로 남 지사가 간신히 승리했다. 불과 0.8%포인트 차(김 후보 49.6%)였다.

당선 후 행보는 더 뉴스의 초점이 됐다. 야당에 경기도 사회통합부지사 직을 제안했다. 경기도정에 여야가 협의하는 ‘연정’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여야 간에 원칙적인 합의도 보았다. 그는 요즘 수원 도청과 의정부 북부청을 오가며 ‘도지사 좀 만납시다’를 통해 주민들과 접촉의 폭을 넓히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란 듯 파격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8월12일 오후 3시, 수원 경기도청의 도지사 집무실에서 남경필 지사를 만났다.

© 시사저널 이종현

역시 제일 주목받는 게 ‘연정’ 시도다. 원래 이런 시도를 구상하고 있었나. 아니면 즉흥적이거나 다른 계기가 있었던 것인가.

19대 국회 들어가서 2년 동안 공부한 게 있다. 내가 대표를 맡아서 했던 의원들의 모임 중 하나는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가모델연구모임’이다. 이게 다 연결되어 있는데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결국은 시장의 실패, 대기업 횡포 등 반칙을 없애고 기업들의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모델연구모임은 독일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의 성공 모델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그 결과물은 오랫동안 생각해온 것이다. 원래 원내대표에 출마해 그것을 현실화하려고 했다. 그런데 도지사가 되면서 도지사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구상한 것이다. 2002년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서 지고 나면서부터 깨달은 게 있다. 그 무렵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온 게 ‘권력 분산’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나의 정치적 철학이다.

연정이라는 게 좋은 시도이긴 한데, 책임정치란 측면에서 위배 소지가 있고, 자칫 보여주기 식으로 되면 오히려 도정의 난맥상을 야기시킬 우려도 있다.

그럴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요즘 재미있게 읽는 책이 메르켈 독일 총리의 책이다. 메르켈 총리는 올해 브라질월드컵 때 유일하게 개막식에 참석한 외국 정상이다. 독일 축구 대표팀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사진에 나오기도 했다. 상징적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이란 나라가 유럽의 중심 국가이고 세계의 리더십을 가져오고 있는데, 과연 메르켈 총리가 한가해서 브라질까지 갔겠나. 그것은 권력 분점이라고 생각한다. 권력 분점을 통해 자신의 일과 권한을 많이 위임한 것이다. 야당에도 자리를 위임하고 자신의 당 장관들에게 위임을 하면서 국가 최고지도자는 글로벌한 이슈, 큰 틀의 이야기들을 고민하고 정의하는 것이다. 저는 이것이 시스템의 힘이라 생각한다. 시스템이 단단하게 정비되면 권력 분점이 혼란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정을 기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제게 주어진 목표인 연정은 ‘연합 정부’가 아니라 ‘연합 정치’다. 우리는 지금 연합 정부까지는 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시스템과 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연합 정치를 통해 권한을 나누고 여야가 협치(協治)를 하는 것이 처음에는 더딜지 모르지만 일단 시작을 하고 나면 훨씬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다. 이걸 국민들에게 검증받고 싶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인구의 4분의 1이 모여 있는 경기도에서 연정이 성공적이네, 안정적이네. 그럼 국가가 하는 것도 문제가 없겠구나’라는 모범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시스템도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우리 정치문화에는 대결과 불신이 팽배해 있다. 시도하다가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거나 부작용이 생기면 되돌릴 것인가.

대화를 통한 양보, 타협을 통해 끊임없이 문제를 해결해나가겠다.

최근 도정 고위직에 임용되는 공직자를 대상으로 인사청문회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앙정부의 인사청문회 같은 ‘흠집 내기’ 식으로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러 면에서 자꾸 중앙정부와 비교되는 정책들을 추진하는 느낌이다. 의도가 있나.

‘경기도의 스탠더드를 코리아 스탠더드로 만들자’ ‘경기도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 그런 차원이다. 과거에는 사실 권력자 또는 대통령하고 각을 세우면서 정치를 해왔다. 그때는 국회의원이란 역할이 정부에 대한 견제를 하는 것이고, 당에서도 비주류다 보니까 비판하는 역할이 주였다. 이제는 역할이 완전히 바뀌었다. 나는 비판받는 자리에 있다. 비판하면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통해 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

얼마 전 도청 월례회의에서 “설령 도지사·대통령이라도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 박 대통령의 소통 부재를 빗댄 발언인 듯하다.

전체 발언 맥락을 봐달라. 그 전날 광역버스 입석 금지에 따른 교통 대책을 내면서 경기도가 200회 정도의 증차를 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것을 놓고 대책을 세웠는데, 제대로 돌려보니까 최소 450회 정도는 있어야 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왔다. 그 통계를 받자마자 기자회견에서 바로 “잘못했다”고 얘기를 했다. 주변에서 “지적받은 것도 아닌데 왜 굳이 먼저 사과를 하느냐”고 만류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행정은 우리가 전능한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틀릴 수도 있지 않나. 틀린 것을 인정해야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말하면서 설명한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의 기본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다름이라고 생각한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한 말이다. 박 대통령을 빗댄 것은 아니다.

도지사의 의욕이 너무 강하다 보면 아랫사람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최근 직원들을 대상으로 ‘카톡방’을 개설하겠다고 했다가 반대에 부닥친 적도 있는데.

카톡방 문제는 하고 싶은 사람만 하면 된다. 우리 비서실은 카톡방을 운영하며 토론한다. 강제하는 것은 아니고 선택에 맡긴다. 오히려 나는 공무원들에게 오전 9시 전에는 일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야 굿모닝 경기도가 된다. 

진보 성향이 강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과도 대화가 잘되는 편인가.

잘되어가고 있다. 교육감하고 협력을 해서 좋은 사업을 할 생각이다. 진보와 보수는 70%는 비슷하고 30% 정도만 다른 것 같다. 그렇다면 그 70%를 합의 보고 가면 된다. 다 합의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국회가 세월호 특별법 문제로 시끄럽다. 단원고가 경기도 안산에 있는 등 특히 경기도지사로서 이 문제는 남다를 텐데.

정치권 문제는 일일이 얘기하긴 그렇고…. 국민들이 지금 힘들어하시는데, 더 힘들어하지 않도록 잘 합의됐으면 좋겠다.

희생자 유가족들과의 접촉에서 특별히 요청받거나 듣는 내용은 없나.

법과 관련해서는 내 소관이 아니라는 걸 아시니깐.

요즘 군 문제도 시끄럽다. 경기도에도 군부대가 많다. 남 지사의 두 아들도 현재 모두 군 입대 중인 것으로 안다. 군 장병 아들을 둔 아버지 입장에서 윤 일병 사망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나.

내 아이들은 군 내에서 고참급이다. 솔직히 이번 사건이 터졌을 때 ‘혹시 우리 아이들도 가해자가 아닐까’라는 걱정을 했다. 윤 일병 사망 사건은 사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공존해 있는 것이다. 또 어떻게 보면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더 많은 구조다. 여러 명이 한 명을 왕따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 입장에서 ‘우리 자식이 피해자겠구나’ 생각하는 것도 있겠지만, 사실은 더 많은 우리 자식들이 가해자로서 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문제는 전체적인 사회의 문제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이것이 학교문화에서의 왕따 현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군 병영이라는 제한되고 위계질서가 확실한 곳으로 가면서 더 살인적이고 폭력적인 현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모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풀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경기연정정책협의회가 8월5일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20개 항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왼쪽부터 새정치연합 오완석·김현삼씨, 남경필 지사, 새누리당 이승철·윤태길씨. © 연합뉴스
6·4 지방선거 때 부인 관련 소문 등이 야당의 공격 대상이 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부인은 외부에 모습을 잘 안 비친 것으로 안다.

야당의 공격은 집사람과 관련된 것보다는 제주도 땅 문제 등이 많았다. 집사람이 정치 전면에 나서는 것 자체를 안 좋아한다. 2008년 민간인 사찰 때도 (집사람이) 힘들었다.

새누리당에 비주류인 김무성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관계 등 당·청 간에 마찰음이 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김 대표나 남 지사는 당에서 비주류로 분류된다. 요즘 당이 제 목소리를 낸다고 보나.

밀월 관계라고 하지 않나. 협력이 잘된다는 뜻 같다. 나는 그런 거 말고 청와대와 당과 지방정부가 경쟁을 벌였으면 좋겠다. 혁신 경쟁. 누가 더 혁신을 잘하느냐를 놓고 경쟁하는 게 좋다고 본다. (경기도가) 인사청문회 제도를 개선해서 성공을 거두면 중앙정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경기도) ‘혁신위원회’가 어제 처음으로 구성돼 어젠다가 돌아가고 있는데 그런 혁신 경쟁이 일어나야 한다. ‘김무성 대표와 남경필 지사가 누가 더 혁신을 잘하느냐를 놓고 경쟁을 벌인다’는 건 좋은 것이다. ‘넌 왜 못하느냐’ ‘누구 개판이야’라는 싸움을 벌이기보다는 그런 경쟁을 벌이고 싶다.

원래 원내대표 출마를 준비했다가 당의 요구에 의해 도지사 출마로 선회했다. 원내대표에서 도지사로 바뀌면서 계획했던  ‘로드맵’에도 변화가 있나.

사실 나는 대한민국 구조를 바꿀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1987년 (개헌 이후) 정치 체제로 쭉 오다가 2000년대를 넘어오면서 (1980년대의) 정치·경제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 미국식 제도를 받아들였는데 그 제도가 해방 이후에 급속도로 성장하도록 한 원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19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경제 체제가 미국식 신자유주의 체제로 가서는 더는 작동이 안 된다는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 정치 체제에서도 5년 단임 양당제가 보여주는 한계들이 나타나고 있다. 여야 간 싸움질, 법안 처리율 0%, 이런 것들을 극복할 때가 됐다. 원내대표로서 그런 정치와 경제의 구조를 바꾸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게 지금 지방정부로 오면서, 그렇다면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만큼 (그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2012년 10월 시사저널이 창간 특집으로 매년 실시하는 차세대 리더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당시 남경필 의원이 여당 정치인 부문 1위에 선정된 바 있다. 그때 인터뷰에서 대권 도전 가능성을 내비친 적이 있는데 아직도 유효한가.

정치인이 대권에 꿈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경기도지사로서 도지사 역할을 충실히 다하고, 경기도가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뀐다는 생각으로 우선 경기도부터 바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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