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김대중 대통령마저 ‘소인’이라 부르다
  • 김회권 기자·이애림 일본통신원 ()
  • 승인 2014.08.2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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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케이, ‘반한’ 성향 뚜렷한 극우 신문 경영난 속 청와대와 맞붙으며 존재감 키워

청와대와 일본 산케이신문(이하 산케이)의 ‘7시간 미스터리’를 둘러싼 전쟁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한국 대통령이다. 산케이가 청와대의 신경을 날카롭게 건드린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산케이 기준에서 ‘반일(反日)’인 대통령은 그들의 기사에서 혹독하게 다뤄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산케이의 주 타깃이 되었다. 당시 산케이의 서울지국장이었던 구로다 가쓰히로는 2004년 3월 국회가 노 전 대통령을 탄핵하자 그 배경과 관련해 산케이신문 1면에 머리기사를 썼다. 그가 묘사한 노 전 대통령은 이랬다. ‘학력과 빈곤 콤플렉스로 가득 찬 한풀이 정치의 화신.’

2007년 4월28일 산케이는 서울발 기사로 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관한 기사를 썼다. 기사에서 현직인 노 전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을 지적하며 ‘소인(小物)’이라는 모독적인 표현을 사용해 물의를 빚었다. 발끈한 청와대의 항의로 문제가 확대되자 “국가원수에 대한 무례”였다며 결국 사과성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덩달아 ‘소인’으로 전락했다.

2012년 4월13일 북한의 은하 3호 로켓 발사 소식을 다룬 산케이신문의 호외를 읽고 있는 도쿄 시민. 산케이는 한국과 북한 관련 소식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매체다. ⓒ AP 연합
“쓰시마 부동산이 한국 자본에 매수” 기사도

산케이는 일본 내에서도 약간 이질적인 구석이 있다. 1970년 사회적 사명을 다하자는 취지에 따라 만든 ‘산케이 신조’를 보면 짐작이 가능하다. 내용을 보면 ‘진실 보도’는 언급하지만 그 어디에도 ‘중립’이라는 단어는 없다. 일본 5대 전국지 가운데 다른 전국지들(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닛케이)이 ‘불편부당’을 거론하지만, 산케이는 오히려 자유주의·자본주의 옹호와 반공을 내건다. 여기에 덧붙여 산케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로 ‘일본과 일본인의 자랑’ 그리고 ‘일본국의 전통’을 들고 있다. 전형적인 우파 지향적 내용이며 이것은 지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산케이 지면에는 사설이 없다. 대신 ‘주장’이 있다. 자신들만의 극우·보수적 논조를 두고 ‘정론노선’이라고 신문에 게재하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이런 신조가 강하게 적용되는 부분이 한국 관련 기사다. 특히 영토 문제는 단골 소재다. 독도뿐만 아니라 대마도도 한국을 힐난하는 데 동원한다. 2008년 10월 ‘쓰시마(對馬·대마도)가 위험하다’는 특집 기사를 1면과 3면을 통해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한국의 관광 러시에 쓰시마의 부동산이 속속 한국 자본에 매수되고 있다”며 “한국인 관광객 중에는 쓰시마가 자국 영토라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위안부 문제는 오랫동안 산케이 지면에 올랐고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6월22일 위안부 피해자 배춘희 할머니가 별세하자 산케이는 연재물인 ‘역사전(戰)’의 제3부 ‘위안부 한국과의 대화’라는 기사에서 배 할머니의 죽음을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는 “배씨는 사실 전후 스스로 일본에 와서 약 30년간 살았고, 군가 등 일본 노래를 잘했다”며 익명의 취재원을 등장시켰다. 또 다른 익명의 취재원은 “그녀는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 갔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고 일본을 용서하고 싶다고도 말했다”고 했다. 연재물인 ‘역사전’은 일본에 불이익이 되는 일들의 진상을 밝힌다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산케이의 자매지인 ‘석간 후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10월 우리 정부가 수산물 금수 조치를 취한 것을 두고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투표를 목전에 두고 올림픽 유치를 방해하기 위한 공작”이라고 보도하는 매체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에도 ‘원자력발전소 추진’을 외치고 주변국과의 관계에 아랑곳없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 찬성’을 주장하는 산케이는 일본에서도 독특한 매체로 평가받는다. 누가 욕하든 말든 극우 선전·선동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면 정상적인 언론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일각에서는 그 이유로 ‘보수 장사’를 지적한다.

‘언론 자유 피해자’로 청와대가 존재감 키운 꼴

산케이의 조간신문 발행부수는 5대 전국지 중 가장 적은 161만부다. 내부 직원들은 이 161만부도 믿지 못하는 눈치다. 요미우리(988만부), 아사히(761만부), 마이니치(340만부), 심지어 경제지인 닛케이(288만부)와 비교해봐도 격차가 크다. 어쨌든 부수 감소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2009년에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했는데 50세 이상 직원 중 150여 명이 퇴직했다.

부수 감소보다 더 큰 문제는 계열사인 후지TV와의 관계다. 후지TV는 산케이에 매년 광고비용 형태로 약 20억 엔(약 200억원), 이벤트나 협찬 명목으로 약 50억 엔(약 500억원) 정도를 지원해왔다. 하지만 후지TV가 상장된 이후 이런 지원이 어렵게 되면서 산케이의 괴로움은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2011년 후지미디어홀딩스가 산케이신문사를 소고기덮밥 체인업체에 매각하려다 실패한 사실이 한 주간지 취재에서 드러나면서 일본 미디어계의 흥미를 끌기도 했다. “부실 기업이나 다름없어 버리려고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지만 그동안 한국 드라마와 예능을 집중 편성해 재미를 본 후지TV가 반한(反韓) 매체인 산케이를 부담스러워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산케이의 한 기자는 “회사가 이런 상황이라 우수한 기자가 성장하지 않고 계속 그만두고 나간다. 산케이 출신만으로 야구팀이 아니라 리그도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전했다.

생사 문제가 간절해지면서 산케이가 취한 전략은 존재감 키우기다. 일본 내에서도 애국과 보수라는 이름으로 ‘도쿄전력’을 옹호하는 포지션을 취했다가 비판받았지만, 어쨌든 좌충우돌하면서 존재감만큼은 조금씩 커지고 있다. 이념 말고도 뉴스를 무료로 배포하는 것이 효과적으로 먹혀들고 있다. 다른 전국지들이 모두 유료화로 바꾸는 사이에도 산케이만은 모든 기사를 무료로 공개한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웹에서는 산케이 뉴스를 인용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 후지모토 이치로 교토 대학 강사는 “거대 신문사가 일부 유료화하고 있는 사이에 무료로 읽을 수 있는 신문사가 일본인의 마음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고 지적했다. 

일본 내에서는 산케이 기사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을 외교 문제보다는 표현의 자유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심지어 산케이를 싫어하는 민주당조차 이 부분을 문제 삼는다. 민주당의 마쓰하라 진 국회대책위원장은 “표현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우리나라(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위화감이 있다”며 “시민단체가 한국의 조선일보에 대해 같은 행동을 취했는가”라고 반문했다. 일본 언론들은 비교적 사실관계만을 전달하며 관망 중이다. 하지만 NHK는 “산케이의 기사는 한국 언론을 인용해 작성한 것이며 이런 법적 대응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내보냈고, 요미우리는 7월18일자 조선일보의 칼럼부터 지금까지의 보도를 정리해 보도하면서 이번 법적 대응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언론 자유의 피해자로 둔갑한 산케이의 일본 내 존재감을 청와대가 키워주는 모양새다. 


문제가 된 산케이의 기사.
박 대통령은 측근과 각료들과의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불통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대통령 보고는 메일이나 팩스에 의한 ‘서면 보고’가 대부분이라 이날 질의도 야당 측은 서면 보고에 대해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박 대통령의 불통정치의 본질이라며 문제시했다…(중략)

이와 관련된 불만은 소문의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는 한국 최대 부수의 일간지 조선일보 기자 칼럼이다. 7월18일에 게재된 ‘대통령을 둘러싼 소문(대통령을 둘러싼 風聞-최보식 칼럼)’이다.

칼럼은 “7월7일 청와대 비서실의 국회 운영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세월호 사고 당일 박 대통령이 오전 10시쯤에 서면 보고를 받은 것을 끝으로 중앙재난대책본부를 방문할 때까지 7시간 동안 만난 사람이 없다(원문은 대면 보고도 대통령 주재 회의도 없었다)”고 지적, 대통령에 관한 의혹을 제시했다.

칼럼은 이렇게 이어진다. “김 실장이 모른다고 한 것은 대통령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서실장에게도) 쉬쉬할 대통령의 스케줄이 있었던 것으로도 해석됐다. 세간에서는 대통령은 당일, 모처에 비선과 함께 있었다는 소문이 만들어졌다.”…(중략)

칼럼은 이렇게 계속된다. “대통령을 둘러싼 소문은 증권가 정보지, 타블로이드판 주간지에도 등장한다.”…(중략)

증권가 관계자에 의하면, 박 대통령과 남성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상대는 대통령의 모체 새누리당 전 측근에 따르면 당시에 아내가 있는 남자였다는…(중략)

칼럼에선 해당 소문을 박 대통령을 둘러싼 남녀 관계에 관한 것이라고 확실하게 기술하지 않았다. 기자는 단지 “그런 느낌으로(저속한 것으로) 취급되던 소문이 사적인 자리의 단순한 잡담이 아닌 제도권 언론에서 뉴스 자격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마 대통령과 남성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의 여기저기에서 화제가 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칼럼은 소문이 무엇인가를 언급하지 않은 채 끝나는가 싶다가 갑자기 ‘실명 보도’로 바뀌었다. “때마침 풍문 속 인물인 정윤회씨의 이혼 사실까지 확인돼 소문은 더 짜릿해졌다.” 그와 이혼한 여성은 최태민이라는 목사의 딸이다. 정씨는 대통령이 되기 전 7년간 박근혜의 비서실장이었다. 칼럼에 따르면 정씨는 아내에게 스스로 재산 분할 및 위자료를 청구하지 않는 조건을 제시한 뒤 결혼 기간 중 일들에 대한 비밀 유지를 요구했다고 한다…(중략)

또 조선일보 칼럼은 이런 수수께끼 같은 것도 썼다. 그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가 공식적으로 나의 이권 개입, 박지만 미행 의혹, (박 대통령의) 비선 활동 등 모든 것을 조사하라고 큰소리를 쳤다’는 것이다…(중략)

소문의 진위 추궁은 현재 진행 중이지만, 칼럼은 박 정권을 둘러싼 ‘천한’ 소문이 거론된 배경을 분석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진위 여부는 고사하고 이런 상황을 대통령과 연관 지어 생각한다. 과거였다면 대통령 지지 세력이 열화와 같이 격노했을 것이다. 지지자가 아니더라도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이성적 판단이 무너진 것 같다. 국정 운영으로 높은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면, 풍문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대통령 개인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온갖 소문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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