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10명 중 4명 “영어 강의 절반도 못 알아들어”
  • 조아라 인턴기자 ()
  • 승인 2014.08.2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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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글로벌 캠퍼스’…한국 떠나는 유학생 증가

대학 평가는 캠퍼스에 국제화 바람을 몰고 왔다. 대학 평가의 중요 지표인 ‘국제화 지수’에는 외국인 유학생, 교환학생, 영어 강의 비율 등이 포함된다. 다국적 학생들이 공용어인 영어를 바탕으로 배움을 쌓는 ‘글로벌 대학’, 이것이 각종 대학 평가가 원하는 이상적인 대학의 모습이다. 이에 따라 2000년대 이후 각 대학에서는 적극적으로 유학생 유치에 나서는 한편 영어 강의 비율을 경쟁적으로 높여가는 추세를 보였다.

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상당하다. 대학들이 구색 맞추기식 수치 달성에 치중해왔을 뿐 내실을 갖추는 데는 미흡했다는 것이다. 대학 평가가 교육 서비스 수요자인 학생들을 제대로 배려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지난 7월7일 한 대학의 초청 프로그램에 참가한 외국인 대학생들이 공학교육 강의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학생들마다 영어 실력 수준 차이 커

ㄷ대학은 2014학년도 1학기에 358과목의 영어 강의를 개설했다. 전체 강좌의 30%에 달한다. 학생들이 수강하는 수업 중 3분의 1이 영어로 진행되는 셈이다. 2007년 중앙일보 대학 평가에서 ㄷ대학의 국제화 지표는 40위 밖이었으나, 지난해에는 10위권 안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결과만 놓고 보면 ㄷ대학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교육’이 충실히 이행되는 듯하다.

하지만 학생들이 이야기하는 현실은 달랐다. 이 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인 이 아무개씨(26)는 “영어에 능숙하지 않아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 많다. 이런 학생들에겐 발표 자체가 두려움의 대상이다. 영어 글쓰기 과제의 경우 궁여지책으로 포털 사이트의 번역 기능을 동원해가며 겨우 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마다 영어 실력에는 수준 차이가 크다. 영어로 말하기와 글쓰기가 능숙한 학생은 드물다. 이 때문에 교재 및 자료만 영어로 쓰인 것을 활용하고, 수업 진행은 한국어로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런 식이다 보니 영어 강의를 기대하고 수강을 신청한 외국인 학생들이 도리어 수업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생긴다. 이씨는 “유럽 출신의 외국인 교환학생 5명이 수강을 신청했으나, 담당 교수가 영어로 수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수강을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각 학교가 경쟁적으로 영어 강의 비율을 높여온 데 반해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정이다. 지난해 12월 이광현 부산교대 교수 등은 국내 일반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 2444명(미응답자 포함)을 대상으로 실시한 영어 강의 실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영어 강의를 ‘40% 수준에서 알아들었다’는 학생 비율이 26.4%, ‘20% 수준에서 알아들었다’가 7.8%, ‘20% 미만으로 알아들었다’가 2.9%였다. 약 37%의 대학생이 영어 강의의 절반도 못 알아들었다고 답한 셈이다. 영어 강의를 통해 영어 실력이 ‘향상됐다’는 응답도 25.1%에 불과했다. 이광현 교수는 “학생들의 영어 강의 이해도가 떨어지고 영어 실력 향상 효과도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영어 강의가 적절하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대학들은 ‘국제화 지수’를 높이기 위해 외국인 유학생을 경쟁적으로 유치해왔다. 2003년 1만명도 안 됐던 외국인 유학생 수는 2011년 9만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특히 중국인 유학생은 국내 대학들의 집중 타깃이 됐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국내 대학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류’를 바탕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며, 극소수 학생이 입학하는 일류대와 비일류대 사이의 격차가 큰 중국 대학의 특성상 한국 대학의 졸업장이 갖는 매력도 컸다. 그 결과 2010년 전후에는 중국인 유학생 비율이 전체 유학생의 70%를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국내 대학의 학사 프로그램이 여러모로 부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외국인 유학생이 충실한 교육을 제공받기에는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인 학생 위주로 진행되는 학사 시스템에서 외국인 유학생은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한 사립대 유학생 학생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중국인 유학생은 “자체 조사 결과 2011년 9월 입학한 유학생 183명 중 169명이 학사경고를 받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2년 9월부터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중국인 유학생 쉬눠(23)는 “외국인인 만큼 어느 정도는 어려움을 감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먼저 행동하지 않으면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곳이 한국 대학”이라고 토로했다. 단순히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한 경험도 있었다. 성실하게 과제를 작성해 제출했는데도 최하위 성적을 받은 것이다. 의문을 품은 쉬눠는 교수에게 전화해 항의했으나, 교수는 문제가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성적 정정 기간 마지막 날, F였던 학점은 B로 수정돼 있었다. 쉬눠는 “외국인이라서 리포트를 제대로 쓰지 못할 것이란 선입견 때문에 제대로 채점하지 않고 최하점을 줬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탓일까. 급증하던 외국인 유학생 수는 2011년을 기점으로 줄어드는 추세가 뚜렷하다. 특히 중국인 유학생의 감소세가 두드러진다. 2009년 6만6294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꾸준히 줄어 2013년에는 5만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최근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는 한국보다는 미국, 유럽 등이 더 각광받는 추세라고 한다. 쉬눠는 “한국과 중국은 서로 학제가 다름에도 입학 이후 지금까지 거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차라리 학비가 더 들더라도 유학생 관리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는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교수가 연구에만 치중해 수업 질 떨어져”

학생들 사이에서는 교수가 연구에 지나치게 치중해 강의에는 소홀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ㄱ대학 건축학과 2학년 한 아무개씨(20)는 지난 학기에 황당한 경험을 했다. 담당 교수의 수업 내용과 기말고사 내용이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교수는 강의 시간 동안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해당 과목의 개설 주제와는 동떨어진 내용이었다. 학생들은 수업 조교의 보충 강의를 별도로 들은 뒤 시험을 치러야 했다. 한씨는 “교수님은 강의 중에도 자신의 연구 결과를 자랑하기에 바빴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컴퓨터학과 4학년 조 아무개씨(24)도 교수에게 질문을 하러 연구실을 찾았다가 “연구에 바쁘니 질문하지 말아 달라”는 말만 들었다고 밝혔다. 각 대학 학생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연구 실적 쌓기에 골몰하느라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 및 강의에 소홀한 교수들을 성토하는 내용의 게시물을 흔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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